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하는 사람

궁금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소중한 일상을 기록합니다.

자세히보기

여행 旅行/유럽배낭여행 | 2004

유럽배낭여행 [빌락 - 베네치아]

제이우드 || 2023. 6. 15. 21:56

2004.10.23. 土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컴파트먼트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린이 '우디네'에서 내릴 때 작별인사를 한 뒤로 도무지 잠이 들지 않는다.

눈꺼풀은 자꾸 감기는데 흔들리는 열차소리만 점점 크게 들릴 뿐....

 

몸이 공중에 붕 뜬 것 같다.

..

 

6시 30분....

 

어느 이름 모를 역에서 사람들이 모두 다 내리고 컴파트먼트 안에 혼자 덩그라니 남겨졌다.

밀려오는 졸음 때문에 모든게 아련하다.

 

'후.....정말 자고 싶다....'

 

좌석을 눕혀서 침대를 만들어 배낭을 베고 누워서 잠을 청했다.

베네치아까지는 아직 두 시간정도 남았으니까 한 숨 잘 수 있을 것 같다.

 

....

바람 빠진 튜브처럼 몸이 축 늘어진다.

..

.

 

바다를 가로질러 베네치아로..

인기척에 눈을 떠보니 왠 할아버지가 옆에서 신문을 보고 계신다.

'여기가 어디야...?'

 

이탈리아 사람들이 목청이 큰지 컴파트먼트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꽤나 시끄럽다.

'Metres'역....베네치아로 들어가기 바로 전 역이다.

 

그래도 딱 맞춰서 눈을 뜬 것 같다.

꽤 단잠을 자고 있었는데....하품

....

'Metres'역을 빠져나간 열차는 곧장 바다 위를 달리듯이 바다 한 가운데로 난 좁고 긴 선로 위를 달려갔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차창 밖으로 안개가 자욱하게 낀 아드리아해를 바라보고 있으니 마치 몽롱한 꿈속같다.

옥색 바닷물에 뿌연 물안개.....

그렇게 제법 바다 위를 스치듯 달려가자 거짓말처럼 베네치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면위에 띄워놓은 것처럼 솟아있는 건물과 나무들....

바다와 하늘이 모두 뿌옇게 흐려진 그 가운데 정말 거짓말처럼 베네치아가 다가왔다.

 

눈으로 보고 있지만....이건 정말 꿈인 것 같다....

 

'어떻게 이런 곳이....'

....

아침 8시 40분....

배낭을 메고 산타루치아 역을 나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내가 유럽에 와서 본 그 많은 거리의 풍경들 중에서 제일 독특한 것 같다.

커다란 옥색 돔 앞으로 카다란 운하가 넘치듯 흐르고 그 위로 작은 배들이 분주하게 떠다닌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이 공기.....

 

베네치아의 첫인상은 너무나 신비롭다.

 

베네치아에서 숙소 잡기

베네치아는 숙소잡기가 다른곳에 비해 상당히 어려운 곳이다.

좁은 곳에 많은 사람과 건물이 밀집해있어서 물가도 다소 비싼편이고, 숙박시설도 그렇게 넉넉한편이 못된다.

그래도 '나 하나 들어갈 방 정도는 있겠지' 하면서 예약은 안 했다. 여지껏 그래왔으니까...

 

역 앞에 공중전화가 여러대 있는데 이놈들이 동전을 계속 뱉어내기만 하고 도무지 작동을 안 한다.

'딸깍~ 딸깍~ 딸깍~'

 

배낭을 질질 끌고서 공중전화기를 옮겨가며 계속 동전을 밀어넣자 겨우 한 대에서 신호음이 울린다.

미리 생각해 둔 유스호스텔에 전화를 했더니 독특한 억양의 영어로 찾아오는 길을 더듬더듬 일러준다.

 

24시간 티켓을 끊어서 수상버스 '바포레토'를 타고서 'Zittele' 섬으로 향했다.

....

좁은 운하를 빠져나온 바포레토가 넓은 바다를 가로질러 도착한 'Zittele' 섬은 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주택가다.

축축히 젖은 보도블럭이 바다와 건물을 간신히 떼어 놓고 있다.

 

'이런 곳에서 살면 기분이 어떨까?....좋을까?'

출렁거리는 바닷물이 연신 보도블럭으로 넘쳐 올라오는 참 기묘한 곳이다.

....

 

유스호스텔에 갔더니 빈 방이 생길지는 오후 1시 이후나 되어야 알 수 있단다.

'이런....'

다시 바포레토 정류소.

아무래도 다시 산타루치아 역으로 돌아가서 그 근처를 한 번 돌아보는게 더 좋을 듯 싶다.

