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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2009.11.21 - 22]

제이우드 || 2023. 6. 3. 15:50
첫째 날 [09.11.21]

춘천행


"얼굴 본지도 오래 됐는데, 함 봐야지?" /  "그래~ 나야 좋지~"

라고 말은 했는데, 이거 포항에서 춘천 한 번 갈라니 만만치가 않다. 바로 가는 버스가 장장 6시간이나 걸린단다.

크....

차마 6시간 동안 버스만 탈 엄두가 나지 않아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동대구행 첫 기차를 타고 일단 대구로 간다.

동대구에서 고속버스를 타면 춘천까지 3시간 반. 도착하면 12시 반 정도 될 듯 싶다.


그래도 반겨주는 친구들이 이렇게 불러주니 이정도 고생쯤이야......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멀다. 허헛


오랜만에 타보는 한산한 새벽기차.

....

동대구 역에서 내려 아직 히터가 들어오지 않는 차가운 춘천행 고속버스에 앉으니 잔뜩 움츠려 든다.

이른 아침이라 날씨가 꽤나 차다. 히터가 나오면 차창에 허연 김이 잔뜩 서리겠다.


춘천 春川

그 이름만 들어도 아련한 설레임이 묻어 나는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인 듯 하다.

왠지 모를 추억이 남아 있을 것 같고, 왠지 누가 기다려주고 있을 것만 같은 곳.

지금은 쇠락해버린 경춘선이지만 풋내기 시절 낡은 기차타고 대성리며 강촌으로 MT갔던 기억이 어렴풋 하다.

이제 기억마저 아스라한 그때. 벌써 9년 전이다. 어이쿠나.


히터가 나오고 차안이 따뜻해지니 꾸벅꾸벅 잠이 쏟아진다.

몇 번 졸다보니 춘천이다.

어...별로 많이 잔 것 같진 않은데...후후


춘천 터미널에 내려 반가운 얼굴들과 오랜만에 인사를 나눈다.

얼마 전 애 아빠가 된 최군과 입사 후 살이 쪽 빠진 류군. 최군 결혼식때 보고 안 봤으니 우리 한 2년 만인가?

"닌 살이 더 빠졌네 !!"

이놈들 말대로라면 나는 소멸하는 점이 됐을 거다. 푸핫.


멀리 왔으니 이제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야지?



춘천 막국수

다들 경상도 놈들이라 유명한 춘천 음식을 잔뜩 기대하고 있다. 춘천 막국수에 춘천 닭갈비.

닭갈비는 종종 먹지만 왠지 춘천에서 먹는 닭갈비가 훨씬 더 맛있을 것 같고, 막국수는 아직 한 번도 먹어본적이 없다.

아무튼 점심은 춘천 막국수로 시작. 오늘 포식 하겠네~


양념이 맛있는 막국수.

침을 꼴깍 삼키며 슥슥 비벼서 맛있게 한 그릇 뚝딱. 메밀 국수라 그런지 맛이 참 깔끔하다. 

후식으로 메밀전도 시켜먹으니 배가 불러 숨쉬는 게 다 힘들다. 흐흐. 날 굴려서 데리고 가라~


배도 부르니 이제 슬슬 춘천 유람이나 가 볼까?




청평사 淸平寺

볼거리가 넘치는 춘천에서 시내에서 제일 가깝고 경치도 좋다는 '청평사'가 우리의 첫 관광 코스.

근데 청평사 가는 차 안에서 최군이 운전하며 하는 말을 듣고서 정말 빵 터졌다.

자기가 인터넷 카페에 주말에 남자 셋이 춘천에서 뭐하고 놀면 좋을지 글을 올렸는데 댓글이 가관이란다.

제안 1. 술 마시고 나이트 가세요.
제안 2. 고스톱.......................!!
제안 3. 남자 셋이 왜 놀아요?......

