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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Science

초파리의 기억: 행동도 유전되는가?

제이우드 || 2023. 3. 30. 17:47
 
초파리의 기억
퓰리처상 수상작 『핀치의 부리』의 조너던 와이너의 신작으로 인간 행동 유전의 비밀을 추적한 시모어 벤저의 이야기를 담은 책. 이 책은 행동도 유전이 된다는 것을 초파리 연구를 통해 찾아낸 생물학자 시모어 벤저의 연구과정을 흥미로운 한 편의 소설처럼 풀어놓고 있다. 초파리를 통한 시간 감각을 조절하는 시계 유전자를 찾는 일과 행동 유전학의 이론과 연구과정, 성과를 통해 분자유전학의 발달 과정을 설명한다.
저자
조너던 와이너
출판
이끌리오
출판일
2007.04.19

 

'초파리의 기억'

원제는 'TIME, LOVE, MEMORY: A Great Biologist and His Quest for the Origins of Behavior'이며 저자는 '조너던 와이너(Jonathan Weiner)'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변역서의 제목을 '초파리의 기억'이라고 한 것은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원제목을 그대로 사용했더라면 저자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더 잘 전달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각설하고, 이 책은 '시모어 벤저'의 '초파리 행동 유전 연구'를 소개하면서 '행동도 유전되는가?'라는 질문을 다루고 있다.

아버지의 걸음걸이와 내 걸음걸이가 닮았다던가, 집안에 유독 왼손잡이가 많다던지, 잠잘 때 삼대(三代)가 모두 코를 곤다던지, 살면서 한 번쯤 이처럼 가족끼리 닮은 점을 보며 신기해하거나 유쾌해한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 코, 입이 닮은 것처럼 겉으로 확연히 비교 가능한 외모와 달리 우리의 행동이 유전된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행동'이 유전된다는 것은 지극히 '환원주의적'인 생각으로 '인간의 복잡한 행동 양상이 어떻게 유전자 한 두 개에 의해 조절된단 말인가?' 하는 궁극의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는 일반적인 '행동의 정의'가 가져오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특히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패턴의 행동 양상을 보여주는 '인간의 행동'은 '유전자 : 행동'의 연관성을 살피기에 너무 많은 요소를 가지고 있다. 행동 양상을 연구할 때 '사람'은 그리 좋은 '모델 시스템'이 아닌 셈이다. 우리가 깨어있는 동안 수행하는 수많은 의식적인 행동은 '환원주의적 접근법'으로 설명하기에 무척이나 벅차 보인다.

하지만 '행동'의 범주를 좀 포괄적으로 받아들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령 우리가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도 보통의 행동이며, 뚜벅뚜벅 똑바로 걷는 것도 보통의 행동 양식이다. 그러나 '유전자 연관 연구(linkage study)'를 통해 특정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말 더듬(stuttering)'이나, 운동 신경의 퇴행으로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는 '파킨슨 병(Parkinson's disease)'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증명 되었다. 유전자의 작은 변화만으로 우리는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 제대로 걸을 수 조차 없으니, 유전자가 행동을 조절한다는 명제가 성립한다고 볼 수 있다.

시모어 벤저가 초파리의 행동 실험을 통해 초파리 행동을 조절하는 유전자의 존재를 제시했을 때, 사람들은 초파리의 다양한 행동 양상 자체를 믿으려 하지 않았고, 유전자가 그러한 행동을 조절한다는 주장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사람의 합리적인 선택이나 충동성도 특정 유전자에서 발현된 수용체(receptor)를 통해 설명하는 수준에 다다랐다. 이제는 우리의 행동 의지까지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분명 유전자가 이상해지면 우리 행동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초파리 Fruit Fly, Drosophi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