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旅行/유럽배낭여행 | 2004

유럽배낭여행 [파리 - 렌 - 몽생미셸 - 렌 - 파리]

제이우드 || 2023. 6. 14. 17:51

2004.10. 8. 金  

 

몽빠르나스 역

아침부터 서둘러서 그런지 열차 출발시각까지 아직 시간이 넉넉하다.

일단 어제 받은 예약티켓으로 렌까지의  TGV좌석표를 받았다.

다른 일반 열차와 달리 TGV의 경우는 반드시 좌석을 예약해야만 탈 수 있기 때문에 어제 별도의 예약비를 지불 했었다.

렌까지 편도 좌석 예약에 3.50유로의 적지 않은 액수다.

독일의 ICE를 제외하고 유럽의 다른 고속열차는 모두 좌석예약을 해야만 탑승이 가능하기 때문에,

승객에게는 구간요금 외에 별도로 좌석예약요금이 가중되는 부담이 있다.

원래 유럽이 다른 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차요금이 비싼 편이라고 하는데,

고속열차를 탄다는건 유럽인에게도 그리 가벼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외국인을 위해 유레일패스를 파는 것처럼 현지인들은 정액권이나 할인권도 있으니....

세계 최고의 철도 네트워크를 이용하는데 이만한 비용이면 서로가 감지덕지인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유레일패스에도 개시 스템프를 찍었다.

'10월 8일에서 10월 28일까지 유효함.....파리 몽빠르나스 역'

 

8.05am

아침 어스름 속에서 TGV가 부드럽게 역사를 빠져간다.

파리 시내를 벗어나자 곧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 원조 TGV는 우리나라 KTX보다 속도는 조금 느린데 객실 공간이나 좌석은 좀 더 넓은 것 같다.

KTX시행 초기에 역방향 좌석 때문에 말이 많았었는데 TGV에도 역방향 좌석이 있는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게 아닌가 싶다.

하긴 나도 처음 서울에서 대전까지 역방향으로 가는데 조금 울렁거리더만......적응의 문제겠지.

 

공기를 가르는 바람소리와 잔잔한 진동을 만들어내며 TGV는 넓은 프랑스의 들판을 달려간다.

 

휙휙 스쳐가는 프랑스의 목가적인 시골풍경을 바라보며 아침에 빵집에서 산 미니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었다.

역시......프랑스 빵 너무 맛있다.

 

이제 두 시간 동안 뭘 하나.....

.................

 

찌뿌둥 하던 날씨가 환하게 개었다.

2시간을 달려 도착한 렌은 차분하고 깨끗한 첫인상을 가진 도시이다.

 

주섬주섬 사람들을 따라 내릴 채비를 한다.

 

깔끔한 현대식 역사를 빠져나오면 바로 넓은 역광장이 나온다.

몽생미셸에 가려면 여기서 또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정도 더 가야한다.

 

역광장 앞 버스 정류장.....

 

제법 기다린 것 같은데 도통 버스가 오질 않는다.

'여기가 아닌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역광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는데 역 바로 옆 건물 1층에 휴게실처럼 생긴 공간이 있다.

사람들이 몇몇 앉아 있길래 가만히 들여다 보니까 여기가 버스터미널이다.

마침 벽에 붙은 전광판에 몽생미셸 차편이 나와 있다.

'에게....무슨 터미널이 이래....영어 안내판도 하나 없냐....'

BUS라는 단어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데다가 건물외양이 터미널을 연상시키기엔 너무 평범하게 생겨서,

코 앞에 있는 버스 터미널을 두고 엉뚱한 곳에서 버스를 기다렸던 거다.

 

역시....확신이 서지 않으면 현지인에게 빨리 물어봐야한다.....그래야 고생을 안 하지.

 

버스는 한적한 지방도로를 따라 달렸다.

산도 없는 넓은 들판은 온통 연두색 초목들로 덮여 있고, 드문드문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풍경....

