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旅行/유럽배낭여행 | 2004

유럽배낭여행 [파리]

제이우드 || 2023. 6. 14. 17:49

2004.10. 7. 木  

 

Montparnasse Tower

내일 몽생미셸로 가는 TGV를 예약하러 아침부터 몽빠르나스역에 들렀다.

일단 몽생미셸에 가려면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근처 '렌'까지 가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데

우리나라도 영동선이나 경춘선이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프랑스 남부나 서쪽으로 가는 열차는 이 몽빠르나스역에서 출발한다.

 

역 앞에는 파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몽빠르나스 타워가 있는데, 높이는 우리나라 63빌딩이랑 비슷한 것 같다.

 

유럽은 철도가 빽빽한 그물망처럼 곳곳으로 뻗어있어 기차여행하기 더 없이 좋은 곳이다.

대륙에 붙어 있으면서도 사실상 '국경'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다국적 기차를 타고 마음대로 국경을 넘나드는 유럽사람들이 마냥 부러워 보인다.

구한말에는 서울역에서 중국이나 러시아까지 가는 기차표도 팔았다고 하던데.....언제쯤 그런날이 다시 올까.

 

역에는 티켓창구 앞에 열차 노선과 시간표가 작은 팜플렛으로 만들어져 있어 쉽게 열차정보를 알아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렌은 Paris Montparnasse - Quiberon 구간 세 번째 도시이다.

렌까지 TGV로 2시간 정도 걸리니까 왕복 일정을 생각해서 내일 아침 일찍 떠나는게 좋을 듯 싶다.

 

티켓창구 아줌마가 성격이 급한지 말도 좀 빠르고 그나마 프랑스어 발음이 물씬 풍기는 영어를 쓰는 통에

서로가 몇 번씩 각자가 내뱉은 말을 재확인해야만 했다.

대체로...아니 이건 선입관일지도 모르겠는데...

....프랑스 사람들이 말이 좀 빠른 것 같다.

 

날씨도 꽤 좋고 해서 뤽상부르그 공원까지 제법 먼 거리를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출근 시간이 지난 파리의 거리는 아직 아침 잠에서 덜 깬 듯 한산하다.

 

뤽상부르그 공원

아직 꽃이 피어있는 뤽상부르그 공원은 마치 예쁘게 잘 다듬어진 정원같은 곳이다.

분수대랑...산책길 옆에 심어놓은 꽃들에...똑같은 모양을 하고 긴 터널을 만들고 있는 나무들...

런던의 공원들이 크고 자연적인 느낌을 주는데 반해서, 여기는 화사하고 예쁘게 손질된 티가 역력하다.

중세부터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귀족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나라여서 그런지,

프랑스사람들은 이렇게 화려하고 예쁜걸 좋아하는 것 같다.

뭐 화사하고 단정한 느낌의 공원도 물론 좋지만, 그래도 공원은.....영국처럼 넓고 푸른게 더 좋은 것 같다.

인공적이지 않고 그냥 편안한 느낌의 그런 공원말이다.

아무래도 런던에 있을 때 거기 공원에 너무 매료됐었나보다.

 

상자처럼 다듬어진 가로수들이 나란히 이어진 나무터널 밑에서 작은 꼬마애들이 낙엽을 가지고 놀고 있다.

 

공원에 있는 사람들은 다 착해보인다.

지도상으로 얼핏 보니 뤽상부르그 공원 바로 옆 골목 끝이 팡테온이다.

'음...그럼...저게 팡테온인가?'

마침 공원 입구에서 저멀리 둥그런 돔이 바라다 보이길래 골목을 따라 쭉 걸어들어 갔다.

그러나...

'어?....팡테온이 아닌데...'

아무래도 지도를 잘 못 본 것 같다.

'이런....그럼 여기가 소르본인가?'

겉으로 보기에는 무슨 기념관 같기도 하고, 학교 같기도 한데 표지판도 없어서 당최 무슨 건물인지 알 수가 없다.

일단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앞에서 한참동안 지도랑 거리 이름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방향을 가다듬었다.

지나가던 아저씨의 말을 빌리자면 팡테온으로 가려면 더 위쪽으로 걸어가야 된단다.

'이런....'

