보고 읽은 얘기 83

피아노 The Piano, 1993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에 놓인 피아노와 음악, 그리고 에이다. 거친 바다를 악착같이 건너온 피아노.해변에 덩그러니 버려진 피아노.베인스가 가져갔다가 스튜어트가 도끼로 찍어버린 피아노.베인스에게 건반 하나를 내어준 피아노.결국, 바다에 던져버린 피아노. 모두 에이다였구나.피아노 선율만큼 구슬픈 오래전 영화. 피아노19세기 말. 20대의 미혼모 ‘에이다’는 아홉 살 난 사생아 딸 ‘플로라’를 데리고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낯선 땅 뉴질랜드에 도착한다. 여섯 살 때부터 말하기를 그만두고 침묵을 선택한 ‘에이다’를 세상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는 피아노와 딸 ‘플로라’ 뿐이다. 모녀를 데려가기 위해 해변가에 온 남편 ‘스튜어트’는 ‘에이다’에게 생명만큼이나 소중한 피아노를 해변가에 버려두고 집으로 향한..

윤희에게, 2019

누구나 계절이 바뀌면 생각나는 영화가 한 두 편 있을 것이다. 나는 한 번 본 영화는 거의 다시 보지 않는 편인데도 날씨가 쌀쌀해지는 이맘때쯤이면 를 다시 틀어보곤 한다. 영화 시작 온통 눈밭인 새하얀 인트로 화면과 서서히 줌아웃 되면서 펼쳐지는 그 겨울의 풍경만으로도내 모든 기억과 감성은 매번 예전에 그 영화를 처음 보았던 그 시절로 단숨에 돌아가버린다. 를 보면서 를 떠올린 사람이 많았을 것 같다.'편지', '눈', '오타루', '첫사랑'. 순간순간을 찍은 '사진'과 '옛사랑을 잊게 도와준 선배'처럼 '엄마를 이끌어 준 딸'의 설정은 두 영화가 많이 닮아있다.분명히 주제의 무게감이 확연히 다른 두 영화이나 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를 본 느낌은 어떨지 궁금하다.개인적으로는 의 설정을 좋아해서인지 의 이..

그대안의 블루, 1992

1992년 작품이라 당시에는 이 영화를 알지는 못했고이소라가 흐느끼듯이 부른 같은 이름의 노래 '그대 안의 블루'를 들을 때마다 어떤 영화일까 늘 궁금했었다. '노래 분위기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애잔하고 절절한 로맨스가 아닐까?'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실상 어렵게 어렵게 영화를 찾아서 보고 나니, '멜로'라기 보다는 뜻밖에도 좀 파격적인 이야기 설정을 통해서 여성의 '자아 실현', '사회 진출'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예상과 다르게 이야기가 전개되어서 그런지 영화를 매끄럽게 한 번에 쭉 보기는 솔직히 어려웠다.익숙하지 않은 예전 영화적 기법을 쫓아가기가 녹록지 않아 몇 번씩 되돌려 봐야 했지만,영화가 세상에 나왔던 당시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이야기거리가 많은 영화인 듯하다.이런 걸 '페미니즘'..

보디가드 The Bodyguard, 1992

노래 가사처럼 씁쓸하고 달콤했던 기억만 갖고 떠나버린 휘트니 휴스턴. 볼 수 없는 사람이라 예전의 아름다웠던 그 모습이 왠지 아련하게 다가온다. 문득 생각나서 오랜만에 그냥 봤는데, 그때는 모두가 풋풋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케빈 코스트너도 휘트니도. 누군가의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때를 추억하는 오래된 앨범같은 영화. 이렇게 보고 있으니 여전히 거짓말처럼 살아있는 것만 같다. 보디가드 “절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말 것” “절대 경호를 풀지 말 것”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말 것” 전직 대통령을 경호했던 보디가드(케빈 코스트너)와 세계적인 톱스타 여가수(휘트니 휴스턴)의 이뤄질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 모두의 인생 로맨스 2018년 9월 26일, 세상 모든 로맨스 팬들에게 바칩니다 평점 8.5 (1..

아비정전 阿飛正傳, 1990

요즘은 괜히 예전 영화가 더 땡기네.기분 탓인가...이제 그럴 나이인가... 반가운 얼굴들을 이렇게 다시 보는 것도 좋구나.  아비정전“1분이 쉽게 지날 줄 알았는데 영원할 수도 있더군요. 그는 1분을 가리키면서 영원히 날 기억할 거라고 했어요...” 자유를 갈망하는 바람둥이 ‘아비’는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매표소에서 일하는 ‘수리진’을 찾아간다. 그는 그녀에게 이 순간을 영원처럼 기억하게 될 거라는 말을 남기며 그녀의 마음을 흔든다. 결국 ‘수리진’은 ‘아비’를 사랑하게 되고 그와 결혼하길 원하지만, 구속 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아비’는 그녀와의 결혼을 원치 않는다. ‘수리진’은 결혼을 거절하는 냉정한 그를 떠난다. 그녀와 헤어진 ‘아비’는 댄서인 ‘루루’와 또 다른 사랑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들의 ..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君の膵臓をたべたい, 2017