버스는 버스대로 기차와 달리 구불구불 좀 더 천천히 일상의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이동네 저동네를 둘러보면서 버스의 낮은 눈높이로 바라본 프랑스인들의 평범한 생활상도 더 없이 좋은 구경거리고...

 

햇살도 맑고 버스가 너무 천천히 달려 깜빡 졸아 버렸다.

침까지 흘려가면서 말이다.

기사 아저씨가 운전을 너무 매너 있게 하시네....

 

 

Mont Saint Michel

'성스러운 미카엘의 언던'이란 뜻의 몽생미셸.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저 멀리 넓은 모래 벌판위에 환영처럼 우뚝 솟아있는 몽생미셸을 바라볼 수 있다.

마치....뭐라고 해야할까....신기루처럼 환상적인....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그 풍경을 향해서

방파제 위를 달리다보면 어느새 거짓말처럼 눈앞에 펼쳐진 그 환영을 마주 할 수 있다.

 

K항공사 CF배경으로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된 이 곳은

대주교 오베르가 대천사 '미카엘'의 계시를 받아 708년부터 짓기 시작한 수도원이다.

그 뒤 계속 증축을 해오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한때는 감옥과 요새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얼핏보기에도 수도원보다는 요새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험준한 인상을 준다.

'햐....뭐 이런게 다 있냐...'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실제로 보니 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벌어진 입을 다물고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한 다음 몽생미셸 안으로 들어섰다.

 

일단 입구에 들어서면 프랑스와 영국과의 전쟁 때 영국군이 사용했던 대포가 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수도원까지 이어지는 좁은 돌언덕길 'Grande Rue'가 보인다.

여기서부터 이제 수도원까지 쭉 언덕길을 올라가야 한다.

 

Grande Rue는 시간을 되돌려 중세의 한 골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매력적인 길이다.

카페, 레스토랑, 중세 박물관, 기념품 가게가 뒤섞여 이것저것 볼거리가 참 많다.

레스토랑에서는 이름도 모르는 다양한 와인과 식사 메뉴를 입구에 걸어놓았고,

기념품 가게에선 엽서와 사진은 물론이고 중세 기사들이 사용했던 모양의 커다란 칼이랑 투구도 팔고 있다.

마치 중세 어느 저잣거리에 온 듯한 기분이다.

 

거리 구석구석에 중세의 느낌이 뭍어있는 언덕길을 계속따라가면

한순간 시야가 탁 틔인 곳이 나타난다.

 

바로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있는 높다란 보루.

여기서는 다른 곳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을 볼 수 있다.

저 멀리 수평선 끝까지 바닷물이 밀려난 자리에 드넓은 모래사장이 빈 공간을 채워주고 있다.

 

뭐든 이렇게 광활한걸 바라보고 있으면 괜히 가슴이 확 트인다.

언제나 시선의 방해를 받고 살아가기 때문일지 광활함이란 잠재된 무언가를 끄집어 내는 것 같다.

 

 

..................

 

수도원 건물의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수직의 깎아지른 듯한 성채를 마주하게된다.

 

 

 

수도원이라기보다 하나의 완벽한 성채와 같은 내부는 보기에도 무척 정교하게 생겼다.

이런 고층의 석재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고난이도의 건축기술이 필요했을텐데...

유럽의 고건축들이 현대건축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을만큼 이처럼 거대할 수 있었던 요인이 뭐였을까?

권력? 재력? 기술? 인력? ......인내심?

 

수도원에 수도승이 안 보인다 했더니 한쪽에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

머리에 흰 면사포를 쓴 수녀들과 검은 도포를 쓴 수도자가 가끔씩 옆으로 지나가기도 했다.

 

.....

 

 

수도원 내부에는 서늘한 돌기운이 느껴진다. 성당과는 달리 아주 차갑다.

예배가 아닌 수도의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라 그런지 무언가 강하게 속박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비밀의 화원마냥 수도원 안쪽 은밀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정원.

어두컴컴한 내실에서 갑자기 화사한 햇살이 비치는 하늘을 보여주는 색다른 공간이다.

