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방과 사막을 제외한 지구상 대부분에는 다양한 모습의 인류가 살고 있다.
사실 극지방과 사막에도 소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닮은 듯 다른 모습을 한 인류는 지구상 곳곳에서 천태만상의 모습으로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이들의 모습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뉴스를 접해 들으면 문득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소위 서구화된 사회에서는 먹을 것이 넘쳐나는 마당에 왜 아프리카나 아시아 일부 국가는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불과 400백년 전 무주공산이던 북아메리카 대륙에 이주한 유럽인들이 어떻게 짧은 시간 미국과 같은 초일류 국가를 건설했을까?
왜 유럽인들이 식민지화 하기 전까지 세계 각지의 원주민들은 고도의 발전된 국가 사회를 발달 시키지 못했을까?
광활한 태평양 한 가운데 떠있는 수많은 폴리네시아 군도에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을까? 또 어떻게 건너갔을까?
어째서 유럽의 소수 침략 군대가 아메리카의 수많은 원주민을 지배할 수 있었을까?
아랍, 인도, 중국과 같이 화려한 고대 문명을 간직한 나라들이 왜 현대에 들어 옛날만큼의 위상을 가지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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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이같은 의문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인류사를 통틀어 남아 있는 궁금증은 언제나 호기심의 대상이다.
10년도 더 지난 책이지만 저자는 굉장한 통찰력과 해박한 인류학적 지식으로
인류 문명의 대륙별, 민족별 불균형에 대한 대다수의 의문에 답한다.
저자의 설명을 따르면 소위 인류 문명을 선도하고 있는 민족, 국가는
풍요로운 자연 환경 덕택으로 잉여 식량 생산이 가능해 많은 인구를 거느리고
고도의 국가 체제가 성립된 유라시아 대륙에 있다고 본다.
동서로 늘어선 유라시아 대륙은 비슷한 위도의 유사한 기후 덕택에 식량, 가축, 문화의 이동이 쉬웠던 반면
아프리카, 아메리카와 같이 남북으로 늘어선 대륙은 식량 생산 기술이나 가축 등의 이동이 힘들었다.
특히 도시와 같이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 생활하고 말, 소와 같은 가축을 오랫동안 길러온 유라시아 사람들은
오랜시간 각종 전염병과 가축을 매개로한 질병에 면역성을 가지게 된 반면
거대 포유류를 가축화 하지 못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유럽 이민자들이 옮겨온 질병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인류가 가장 늦게 살기 시작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식량 생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어서 오랫동안 수렵채집 형태가 지속되었고
태평양의 폴리네시아 군도 역시 인류 이주의 역사가 짧아 고도의 국가 체제가 형성되지 못했다.
지구상 오지에 남아 있는 원주민들의 후진성을 두고 서방 세계가 가져온 우월 의식은 잘못된 시각임을 저자는 역설한다.
단지 원주민들은 자연환경적인 운이 없었을 뿐, 인간으로서 결코 뒤쳐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류 문명의 일차적인 불균형은 인류가 거주한 대륙의 자연환경 차이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고
그 후 역사시대 동안의 국가간 전쟁, 이주, 식민지 개척 등을 통한
식량 생산 기술의 이동, 질병의 이동, 무기의 이동이 오늘날과 같은 문명 분포의 양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만약 세계사에 조금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유럽과 중국의 엇갈린 역사적 행보에도 호기심이 생길 것이다.
고대로부터 근대까지 중국은 세계 문명의 많은 부분을 선도했고
유럽은 중세까지만 해도 근동에 비해 여러모로 뒤처진 낙후국들이 모여있던 곳이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유럽은 수많은 식민지를 건설을 통해 자신들의 영향력을 쌓아 왔고
오늘날까지 세계의 주도권은 유럽을 위시한 서방 세계가 잡고 있다.
반면 어째서 중국은 과거의 영화를 누리지 못하고 유럽을 따라가는 형국을 가지게 되었을까?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리고 있고, 저자 역시 재미있는 해석을 내리고 있다.
고대로부터 오랫동안 단일 중앙집권 체제가 존속되어 온 중국은 하나의 거대 중국을 유지했다.
분열을 유발하는 지형지물도 별로 없었고,
황제를 중심으로 한 소수의 정치집단의 뜻이 나라 곳곳에 전해지는 나라였다.
반면 유럽은 언제나 분열되어 있었다.
지형적으로 제법 큰 영국이 대륙과 인접해 떨어져 있고,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반도의 이탈리아, 알프스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등
유럽은 분열되어 서로 경쟁하는 체제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있었다.
중국은 소수 엘리트 정치인의 판단에 따라 역사적으로 퇴보한 경우이다.
진시황이 분서갱유의 만행을 저지른 것은 정치적 이유였고,
명나라 정화가 대선단을 이끌고 희망봉을 돌아 유럽, 아메리카까지 가지 못한 것도 소수의 정치적 이유였고,
중국 공산당이 문화대혁명을 이끈 것도 당 지도층의 정치적 이유였다.
반면 유럽은 분열을 통한 경쟁 속에서 후발주자의 결점을 딛고 역사적으로 앞서 달린 경우이다.
콜럼버스는 몇몇 군주들에게 퇴짜를 맞았지만 결국 스페인 국왕을 설득해 아메리카 항로를 개척했고,
이를 본 다른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에 참여했으며
혁명적인 사상과 기술을 도입하는 것도 국가 간 경쟁체제 속에 가속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나름대로 설득력 있고 명쾌한 설명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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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책이지만 내용이 흥미롭기 때문에 비교적 술술 잘 넘어가는 편이다.
저자는 지금 인류사를 선도하는 국가는 그가 제시한 다양한 이유를 근거로 과거에도 인류사를 주도했던 국가였거나
그 국가로부터 파생된 국가이며 앞으로도 그런 나라들이 계속 인류사를 이끌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정말 강조하는 것은 인류학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서
오늘날 대륙간, 민족간의 문명 불균형을 이해하고 인류사를 발전적으로 끌고 나가기 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상엔 정말 다양한 인종과 많은 나라가 존재한다.
흥미롭지 않은가?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국가간의 접촉이 더없이 빈번해지고 자연환경이 기술 앞에 무기력한 시대에 인류사는 어떻게 변모할까.
과거에 총, 균, 쇠가 문명의 열쇠였다면 앞으로는 어떤 것들이 그 역할을 대체할 것인지 흥미롭다.
점점 서구화 일색으로 변해가는 인류의 생활양식이 다시 다양성을 회복하면서도
기본적인 과학 기술의 유용성을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이 존재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