이거 완전히 동대문 앞에서 남대문 찾은 꼴이다.

근데 이 건물은 진짜 정체가 뭘까?

 

재래시장

길을 잘 못 들어선 덕분에 한 재래시장을 지나게 됐다.

그냥 길 한편을 따라 좌판을 쭉 늘어 놓고 이런저런 잡동사니와 생필품을 파는 작은 시장이다.

꽃, 신발, 햄, 소시지, 치즈, 동전지갑, 스카프, 악세사리, 생선, 체리, 토마토....등등 여기도 없는 것 말고는 다 있다.

치즈 파는 좌판에는 커다란 빵처럼 생긴 덩어리 치즈가 한 가득 진열되어 있다.

하얀 덩어리 치즈는 원하는 만큼 잘라서 팔기도 하는데 냄새가 좀 특이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된장냄새 맡고 처음에 다들 기겁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치즈냄새도 그리 만만하진 않은 것 같다. 뭐 맛은 있을지 모르겠네...

체리나 바나나같은 과일이랑 먹거리 같은건 재래시장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한쪽에서 왠 아줌마들이 좌판에서 열심히 뭔가 고르고 있길래 들여다보니 자그마한 동전지갑이다.

가격도 싸고 마침 주머니에 넘쳐나는 동전들을 주체할 수 없었던 터라 상태 좋은 걸로 하나 샀다.

모양이 특이해서 마음에 든다.

 

파리의 골목길

시장 끝 골목 귀퉁이에 있는 자그마한 빵집.

'배도 고픈데....하나 사먹을까...'

아침에 갓 구워낸 빵들이 먹음직스럽게 진열장에 누워 나를 부르고 있다.

노랗게 잘 구워진 기다란 바게트랑, 소라모양의 크로와상, 초콜렛이 들어간 팽 오 쇼콜라,

기다란 바게트 사이에 토마토, 계란, 햄, 닭고기, 참치, 양파, 양상추 등등이 들어간 바게트 샌드위치랑

그것보다 작은 미니 바게트 샌드위치, 자그마한 초코 케익들....

내 눈에 빵이 이렇게 맛있어 보인적은 처음이다.

이것도 맛있어 보이고...저건 더 맛있어 보이고....

 

햄이 들어간 미니 바게트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먹는데 맛이 정말 기가 막히다.

바게트 겉은 알맞게 바삭거리고 속은 식빵보다도 더 부드러운데다가, 샌드위치 소스도 정말 깔끔하고

본고장 바게트라 그런지 확실히 우리나라에서 사먹는 바게트와는 그 맛이 현저히 다르다.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이거랑 똑같이 만들어 팔면 정말 장사 잘 될 것 같다.

 

아무튼 결론은 프랑스 빵은 정말 맛있다는 거다.

여기서는 빵만 먹고 살아도 되겠다.

'아~ 행복해~'

프랑스 사람들은 다 주차의 달인들인가?

골목마다 세워진 차들은 앞 뒤로 빽빽히 서로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소형차들이 많아서 그나마 주차하기는 좀더 수월해 보이긴 한데,

저렇게 붙여 놓으면 어떻게 빠져나가나 싶을 정도로 앞뒤로 붙여 놓은 차들이 많이 보였다.

골목을 따라 오밀조밀 귀여운 차들이 여기저기 콕콕 박혀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소형차 중에는 진짜 깜찍하게 생긴 것들이 많은데 smart 2인승 자동차는 정말 앙증맞게 생겼다.

이런 차는 유지비도 적게 들고 주차하기도 좋고, 아침저녁 출퇴근으로 사용하면 딱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쓸데없이 큰 차만 선호한다.

길도 좁고 차량도 많은데 우리나라도 이제 실용적인 면을 고려해서 소형차 좀 많이 타는게 어떨까...

파리에는 정말 노천 카페가 많다.

거짓말 조금 더해서 한 블럭에 카페 하나씩은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그냥 길거리 테이블에 앉아 차 한잔 시켜놓고 책 읽고 신문 보고, 서로 이야기하며 웃는다.

우리와는 생활방식이 많이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야겠지만,

파리지엥들의 이런 여유있는 일상이 참 보기 좋고 부럽다.