 

 

 

미로처럼 이어진 수도원의 내부는 오랜 세월에 걸쳐 지어진만큼

각시대의 건축양식이 모두 조합된 정말 경이스러운 건축기술의 결정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옛날 중세시대에 어떻게 이런 엄청난 공사를 해냈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모르겠다.......도저히 모르겠다.

 

 

 

밖으로 나오니까 금새 내실의 어두운 기운이 달아난다.

아마 그 옛날 수도자들도 힘든 수도기간중에 가끔 여기서 이렇게 저 먼곳을 응시하며 머리를 식혔겠지...

 

높은 곳이라 그런지 바람이 제법 거세게 몰아친다.

이제 슬슬 내려가 볼까.

 

Today's Menu

점심 때가 훨씬 지나서 그런지 배가 많이 고프다.

어디 만만한 곳에 가서 점심 해결을 해야겠는데, 그 만만한 곳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빵이나 간단한 걸 먹기는 좀 허전할 것 같고, 아무 레스토랑에 들어가자니 좀 망설여지고.

입구까지 내려오면서 여기저기 둘러봐도 영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저기 가자'

더 이상 방황하기도 귀찮고 해서 눈 딱 감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한 레스토랑으로 불쑥 들어갔다.

 

'음....보자...........음....음......'

자리에 앉아 용감하게 메뉴판을 펼쳐든 것까지는 좋았다. 그 다음이 문제지....

영어 메뉴판을 한참동안 쳐다보고 있어도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프랑스가 아무리 미식가의 나라라지만 이건 진짜 주문하기가 너무 헷갈린다.

에피타이저에 메인디쉬에 디저트에 음료수까지......기본이 4개다.

학교 앞 분식집에 가서도 뭐 시킬지 고민하는 나에게 한꺼번에 4개나 주문하라는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음....저기요...."

"예~"

"이건 뭐죠.....오늘의 메뉴..."

"아, 주방장 특선입니다. 에피타이저랑 디저트까지 다 나옵니다."

"오...그래요? 그럼 이걸로 주세요~"

"예, 그러죠.."

메뉴판 아래에 큼지막하게 'Today's Menu'라고 적힌게 있다.

뭔진 모르겠으나 그나마 가격도 싸고, 말그대로 '오늘의 메뉴'니까 그렇게 이상한건 아니겠지.

 

'오호~'

에피타이저로 나온 햄이랑 샐러드. 햄 종류가 5가지나 된다.

부드러운 것도 있고, 소금에 절인 듯이 짠 것도 있고, 약간 순대냄새가 나는 것도 있는데,

맛은 무난한 것 같은데 좀 짜서 물이 많이 먹힌다.

 

'이건.........뭐냐?'

메인디쉬가 참 난감하게 생겼다.

이리저리 굴려보고 먹어보고.......한참을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소 위....아니면 소 내장...!!

이건 확실하다. 소 위가 아니면 분명히 소 내장이다.

'으.....이걸 이렇게 먹냐.....'

 

물컹거리는 그 촉감과 짠 소스의 맛이 뒤섞여 입안이 뒤죽박죽이다.

소 위...아니면 내장을 이렇게 먹을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비싼거라 차마 남기지도 못하겠고......

거위 간을 먹지 않나, 달팽이를 먹지 않나......거기다 소 위...아니면 내장 스테이크까지.

아무튼 프랑스 사람들 입맛 특이한거는 알아줘야겠다.

 

간신히 메인디쉬를 처리하고 디저트를 받아들었다.

치즈다. 치즈 2조각.

안은 노랗고 겉은 하얀 치즈.....이게 노르망디치즈?

이제는 먹는게 조심스러워진다.

포크로 치즈 한 쪽을 살짝 잘라 입에 넣었다.

'음.....음....'

처음은 메주냄새같은게 나다가 조금 있으면 우유맛도 좀 나다가 마지막은 시큼하게 끝난다.

한마디로 희한한 맛이다.

 

접시 세 개가 내 앞을 거쳐갔건만 어째 뭔가 허전하다.