배도 고프니 뭐 간단한 걸로 좀 먹어야될 것 같고...

 

밤새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배도 고프고....상태가 별로 안 좋다....후후

 

....

....

 

역으로 돌아와 다시 전화통을 부여잡고 여기저기 전화를 해 봐도 빈 방을 찾을 수가 없다.

토요일이라 죄다 예약이 다 됐단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토요일이네....

 

'크....주말 베네치아라....예약을 했어야 하는데....'

 

배낭을 메고서 산타루치아 역 주변 호텔을 돌아봐도 들려오는 대답이라고는 "No vacancy~" 뿐이다.

 

다급한 마음에 역 안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약간의 수수료를 지불하고서라도 빈 방을 찾으려 했더니

베네치아 일대는 물론이고 'Metres'역 부근에도 싱글룸은 모두 동났다고 한다.

'난리났네...'

 

일단 빵이랑 우유 한 잔으로 허기를 달래고 다시 전화통을 부여잡았다.

책에 있는 전화번호 죄다 눌러서라도 꼭 방을 찾고야 말테다.....꼭

 

....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민박집이죠? 거기 지금 방 있나요? 한 명인데요..."

"한 명이요? 음 지금 여기 있는 분이 오늘 어떻게 할 지 아직 결정을 못 내리셨는데...."

"그래요..."

"혹시 괜찮으시면 다른 곳을 소개시켜 드릴게요....제 친구가 하는 곳인데 작은 아파트에요"

"아파트요?"

"네, 아침 제공 되구요 20유로에요....어때요?"

"음...20유로...좋습니다."

"거기 어디세요?"

"산타루치아 역이요..."

"그럼 거기 13번 트랙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사람을 보낼테니까...."

 

....

 

조선족 아저씨를 따라 다소 칙칙한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꽤나 낡은 건물이 나온다.

말이 아파트지 작은 다세대 주택이랑 비슷하다.

축축하고 무거운 공기가 가득한 그런 곳이라 약간 미간이 찌푸려졌다.

사기 당하는거 아닌가 하고 다소 우려한 바가 있었지만 나름대로 주인 아주머니는 친절하다.

지금껏 지냈던 다른 민박들보다는 좀 덜 깨끗하지만 이만하면 그렇게 엉망은 아닌 것 같다.

다만 특이한 점은 주인 아주머니가 중국인이라는 사실....

 

베네치아에서 숙소 잡기란 역시나 듣던대로 진땀 꽤나 흘려야 하는 일이다.....휴

침대에 대충 짐을 부리고 밤새 묻어온 열차의 먼지를 씻어냈다.

 

베네치아, 베네치아

씻고 잠시 쉬다보니 어느덧 점심 때...보조가방을 달랑 둘러 메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한 바퀴 휙 둘러보고 들어와서 낮잠이나 자야지.

....

 

이탈리아로 넘어오니까 날씨가 확연히 풀린 것 같다.

사람들의 옷차림과 얼굴에 닿는 공기를 봐서 여기는 아직도 초가을이다.

그래서 그런지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과 향긋한 과일들이 한껏 생기있어 보인다.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 한 접시로 점심을 해결했다.

어찌나 고소한지....아마 마요네즈가 들어간 듯 싶다.

맛은 좋은데 많이 먹으면 조금 물릴 것 같다.

운하가 생기고 건물이 생겼는지...

건물이 먼저 생기고 운하가 생겼는지...

 

베네치아의 거리는 눈길 닿는 곳 모두가 정말 독특하고 신기하다.

'희한하지....'

 

곤돌라가 정박해 있는 다리를 건너...

 

 

성당 앞 넓은 광장을 지나...

 

다시 산타루치아 역 광장.

여기서 '리알토 다리'까지 바포레토를 타고가서 '산 마르코 광장'까지 갔다가

골목골목을 지나 '아카데미아'까지만 갔다가 돌아오면 낮잠 잘 시간은 나올 것 같다.

 

....

 

바포레토가 정류장에 쿵 부딪치자 바닥이 한 번 술렁거린다.

바포레토 탑승구에는 바포레토가 정박할 동안 정류장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바포레토와 정류장을 밧줄로 고정시키는 직원이 있다.

손놀림이 어찌나 민첩한지 밧줄을 묶는데 1.5초 정도 걸리는 것 같다.

'배가 버스처럼 운행되다니....희한하다...'

 

'리알토~' 하는 차장의 외침과 함께 바포레토의 스크루가 굉음을 내며 새하얀 물보라를 일으킨다.

 

리알토 다리

바포레토를 타고서 S자로 부드럽게 휘어진 운하를 가로지르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멋진 구경거리다.