여유가 생활의 일부분이 된다면 사는게 훨씬 재미있을텐데, 그러기란 참 쉽지 않은 일 같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말이다.

 

팡테온

한참 만에야 팡테온의 거대한 돔이 눈앞에 나타났다.

커다란 돌기둥의 웅장함이 만신전 팡테온의 위엄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여러 신들을 모신 곳이라기 보다는 프랑스의 혁명정신을 기리고,

프랑스 위인들의 마지막 안식을 위한 장소라고 보는게 더 어울릴 것 같다.

내부는 커다란 돌기둥이 천장의 거대한 돔을 받치고 있어 밖에서 봤을 때보다 더 크고 웅장해보였다.

딱히 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 거대한 팡테온 안에 들어오면 누구나 자기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걸 느끼게 된다.

커다란 벽화들이 기둥을 따라 늘어서 있고 역동적인 조각들도 위엄있게 서 있다.

'이게 다 대리석인가?....'

팡테온 안을 걷고 있자니 솔직히 그 어떤 성스러운 감명보다는

돌을 마치 나무처럼 깨끗이 다듬어 이렇게 웅장한 건물을 만든 당대의 건축술이 더 기막히다.

당시 어떻게 이 엄청난 공사를 위한 인력과 재원을 동원했을까?

그 부富의 출처는 과연 어디였을까?....절대왕정의 힘인가?....어떻게? 어떻게....?

거대한 지하 묘소에는 루소,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등 유명한 프랑스 위인들이 조용히 잠들어 있다.

 

La Sorbonne

소르본...'비포 썬 라이즈'의 셀린느가 소르본에 다녔기 때문일까?

언제부턴가 내 머릿속의 소르본은 낭만과 이성이 다 갖춰진 완벽한 대학으로 존재해 왔다.

하바드에서 낭만을 생각할 수 있나?

그럼 옥스퍼드와 낭만의 상관관계는?

아니면 MIT에서의 낭만은?....이건 더더군다나 말도 안 된다.

세계 유수의 명문대학 중에서 '낭만'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소르본 밖에 없는 것 같다.

왠지 소르본에 가면 셀린느처럼 지적이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웃음을 지어주고

청바지와 스웨터 차림으로 계단에 앉아 책을 읽는 멋진 청년을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소르본 앞에 있는 광장에서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미모의 여대생과 눈이 딱 마주쳤다.

나를 보고 살짝 웃어주는데 너무 이뻐서 한참을 쳐다봤다.

글쎄...내가 소피 마르소를 좋아해서 그런지 내 눈에는 프랑스 아가씨들이 모두 소피 마르소같다.

프랑스에 대한 평소의 환상이 내 눈을 멀 게 만든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로맨틱하고 지적이고 사랑스러운 파리의 아가씨들에게 너무 반해 버린 것 같다.

소르본은 우리나라나 미국의 대학처럼 큰 캠퍼스를 가지고 있지 않고 달랑 건물 몇 채가 전부다.

명성에 비해 꽤나 단촐한 분위기지만 진짜 '대학'이라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곳곳에 학생들이 저마다 책을 잡고 앉아 무언가 골똘히 읽고 있고,

지나가는 학생들마다 얼굴에선 그 어떤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엿볼 수 있었다.

뭔가를 하고 있고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당찬 모습이 너무도 확연하다.

언제나 무슨 집회나 행사로 어수선하고 외형확장에만 여념이 없는 우리의 캠퍼스들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갈팡질팡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많이 대조되는 부분이다.

대학의 역사가 우리와 비교조차 되지 않은 프랑스이기에 직접적인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우리 대학의 이런 모습을 있게한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정책들

그리고 자의반 타의반 이런 현실에 타성이 젖어 버린 우리들에 대해서 반성할 점이 많은 것 같다.

 

시테섬

목도리 하나만 둘러도 왠지 파리 사람들은 다 멋있어 보이는 이유가 비단 광고의 세뇌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거리에서 만난 파리지엥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옷을 참 멋스럽게 잘 입고 다닌다.

원래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라 남들과 똑같이 입고 다니는걸 아주 싫어한단다.

그래서 멋쟁이가 많은지.....

 

어느덧 센강이 유유히 흐르는 시테섬이다.

