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조 때 궐내 '규장각'에 더해 강화도 행궁에 '외규장각'을 설치해 왕실의 문서와 도서를 보관하였다.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그 '외규장각'에서 수탈해간 '의궤'가 국내로 돌아온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의궤 반환 당시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프랑스까지 떠들썩 했었는데,
제가 있을 곳에 돌아와서인지 사람들의 관심이 사그라든 지금 상황이 오히려 평온하다.
2.
의궤 중 왕을 위해만든 '어람용' 의궤는 비단으로 표지를 두르고 놋쇠로 변철을 해 정교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왕실의 행사 모습, 의식에 사용한 제기에서 궁궐의 도면까지 상세하게 글과 그림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초기 의궤는 거의 다 전란으로 소실되었고 현재 의궤는 정조 이후부터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박물관 진열대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그런 의궤들이 어마어마하게 쌓여있는 걸 보니,
이걸 가져간 사람들의 무자비함과 다시 찾아온 사람들의 고달픈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3.
총 297권의 의궤가 145년만에 국내로 돌아온 이야기는 한 사학자의 영화만큼 극적인 인생이 녹아있다.
1950년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직지심경'을 세상에 알리고,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해 다시 반환하는데 인생을 헌신한 사람.
의궤보다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이다.
의궤만큼이나 이제는 고인이된 박병선 박사를 기억하도록 남은 사람들이 좀 더 노력해야할 듯 싶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