우아하게 미끄러지는 곤돌라와 운하를 따라 빼곡히 늘어선 낡고 물 때 뭍은 건물들을 보면

그 독특한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만들어낸 광경 중에서 이 베네치아만큼 신비로운 모습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

리알토 다리 근처는 사람들로 한가득이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다리라는 그 명성답게 리알토 다리는 16세기에 지어졌지만 여전히 견고하고 멋진 다리다.

리알토 다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오늘날의 이 베네치아를 존재하게 만든 것은 다 오래전부터 축적된 토목과 건축 기술 덕분일 거다.

 

서양 건축의 힘이지...

....

자가용 보트에서 한가로이 신문을 펼쳐 보는 할아버지.

'자가용 대신 자가용 보트라....흠 멋진데...'

.....

배를 묶어 놓기 위해 운하에 박아 놓은 나무 기둥들이 촘촘한 선을 이루어 베네치아의 풍경에 멋을 더해준다.

나무를 박아 놓을 정도라면.....이 운하의 깊이는 얼마쯤 될까?

....

....

건물 사이로 난 좁은 운하 안에서 곤돌라가 줄줄이 빠져나오고 있다.

곤돌라 요금이 비싸기 때문에 이렇게 떼를 지어 미끄러지는 광경은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라고 한다.

돈 많은 일본 단체 관광객들 덕에 귀한 구경을 한 셈이네....후후

번잡한 리알토 다리 위....

계닥식으로 된 다리 난간쪽에는 작지만 꽤 고급스러운 가게들이 이어져 있다.

....

유명한 베네치아의 종이 가면....

골목을 거닐다 보면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가면들이 즐비하다.

옛날에는 저걸 쓰고 얼굴도 모르는 파트너와 은밀하게 춤도 추고 무대에서 화려하게 연기도 하고 그랬겠지.

뭐 요즘도 무도회에서 저런 가면을 쓰긴하데....

 

가면만 쓰면 아무리 못생긴 사람이라도 멋있고 아름답게 보일테니까,

외모를 배제한 정말 내적인 교감만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자신의 어둡고 추한 모습을 가리기 위해 이렇게 비밀스러운 가면을 썼을지도 모르고...

 

화려하고 섬세한 이 가면들이 아주 은밀하고 뭔가 비밀스련 묘한 느낌을 주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거다.

....

베네치아는 과거서부터 유리제품의 교역으로 아주 유명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고 무역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가지 전까지

베네치아가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던 것도 다 이러한 해상교역을 통해서였다.

아무튼...

무라노 섬에 가면 유리세공하는 작업장이랑 가게도 많다고 하니 내일은 거기도 한 번 가봐야겠다.

....

 

산 마르코 광장

미로처럼 얽힌 베네치아의 골목길을 요리조리 헤집어 가며 도착한 산 마르코 광장.

베네치아의 중심지다.

좁은 골목이 주는 밀폐감이 갑자기 사방이 확 트인 넓어진 광장으로 나오면서 순식간에 확 사라져버린다.

거대하고 규칙적인 회랑이 광장을 감싸고 있는 장관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그보다 더 많은 비둘기 떼가 산 마르코 광장을 채우고 있다.

베네치아에서 이렇게 넓은 공간은 여기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

....

살다 살다 이렇게 비둘기가 많은 곳은 처음 본다.

온통 비둘기 털이 날리고 냄새도 나고....

이녀석들이 먹이를 보고 일제히 한곳으로 걸어갈 때면 쳐다보기 어지러울 정도로 징그럽다는 생각도 든다.

'너무 많다....무섭다 비둘기떼....후후'

산 마르코 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종루' Campanile...

석조 건물이 저렇게 높이도 지어질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는 놀라운 건축물이다.

'대단해 정말....'

올라가면 전망이 진짜 좋을 것 같지만 요금이 다소 비싼 관계로 일단 보류...

나중에 시간이 남으면 그때 한 번 올라가보든가 해야겠다.

 

....

산 마르코 대성당이랑 두칼레 궁을 지나자 아드리아해의 아련한 모습이 보인다.

물 위에 종이 한 장을 띄워놓고 그 위에 세워진 것처럼....

아드리아해가 출렁거리는 저 건너편으로 산 조르지오 마조레 성당이 물안개에 싸여 흐릿하게 일렁이고 있다.

 

'흐으음~ 하아~ '

 

오랜만에 바다를 보니까 참 좋다.

간들거리는 물결에 시원한 바람.....

....

지반 침하가 있는 곳에서 다시 공사를 하고 있다.

말뚝을 박고 토사를 채우고....공정이 꾀나 복잡하다.

 

베네치아가 점점 가라앉고 있다는 말도 있는데....