한강의 여의도처럼 센강 가운데 있는 시테섬은 파리의 역사가 시작된 유서깊은 곳이다.

시테섬을 양 옆으로 감싸 흐르는 센강에는 유람선이 천천히 물결을 일으키며 떠간다.

암록색의 센강...

'샹송의 멜로디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모습이 우아하다.....'라고 한 껏 치켜세울 수도 있지만

특별히 강 하나를 두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저 유유히 흐르는 강인 것을 프랑스 사람들의 노래와 문학이 오늘날의 센강을 있게 만든게 아닐까.

 

그래도....

역시 센강을 바라보고 서 있자니 제목도 모르는 샹송 한 구절을 흥얼거리게 되는건 어쩔 수 없다.

 

노틀담 성당

'노틀담의 곱추'로 너무나 유명한 노틀담 성당이지만 남들 다 읽어본 이 책을 난 어째 읽어본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아무튼.....

비둘기 털이 날리는 광장을 가로질러 거대한 탑이 우뚝 서있는 성당 입구로 들어갔다.

전면의 부조들이 참 화려하고 섬세하다.

스테인드 글라스의 은은한 눈부심과 촛불의 따스함이 더해져 성당 내부는 온화한 기운이 완연하다.

종교적인 성스러움이 주는 그런 편안한 느낌이다.

간간이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봤던 것 처럼 작은 촛불들이 여기서도 환하게 타오르고 있다.

나도 잠시 예배석에 앉아 조용히 숨을 가라 앉혔다.

 

하늘로 솟구친 신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뾰족한 고딕양식의 건축물들을 남겼다.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위로 위로 높아진 천장은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이 되었고

높아진 첨탑을 따라 스테인드 글라스는 점점 더 크고 화려해졌다.

대단하다는 말을 넘어서 경이로울 정도의 충격이다.

'어떻게?....이 모든걸 어떻게?....'

 

성당 안으로 끊임없는 순례객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성당을 옆에 끼고 뒤로 돌아가면 다소 밋밋한 정면과는 또 다른 느낌의 노틀담을 볼 수 있다.

엽서에도 자주 등장하는 괴물모양의 낙수받이가 저 높이 매달려 있는 옆면은

뾰족한 상단의 첨탑과 거대한 지붕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성당 전면보다는 훨씬 덜 심심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나저나...

이거 옆에서 보니까 성당이 생각보다 꽤 커서 카메라 앵글에 다 들어오지가 않네...

노틀담 성당 옆 골목 끝에 다다르니까 '크레페'를 만들어 파는 카페가 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걸 보니까 꽤 맛있는 집인 것 같다.

밀가루 반죽을 팬위에 얇게 펴서 굽는 주인 아저씨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은데,

밀가루 반죽이 노릇노릇하게 익으면 그 위에 여러가지를 넣어 같이 싸서 먹는다.

메뉴를 보니까 속에다가 토마토, 양파를 넣는게 있고 버섯이나 햄을 넣는게 있다.

냄새가 그럴 듯하게 좋다.

 

"봉주르~ 앵 베제떼리앙 실 부 쁠레~"

파리에 온 후 가장 긴 불어 문장을 사용해 용감하게 야채 크레페를 주문했다.

아....뿌듯한 이 느낌. 이럴 줄 알았으면 불어 공부 좀 열심히 할걸 그랬나보다.

손에 쥐어진 따끈한 크레페는 속이 꽉 찬게 생각보다 묵직하다.

고소한 치즈에 토마토 향과 쫀득쫀득한 밀반죽이 어우러져 이것도 은근히 맛있다.

프랑스가 원래 음식천국인 줄은 알았지만 이거 프랑스 음식이 아무래도 내 입맛에 너무 잘 맞는 것 같다.

'뭘 사먹어도 이렇게 다 맛있으니....내가 파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야....'

 

센강

시테섬의 끝자락에서는 퐁뇌프다리와 사마리텐 백화점이 보인다.

센강의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퐁뇌프는 근래 보수공사를 했는지

너무 손 본 티가 역력해서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인데,

대신에 퐁뇌프 위에서 바라 본 센강의 풍경은 꽤나 봐줄만 하다.

