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은해사
네비게이션이 쫑알 쫑알 알려주는데로 가는 것 보다 지도랑 표지판 보고 어디로 가야할까 고민하면서 가는게 더 재미있다.
.....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문명의 이기인 네비게이션이 없으니 길 찾기가 만만치 않다.
이제 봄되고 꽃도피면 꽃구경도 가야할 텐데 네비게이션이나 장만할까보다.
가까운 곳이라 인터넷에서 지도 한 번 스윽 훑고 나왔는데
영천까지는 별 무리 없이 왔지만 영천 시내에서 은해사 표지판 찾기가 묘연하다.
덕분에 그렇게 번잡하지 않은 영천 시내를 관통해서 한 20여분 돌고돌아 은해사 가는 길로 접어 든다.
은해사로 가려면 영천 시내에서 제법 떨어진 팔공산 산자락까지 한산한 국도를 달려 가야 한다.
오래된 본사 답게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는 숲길에 수령이 높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금포정. 일체의 살생을 금지한 숲.
3월 중순인데도 아직 늦겨울 옷을 벗지 못한 듯 생기는 덜 하지만 소나무 숲 특유의 맑고 단정한 느낌이 충만하다.
소나무 숲이지만 마치 대나무 숲 같이 청아한 오솔길을 따라
마른 낙옆이 하늘거리며 떠가는 작고 맑은 도랑을 거슬러 올라가면 돌다리 건너 경내 모습이 드러난다.
번잡하지 않은 사찰을 찾아 온 지 참 오랜만이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가람이 주는 아늑함.
....
한켠에 얼마전 입적하신 법정 스님에 대한 추모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과 더불어 내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던 수도자 이셨는데
이렇게 속세의 육신을 버리고 떠나셔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좋은 사람, 오랫동안 있어 주었으면 하는 사람은 보기도 힘들고 더 빨리 떠나 버리는 것 같다.
삶이 다시 윤회해서 내생에 다른 삶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그때는 지금과 다른 그 어떤 곳에서 또 다른 누군가와의 삶일텐데, 어찌 지금의 헤어짐이 슬프고 안타깝지 않은가.
모르겠다. 어떨지.
학창시절 나도 법정 스님이 쓰신 '무소유'를 읽었었다.
아직 무언가를 많이 소유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집착에 대한 미련함을 잘 인지하지 못했을 때지만
글 속에서 스님이 들려준 '난' 이야기가 아직 어렴풋이 떠오른다.
소유 없이 산다는게 거의 불가능한 현실을 수 년 살다보니
이제 나 또한 그 못난 집착을 버리지 못 하는 것 같다.
수도자, 성직자의 삶을 생각해 본다.
종교를 통한 인간사의 슬픔, 탐욕, 외로움, 사악함, 집착에 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은 많은 깨달음과 위안을 준다.
과학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외적 호기심의 발로라면
종교란 인간이 지닌 내적 경외감의 총아인 것 같다.
바라보고 고민하는 대상과 방법이 다를 뿐
수도자, 성직자는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고독한 과학자이다.
....
깨진 기왓장도 흙을 담고 꽃을 피우면 더 이상 초라하지 않은 것처럼
삶이 깨진 기왓장 같다고 실망하지 말고
살다가 그 기왓장이 깨지더라도 좌절하지만 말고
그 조각에 무엇을 담을지 생각해 보는게 어떨까 싶다.
물론 쉽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