바닷물이 수시로 넘쳐들고 연약해진 지반이 이대로 계속 내려앉으면

언젠가는 정말 베네치아가 물에 잠겨 버릴지도 모르겠다.

당장 그런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무슨 대책을 세우든가 해야지...

....

바다를 옆에 끼고 배들이 정박해 있는 선착장을 따라 걷는다.

 

오늘은 유난히도 물안개가 심한 날인가보다.

....

 

아카데미아

다시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아카데미아 미술관 쪽으로 향했다.

 

....

베네치아에서는 지도가 소용없다는 말이 있다.

골목길이 어찌나 복잡한지 정확한 지도도 구하기 힘들뿐더러 지도를 본다고 해도 길 찾기가 꽤 힘든 곳이다.

미로처럼 얽히고 섥힌 베네치아의 골목길을 걷다보면 어리둥절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할 일이 참 많다.

 

그나마 정확하다는 론리플래닛 지도를 보고 있지만 베네치아의 골목길은 역시나 참 난해하다.

그저 대충 방향만 보고 걷는 수 밖에....걷다보면 나오겠지....후후

골목을 걷다보면 가끔 숨어있는 작은 광장을 만나게 된다.

거기는 노천카페도 있고 동네 아이들이 뛰어다니면서 술래잡기를 하는 곳이다.

 

아니면 물이 담긴 와인잔을 비비면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를 만날 수도 있고...

어떻게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소리가 참 좋다......음음음음

 

한 두 번 헤매긴 했어도 아카데미아 다리까지 쉽게 당도했다.

....

나무로 지어진 아카데미아 다리 위로 터벅터벅 올라가자

대운하와 '산타 마리아 살루떼 성당'의 전경이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바포레토도 떠가고....곤돌라도 떠다니고....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는 대운하의 끄트머리에 하얀 돔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산타 마리아 살루떼 성당...

운하에 바짝 붙어 세워진 멋스러운 건물들.....

흔히 엽서같다고 하는 풍경이 바로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으아~ 좋다~ '

베네치아는 그냥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롭고 특이하고 매력적인 것 같다.

지금 바로 내 눈앞을 흐르는 저 운하도 새롭고,

그 위로 떠다니는 바포레토도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세상엔 참 다양한 곳이 있는거다.....

....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내일로 남겨두고 다시 산타루치아 역으로 가는 바포레토에 몸을 실었다.

이제 가서 낮잠 좀 자야지....

 

휴식..

침대에서 일어나 부시시 눈을 떠보니 저녁 7시...몸이 한결 개운하다.

역시 새벽을 꼬박 지새운다는건 너무 힘든 일이다.

....

 

따뜻한 아드리아해의 수온 덕분인지 베네치아의 밤은 여느곳보다 훨씬 포근하다.

저녁 7시만 되도 거리가 한산해지던 유럽의 다른 도시와 달리 베네치아의 밤은 여전히 생기가 넘친다.

화려하게 불을 밝힌 레스토랑에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거리는 아직 밤을 잊은 여행객들로 북적거렸다.

 

오늘 기분도 좋고 간만에 레스토랑 풀코스로 먹어줘? 후후

실은....아침에 빵 하나와 우유 한 잔 마시고 점심 때 스파게티 달랑 한 접시만 먹었더니 배가고파 못살겠다.

여행가서 배고픈 것만큼 처량한게 없는데...

....

 

손님이 제법 많은 적당한 크기의 레스토랑 17유로 풀코스.

 

야채 수프, 스테이크와 샐러드, 레몬소다, 카푸치노~

애피타이저에서 디저트까지....이쯤이면 배낭여행객에게는 최고의 사치라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어쩌나....피곤할 때는 잘 먹어야 힘이난다. 그래야 내일 또 열심히 돌아다니지....후후

 

여유있게 스테이크를 썰면서 오늘 하루의 여독도 천천히 녹여냈다.

왠지 오늘 하루는 참 길게 느껴진다.

잠을 덜 자서 그런가?

....

..

 

스테이크를 물리고 카푸치노에 각설탕을 떨어뜨려 하얀 거품을 홀짝홀짝 마셨다.

유럽은 이렇게 테이블에 앉아 천천히 늑장을 부려도 아무도 눈치를 안 주는게 참 마음에 든다.

느긋하게 앉아 쉴 수 있어서 더 좋고....

....

레스토랑에서 나와 잠시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를 걸었다.

베네치아의 밤은 낮과는 또 다른 느낌을 가져다 준다.

고요한 적막감과 함께 어디선가 들릴 듯 말 듯 출렁이는 물결소리가 공기속에 묻어 있는 것 같다.

 

하얀 불빛들이 운하의 물결 위에 일렁거리고

나는 지금 그 부서지는 불빛들을 바라보고 있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