낄낄낄낄


호수에서 배 타는 것도 색다른 느낌이다. 날씨도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해 물결조차 일지 않는다.

춘천 오면 추울 줄 알고 잔뜩 껴입고 왔는데 오늘 꽤나 복받은 날씨다.

조금 낡아 보여 더 운치있는 유람선 선미에 앉아 따스한 초겨울 햇살을 받으니 그렇게 춥진 않다.


하나 둘 사람들이 밀려 타고... 어느새 빈 자리 없이 꽉 들어찼다.

작은 물고기들이 배 뒤켠에서 살랑거리며 놀다가 스크류가 돌아가니 놀라서 사라진다.


이윽고 우리 통통배는 하얀 포말을 길게 늘어뜨리며 호수 위를 미끄러져 간다.

선착장에서 청평사 입구까지 배로 15분 거리.

거리는 짧지만 배타는 기분은 상쾌하니 참 좋다.

....


배에서 내려 청평사까지 이어진 길이 가을이면 단풍으로 곱게 물드는 아름다운 길이란다.

아쉽게도 단풍이 지고 낙엽이 떨어져 있지만 굽이굽이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좁은 흙길이 꽤나 운치있다.


이런 길을 유부남이랑 걷다니.....!!


아무튼 맑은 물이 제법 졸졸졸 흐르는 계곡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니, 커다란 나무 사이로 아담한 경내가 들어온다.

회전문때문에 서원같이 보이기도 해 여느 사찰과는 다른 모습이다.

....


건물이 많이 소실되어 경내가 크진 않지만 고요한 사찰분위기가 나름 운치있어 좋은 것 같다.

신발을 벗고 조용히 삼배하고 나오니 새삼 색다른 기분이다.

원래 여행 중에 절에 가도 삼배 잘 안 하는데....오늘은 왠지 그냥 하게 되네.


사방에 산이 감싸고 있어 풍광이 참 좋다.

공기도 맑고....강원도라 그런가.

....


나가는 배 시간에 맞춰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내려간다.

해가 산 뒤로 숨으니 계곡 공기가 금방 스산해진다.

겨울은 겨울인가보다.

언젠가 가을에 단풍이 짙을 때 다시 오면 좋을 곳이다.

....


돌아가는 유람선 한 귀퉁이 낙서.

이놈....군생활은 잘 하고 있을까? 훗훗




춘천 닭갈비

추우니 또 배고프다. 우리의 저녁 메뉴는 '닭갈비'.

춘천 명동길 닭갈비 골목에 들어서니, 정말 골목 끝까지 닭갈비 음식점이 쭉 늘어서 있다.

그 중에서 또 제일 유명하다는 '명동 1번지'.

일부러 일찍 왔는데 벌써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가게 밖까지 늘어서 있다.


가게 안은 닭갈비의 매콤한 양념 냄새가 한 가득. 맛있게 닭갈비를 먹고 있는 사람들도 한 가득.

쳐다보고 있으니 더 배고프다. 꼴깍.


인고의 기다림이 끝나고 드디어 푸짐한 닭갈비 앞에 앉게 됐다.

따끈하고 매콤하게 익은 통통한 닭갈비를 상추에 싸먹고 '이슬' 한 모금. 와우.


맛있네를 연발하며 먹고 먹고 또 먹다보니 닭갈비도 뚝딱 없어졌다.

역시 춘천에서 먹는 '춘천 닭갈비'라 더 맛있는 거 같으네. 흐흐

....


겨울 연가보고 명동을 찾아 오는 일본 관광객이 아직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욘사마......스고이데스네~. 나도 명동길 표지판 한 컷.




춘천 야경

배도 부르고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춘천 야경을 감상하러 구봉산으로 향한다.

춘천 야경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구봉산에 오르면 남산 타워처럼 회전하는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다는데....


