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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반도 [2011.6.12]

제이우드 || 2023. 6. 3. 15:58

운전을 하다보면 내 마음대로 어떤 공간 속을 달려 나가는 그 기분이 무척이나 좋지만...

또 그리고 왼쪽 팔꿈치를 차창에 받쳐 머리를 괴고 느긋이 핸들을 돌리는 느낌도 좋지만...

역시 운전은 다른사람이 해주고 나는 조수석에 편안히 다리를 꼬고 삐딱하게 기대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편이 훨씬 좋다.


구름은 없지만 뿌옇게 흐린 날.

지평선이 보이는 드넓은 들판을 달리자니 방향을 잃어버릴 만큼 몽롱해진다.


사방이 탁 트인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다가

낯선 거리와 도시의 이정표를 따라 달리고

커다란 가로수가 도열한 운치있는 시골길이 나오고

....그렇게 달린다.

한....3시간 달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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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로 접어드는 전나무길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길 중 하나란다.

시원시원하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그렇게 넓지도 좁지도 않은 하얀 흙길이 어우러져 청량한 느낌을 담뿍 주는데,

그냥 계속 걷고 싶은 길이다.


이렇게 한 3시간은 걷고 싶은 그런 길.

시선이 요란하지도 않고, 향기도 좋고, 시끄럽지도 않은 고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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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펴고 변산반도를 보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포항과 이곳은 완전히 반대편이다.

서해바다가 있는 곳.


동해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런 바다다.

탁트인 수평선과 밀려드는 파도, 파랗게 출렁이는 물빛이 숨막히게 다가오는 곳.

무언가 새로운 다짐을 하거나 어떤 용기를 얻고 싶으면 동해로 가면 된다.

동해 바다를 보면 그런 용기가 생기니까 말이다.


반면에 서해는 약간 서정적이고 가슴 먹먹한 그런 바다인 것 같다.

낭만적이기도 하고.


사실 서해바다는 본 적이 별로 없다.

해뜨는 걸 보러 간 적은 많았지만, 해지는 걸 일부러 보러 간 적은 없었다.

본의 아니게 서해와 멀리 떨어진 곳에 살기도 했거니와

지는 해를 바라볼 상황이나 감성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해가 바다로 잠기는 모습은 바다에서 떠오르는 모습만큼 오묘한 것 같다.

저렇게 바다 속으로 내려가 식어버리면 다시 떠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어둠을 견디다가 갑자기 찬란하게 떠오르는 아침 해와 달리

서서히 빛을 잃으며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을 한 참이고 바라볼 수 있는 저녁 해는 왠지 더 애뜻하다.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점점 떠나보네는 아쉬움과

그 모습을 한 참 지켜봐야만 하는 안타까움 같은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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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와 서해, 그래도 공통점은 있다.


어느 바다든 위로가 되어 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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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꼭 바다만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는건

짭쪼름한 '간장게장'일 수도 있고, 고소한 '백합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게장'과 '젓갈'이 유명한 격포항과 곰소항이 인근이라

눈에 띄는 식당이 모두 맛집이라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원래 그리 짜게 먹는 편은 아니지만, 유명세 만큼이나 '마음을 위로하는 맛'이다.


다만 좀 과하게 먹으면 위장이 소금에 절여진 것 처럼 다음 날 까지 물이 좀 켜이고,

뜨거운 '백합죽'을 한 입에 털어 넣을 경우 입천장을 홀라당 데는 것만 조심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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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을 거두는 철이 아닌지

염전에서 하얀 소금을 거두는 염부의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쉽지만

들판 가득 거울처럼 반짝이는 염전과 나무로 만든 낡은 소금창고가 꽤나 이채롭다.


곰소 일대가 '젓갈'로 유명한 것도

우리나라에서도 알아주는 이 일대 염전에서 생산된 질 좋은 소금 덕분이라고 한다.


빛과 바람 그리고 기다림이 만들어내는 것.

낡은 소금창고 안에 눈처럼 쌓여 있는 소금은 정말 염부의 땀방울 만큼이나 짤 것이다.


'빛과 소금이 되어라'라는 말을 한다.

꼭 필요한 존재가 되라는 말. 

하지만 참 그렇게 되기 힘든 말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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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큰 배도 드나들었다는 곰소항은

이제는 젓갈이 유명한 작은 어항이다.

그래도 전국에서 몰려드는 식객들 덕분에 적당히 분주한 주말 아침을 맞는다.

어리굴젓, 토하젓, 꼴뚜기젓....

가게마다 스무가지가 넘는 젓갈을 수북하게 쌓아놓고 파는데

이름도 생소한 젓갈들의 짭조름한 내음이 항구에 한 가득이다.


서해라 그런지 묶어둔 배가 뻘에 잠길 정도로 바닷물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끝도 없는 갯벌이 깔려있다.


이 갯벌이 길러낸 생명들로 사람이 살고

또 사람들은 갯벌을 찾아 오고 갯벌은 또 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나눠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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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반도 끝에서 고군산군도 신시도를 거쳐 군산까지는 그 유명한 새만금방조제가 뚫려있다.

기술의 놀라움보다 인간의 어마어마한 무자비성에 더 놀라게 되는 대공사판의 현장.


'03년도에 고군산군도에 있는 선유도에 갈때 군산에서 배를 타고 간 적이 있다.

그때 방조제가 거짓말처럼 수평선을 향해 뻗어져 나가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었는데

어느 덧 세월이 지나 그 말도 안 되는 공사가 마무리 되고

내가 배를 타고 갔던 아름다운 선유도를 무자비한 도로 한 켠에 서서 가까이 바라보니 반갑기보다 허탈하다.


그냥 내 추억 한 켠이 사라진 것 같은 섭섭함일까....


선유도에 배를 타고 갔던 그때나

방조제 위에서 선유도를 바라보는 지금이나

많은게 달라진 것 같지만

나는 그대로인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