소녀가 아프다.  아 이런 건 너무한다. 소녀가 아프다니. 영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코끝이 시큰거리면 어쩌라는 걸까. 소녀가 아픈 설정은 아름다운 화면에 비례해 슬픔을 깊게 만들어 영화를 보는 내내 기분을 가라앉힌다.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소녀가 아프단다.  어느 학원순정만화같이 예쁘지만 애잔하게 슬픈 이야기.교실과 칠판이 나오고, 도서관 열람실이 나오고, 교복을 입은 숫기 없는 남학생과 당돌한 여학생이 나온다.이런 일본 감성 영화는 참 오랜만에 본다. 나이가 들어 예전처럼 십 대의 맑고 말랑말랑한 감정이 사그라들었을 텐데,오랜만이어서인지 아니면 나이가 너무 들어버려 회한이 깊어진 건지 여운이 꽤 길게 간다.소녀의 밝은 미소와 너의 췌장을 먹고 싶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이 영화를 ..

옥희의 영화, 2010...그리고, 우리 선희, 2013

대학 선생과 제자, 선배와 후배가 얽히고설킨 다소 불편한 관계 설정은 이 두 영화에서 반복된다. 몇 년의 시간차를 두고 본 영화이고, 비슷한 인물들과 이리저리 섞어 놓은 이야기 전개 때문에 이게 그거 같고, 저게 이거 같아 마치 하나의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한데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별다른 이야기는 아니다.어쩌면 술집에서 내 옆테이블 사람들이 주고받는 그렇고 그런 얘기.지질하고, 소심하고, 허세도 있고, 남 욕하고, 적당히 속이고, 적당히 감추고 뭐 그런.'옥희의 영화'는 다소 불편한 구석이 없지 않지만, '우리 선희'는 약간의 긴장감과 의외로 우스운 구석이 있는 영화라 보기엔 더 재미있다. 감독의 복잡한 영화적 의도를 '숨은그림찾기'처럼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예전에 '생활의 발견 (2002..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 1992

영화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말 'We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 .. 흐르는 강물처럼 스코틀랜드 출신 장교로 목사 리버런드 맥클레인은 아들 노만과 폴, 부인과 함께 몬타주 강가의 교회에서 살면서 낚시를 종교와 같은 정도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즐기며 살아간다. 송어를 낚는 제물낚시꾼인 그의 영향을 받아, 그의 아들들도 아버지로부터 낚시를 배워 어려서부터 낚시를 좋아한다. 세월이 흘러 장성한 두 형제는 각기 다른 사회적 지위를 얻으며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며 포커를 즐기던 폴이 갑자기 길에서 폭행을 당해 사망하는 사고가 생기고, 아버지와 노만은 사랑하는 폴을 잃은 상실감에 깊은 고뇌를 느끼게 되는데..

마지막 황제 The Last Emperor, 1987

아주 예전 꼬꼬마 시절에 이 영화를 본 기억이 있지만 사실 몇몇 장면들이 어렴풋이 기억날 뿐 영화가 어떠했는지 잘 떠오르지 않던 터에 최근 리마스터링한 작품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다시 보니 전혀 새로운 영화로 다가 온다.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는데 이 영화 대사가 '영어'다. 당연히 영화가 중국어 대사일 거라고 내가 생각했던 이유가 무안하기도 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무언가 굉장히 어색한 면도 없지 않다. 청나라 궁중 복장에 영어라.. 그래도 영화가 흘러가면 영어 대사가 몰입을 크게 방해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감독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였다는 사실도 이제 알았다. 영상에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라 그런지 1987년작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만큼 화면 구도나, 색감이나, 앵글의 움직임이 아주 세련됐..

첨밀밀 甛蜜蜜, 1996

아....이 영화가 벌써 20년전 영화랍니다. 첨밀밀 甛蜜蜜 ...  지금 보면 촌스럽기 그지없는 80년대 홍콩 풍경 속에 너무나 순진하고 억척스러워 왠지 안쓰러운 예전의 우리...아니면 지금 어디선가의 우리인 듯 한 주인공들입니다.   애잔하고 잔잔한 그래서 더욱 그리워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예요. .... ....   오래된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 시절이 그립기 때문이겠지요. 아니면 그 누군가가 그리워졌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90년대 영화의 그 따뜻한 감성이 그 시절을 지나온 우리에겐 가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명 형님 잘 지내고 있죠? ...  우리 옥이 누나가 이렇게 이뻤는지 몰랐네요. ....  보고 싶네요 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