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아프다.
아 이런 건 너무한다. 소녀가 아프다니.
영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코끝이 시큰거리면 어쩌라는 걸까.
소녀가 아픈 설정은 아름다운 화면에 비례해 슬픔을 깊게 만들어 영화를 보는 내내 기분을 가라앉힌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소녀가 아프단다.
어느 학원순정만화같이 예쁘지만 애잔하게 슬픈 이야기.
교실과 칠판이 나오고, 도서관 열람실이 나오고, 교복을 입은 숫기 없는 남학생과 당돌한 여학생이 나온다.
이런 일본 감성 영화는 참 오랜만에 본다.
나이가 들어 예전처럼 십 대의 맑고 말랑말랑한 감정이 사그라들었을 텐데,
오랜만이어서인지 아니면 나이가 너무 들어버려 회한이 깊어진 건지 여운이 꽤 길게 간다.
소녀의 밝은 미소와 너의 췌장을 먹고 싶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이 영화를 확실히 각인시킨 건 두말할 나위 없지만,
나긋나긋 던져진 대사가 의외로 이리저리 맴돌다 가슴에 콱 와닿는 장면이 많다.
설정이 진부하다고 타박할 수도 있는데, 진부한게 나쁜 건 아닌 듯하다.진부한 것을 진부하게 보여주는 것이 나쁘지.
산다는 것, 타인을 대하는 것,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
알고 보면 인생은 진부한 것들로 가득 차있다.
우리가 얼마나 알차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진부한 것들이 소중한 무엇 무엇이 되지 않을까 싶다.
소녀의 엄마가 소년에게 했던 '네 덕분에 사쿠라는 마지막까지 꽉 찬 삶을 살 수 있었어'라는 짧은 말이 내게 큰 울림을 주는 이유도 그러하다.
소녀가 자기의 생을 통해 말해주고 싶었던 것도 결국 아름다운 인생이 아니었을까.
소녀의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떠올려보며 살아간다는 것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슬프지만 예쁘고 희망적인 착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