강을 따라 늘어서 있는 녹색의 커다란 가로수와 고풍스런의 건물들은

강위를 떠다니는 유람선과 함께 그림엽서에 나올법한 멋진 구도를 만들어낸다.

그러고 보니 센강은 참 적당한 크기로 흘러서 딱 보기 좋은 그림을 만들어낸다.

너무 넓지도 않고...너무 좁지도 않고...딱 적당한 크기로 흘러서 말이다.

강과 다리와 건물과 나무....모든게 고풍스러워서 참 보기가 좋다.

 

퐁뇌프의 난간에 기대어 유람선에서 손인사를 건내는 사람들을 향해 나도 살짝 손인사를 건낸다.

 

센강을 따라..

시계바늘이 어느덧 2시를 넘어섰다.

센강의 운치에 너무 취해서 시간을 좀 지체해 버린 것 같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루브르 안에 있어야 하는데.....일단 루브르로 향했다.

퐁뇌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거대한 루브르 궁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원래 궁전으로 사용하던 곳이라 그런지 규모나 외관이 상당히 크고 화려하다.

박물관 가운데 광장으로 들어서자 오후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거대한 유리피라미드가 눈에 들어온다.

 

유리피라미드 밑....티켓창구 앞.

'어라? 8.50유로네....책이랑 다르잖아....'

입장료가 1유로 인상된 것 같다. 게다가 학생할인도 안된단다.

매정하게 학생증을 외면하는 티켓창구 직원 앞에서 잠시 고민에 빠진다.

'음....어쩌지....지금 들어가면 3시간밖에 못볼 것 같은데.....'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참동안 남은 일정을 생각하다가 발걸음을 오르세로 옮기기로 했다.

오늘이 목요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던 것이다.

오르세는 목요일에 저녁까지 개장하니까 지금가도 넉넉하게 구경할 수 있을거다.

서둘러야겠다.

해가 하늘 꼭대기에서 한 뼘 반 정도 기울어졌다.

햇살이 너무 눈부셔 모자를 푹 눌러썼다.

.................

루브르에서 오르세로 가는 센강을 따라서는 이쁜 엽서를 파는 좌판이 많다.

파리의 명소를 찍은 사진엽서도 있고, 아름다운 풍경화 엽서도 눈에 많이 띈다.

유명한 그림을 모사해서 파는 사람도 있고, 초상화나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길거리 화가도 있다.

간혹 오래된 소설책이나 사진집을 파는 좌판도 있고....

 

센강을 따라 쭉 늘어선 좌판도 또 하나의 멋진 야외 미술관이다.

 

오르세 미술관

해가 좀더 기울어져서야 도착한 오르세 미술관 앞에서 환타 한 캔으로 잠시 목을 축였다.

미술관 앞 광장에서는 한 아저씨가 멋드러지게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다.

"When a man loves a woman~ Can't keep his mind on nothin' else....."

아코디언으로 연주되는 'When a man loves a woman'

훨씬 더 부드럽고 감미롭다...........

사람들이 하나 둘 손장단을 치며 조용히 음악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린다.

다들 행복해 보인다.

연주하는 아저씨도.....구경하는 사람들도......

그리고 나도......

미술관에 들어가는데 입구에 설치된 금속탐지기를 지난다.

아까 루브르 입구에서도 가방검사를 하더니만....

미술관과 금속탐지기. 너무 어색한 만남 아닌가?

한때 역사 건물로 사용했던 오르세 미술관은 내부가 커다란 기차 플랫폼처럼 생겼다.

입구 상단의 커다란 시계와 눈앞으로 쭉 뻗은 복도에 서있는 조각상들이 인상적인 미술관이다.

 

이 곳 오르세 미술관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들의 작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밀레, 마네, 모네, 르느와르, 앵그르, 고흐, 고갱, 드가, 세잔....한 번쯤은 다 들어봤음직한 이름들로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고전주의, 낭만주의의 그림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플래쉬는 끄고 말이다.

영국에서는 미술관 갤러리마다 관리인들을 두면서 사진 촬영을 금지시키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플래쉬만 안 터트리면 사진 촬영은 가능한가보다.

아무튼.....

또 한 번 열심히 걸어볼까....