물론 남정네 셋이 가긴 좀 멋쩍은 곳이긴 한데, 괜찮다.....우리에겐 유부남이 있으니. 크크


화려하진 않지만 그래도 아기자기하게 이쁜 춘천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창가에 앉아 있으면 아주 천천히 테이블이 회전하는게 재밌는 곳이다.

....


저녁무렵 친구랑 카페에 앉은 것도 참 오랜만이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인 게 참 많다.

머 그리 바쁘게 사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훗.


요 고구마 라떼도 오랜만이네.

달큰하니 언제 마셔도 참 맛있는 녀석이다.

....


테이블 위에 올려진 카메라 셔터를 무심코 눌렀더니 뜻하지 않게 분위기 괜찮은 사진이 찍혔다. 보너스 샷.


밤은 깊어 가고....

만나면 하는 얘기. 그저 그런 얘기지만 늘 하게되고 궁금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또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라를 지키는 최군 덕에 오늘 밤은 화천까지 올라가 신세를 져야 할 것 같다.

마눌님과 애기가 없는 Olleh~ 상태라 ㅎㅎㅎ


못 다한 얘기는 가서 하도록 해.




둘째 날 [09.11.22]

여기는 밤도 아침도 고요한 곳이다. 화천군 사창리.

아침 공기가 공기 청정기에서 갓 뿜어 나온 듯...아니 공기 청정기 따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맑다.

곳곳에 위치한 부대 표시만 없으면 그냥 조용한 시골 풍경에 산 좋고 공기 좋은 산골 마을.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철원군에 있는 승리 전망대다.

....



DMZ

솜털 가득한 초병들이 지키고 있는 게이트를 지나 산을 오르니 거짓말처럼 철책이 나온다.

태극기와 UN 깃발이 나부끼는 초소와 끝이 보이지 않는 철책선.

무거운 적막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비무장 지대는 너무나 평온하다.

그냥 저기가 여기같고 산들도 매한가지인데, 빤히 바라보이는 저 들판을 걸어가 볼 수 없다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안타깝다....딱히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념도 사그라들고 이제 반공 표어에 하품만 할 세대가 점점 늘어만 가는데 이대로 어쩌자는 건지.


망원경 넘어로 조그만 사람의 형체가 움직인다.

걷다가 멈추고 또 걷다가 멈추더니 천천히 들판을 가로 질러 간다.


춥지 않을까....


한가로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우리 뒤 철책 너머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웃고 사는지 모르겠다.

저들도 우리와 같을까.

....




송어 회

"냐...직장인, 맛있는 거나 쏘고 가라" / "머 사줄래 직장인?"

역시, 직장인은 친구들을 만나면 쏴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흐흐흐


우리의 류군. 하루 평균 수면시간 4시간에 야근을 밥먹듯이하는 불쌍한 직장인.

나. 하루 평균 수면시간 8시간에 아직 세금 안 내는 날날한 대학원생. 후훗.


최군의 친절한 드라이빙으로 우리의 점심은 인근 유명한 민물 송어 횟집으로 낙찰.

오....고급 민물 송어회를 먹다니. 이번 여행은 춘천 맛 기행이 된 것 같으네.


수조에서 한가로이 놀던 송어는 어느 덧 회로 둔갑해 우리 앞에 먹음직스럽게 나타났다. 미안해~


민물회는 처음 먹어보는데 바다회 만큼이나 쫄깃쫄깃하니 맛있다. 한 점 두 점 잘도 넘어 간다.

알싸한 매운탕에 밥 한 그릇까지.

역시 직장인이 사주는 거라 그런지 더 맛있네. 잘 먹었어 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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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점심까지 맛있게 포식하고 이제 바쁜 발걸음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다음엔 다같이 서울에서 한 번 볼까?

매번 이렇게 부담없이 만나 격없이 어울릴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참 좋은 재산이다.


시간이 갈 수록, 나이를 먹을 수록 소중해지는 녀석들.


그나저나 벌써 2시. 포항까지 언제 또 내려가려나....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