 

(아래 그림들은 오르세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이다.)

밀레 <만종> 1857~59

 

마네 <올랭피아> 1863

그 유명한 올랭피아.....

민망할 정도로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이 그림 속의 여인은 실제로 창녀였다고 한다.

당시 화단과 부르주아의 위선에 대한 마네 자신의 도전을 의미하는 선전포고용 그림인 셈이다.

'뭘 봐?'라는 듯한 도도한 이 여인의 시선과 포즈에는 당대 식자층의 위선과

가식적인 현실을 조롱하는 마네의 의지가 확실히 내포되어 있다.

그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근대적인 작가정신이 만들어낸 걸작이라는 소리를 듣는 작품이다.

덕분에 당시 이 그림은 부르주아들의 돌팔매를 피해 고이고이 숨겨둬야만 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책에서 봤을 때보다 실제로 보니까 느낌이 훨씬 더 잘 전달되는 것 같다.

 

마네 <풀밭 위의 식사> 1863

마네의 비판정신이 반영된 또 다른 걸작...

생각보다 커다란 이 그림은 이상하게도 더 커다란 그림의 일부분인 것 같다.

잘려나간 듯한 또다른 배경이 같이 이어져 있는데, 나머지는 분실했는지 훼손된건지 알 수가 없다.

영어 안내문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으니......

 

앵그르 <샘> 1865

마치 조각상처럼 서있는 이 여인에게서는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아름답기는 하나 마치 인형처럼 굳어있다.

복잡한 현실을 피해 고전과 신화로 돌아간 고전주의자 앵그르의 작품은

19세기 당시 격동적인 시대상에서 파생된 또다른 산물인 것 같다.

 

르느와르 <피아노 치는 소녀> 1892

 

고흐 <오베르 쉬르 와즈> 1890

여기에도 고흐가 있다.

죽음을 얼마 앞두고 그린 이 그림은 그가 말년을 보냈던 오베르 쉬르 와즈의 작은 성당을 배경으로 한다.

이 그림을 그리면서 고흐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 했을까? 아니면 이미 알고 있었을까?

자기 가슴을 향해 권총을 쏠 수밖에 없었던 불쌍한 야수는....

정말 지상에 버려진 천사였을까.

 

드가 <무희> 1876~77

드가의 그림에는 유난히 발레를 소재로 한 그림이 많다.

화가들마다 각자 즐겨 그린 소재가 있었겠지만 드가는 정말 특이하게도 발레...무희들을 소재로 많이 삼았다.

그래서 드가의 그림은 발레의 동작처럼 우아하고....부드럽고....사뿐거린다.

그림 속의 발레리나가 하늘하늘 움직일 것만 같은....

'어쩌면 드가가 한 발레리나를 남 몰래 좋아했던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림을 이렇게 보고 있자니 왠지 내 느낌에는 

그림 속의 무희들에 대한 드가의 각별한 애정같은게 전달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드가 <14세의 작은 무희> 1881

 

오르세의 크기도 역시나 만만한 것 같지가 않다.

봐도 봐도 끝이 없는 명작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 여기 한 곳에 이렇게 많은 명작들이 전시되고 있는게 놀랍다.

그래도 눈에 익고 귀에 익은 작가의 작품이 많아서 그런지 관람하는게 그렇게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천천히 마음껏 둘러 보지 못하는게 너무 아쉽다.

일부러 미술관에는 시간을 좀 넉넉하게 투자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마저도 이 모든걸 감상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은 시간인 것 같다.

 

다시 한 번 그 방대함에 녹초가 되어 버린 다리를 이끌고 미술관 2층 발코니에 앉아있자니,

이런 방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 사람들이 새삼 부럽고 존경스럽다.

그저 많이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유산을 보존하고 아끼고 알리는 이들의 노력이 정말 대단해서 말이다.

언제나 문화 강국임을 자신하는 프랑스인의 높은 콧대가 허풍이 아님을 오늘 절실히 느꼈다.

문화적 힘이란 결코 쉽게 만들어지는게 아닌 듯 하다.

 

아무튼 오늘 저녁에는 숙소에 들어가면 축 처져 버릴 것 같다.

 

나머지도 마저 보고 슬슬 들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