에피타이저에 디저트까지 먹으면 뭐하나.....메인이 너무 당황스러운것을....

쩝....

오늘따라 밥이 그립다.

 

서구의 驚異

몽생미셸은 가까이에서 봤을 때보다 멀리서 전체 모습을 바라볼 때 그 매력이 더 하다.

사방 모래벌판 위에 우뚝 솟아있는 그 모습이 보면 볼수록 정말 '경이'스럽다.

 

세계에서 조수간만의 차이가 가장 큰 곳 중 하나인 이곳은

썰물이면 바닷물이 저멀리 아득한 곳까지 밀려나 넓은 모래사장을 만들어낸다.

지금은 제방을 만들어 한달에 두 번정도 밀물이 든다고하는데, 그때면 시커먼 바닷물이 수도원을 둘러싼다고한다.

소용돌이치는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몽생미셸도 아주 근사할 것 같다.

 

방파제에서 바라보는 몽생미셸은 역시나 환상적이다.

 

 

이제 렌까지 다시 버스를 타야한다.

 

파리행 TGV

파리로 돌아가는 TGV는 기다리는 사람이 아주 많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가? 역에는 커다란 가방을 매고 삼삼오오 파리로 가려는 학생들이 넘쳐난다.

 

"이 트렁크 좀 선반 위에 올려주실래요?"

TGV객실에 들어서니 까만 생머리를 늘어뜨린 아가씨가 웃으면서 말을 건낸다.

"Oh, yeah~ Sure~"

이쁜 프랑스 아가씨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어.....그러고 보니 내 옆자리다.

'오오....옆자리야 옆자리...뭐라고 말을 붙여볼까?...어디가세요? 학생이세요?....너무 상투적인가? 그럼 뭐라 그러지?'

슬금슬금 곁눈질을 하면서 말 좀 붙여보려는 찰나, 이 아가씨가 이어폰을 꺼내더니 음악을 듣는다.

'음.....그래 음악 다 들으면 그때 살짝 말 붙여봐야지....'

........

시간이 꽤 지났다.

........

드디어 이어폰을 뺀다.

'오호라~ 음음....처음에 뭐라고 말하지?....음음....어라? 안돼 잠깐....'

혼자 괜히 이런저런 고민하는 사이......이 아가씨 테이블을 빼더니만 엎드려 자 버린다.

'흠.....그래.....피곤한가보네......일어나면 그때 말 좀 붙여보자....'

.........

객실 앞에서는 아까 같이탄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

공공장소에서는 정숙해야되는거 모르나!!

프랑스에도 저런 사람이 있을 줄이야....

세계에서 고상한 척은 제일 많이 하는 것 같으면서도 저런 모습보면

프랑스인이라고 뭔가 남다른 면이 있는 것도 아닌 듯 하다.

.........

아무튼 시간이 또 꽤 지났다.

.........

이 아가씨 계속 잔다.

.........

 

2시간 뒤....

 

마침내 몽빠르나스 역으로 열차가 들어설 무렵.........이 아가씨 부시시 일어난다.

날 쳐다보고 방긋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기 트렁크를 가리킨다.

"트렁크 좀 내려주실래요..."

"예...그러죠..."

트렁크를 내려다 주자 눈을 껌벅거리며 내게 묻는다.

"어머....그런데 어디서 오셨어요?"

"한국요..."

"아~ 꼬레아.....음....여행 중인가보네요....여행 잘 하세요~ 안녕~"

" -_- ; "

 

야속한 그녀는 쪼르르 내리더니 플랫폼에서 기다리던 애인 품에 달려가 안긴다.

'아...뭐냐....이 허무한 상황은....혼자  지지리 궁상떨었던 거냐?.....어디서 왔는지 묻긴 왜 물어....흑...'

 

프랑스의 에티켓은 남자가 여자의 무거운 짐을 올려주고 내려주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한다.

남자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여기고, 여자는 의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책에 그렇게 써있고........겪어보니 그런 것 같다.

괜히 혼자 오버하지 말자......

 

와인파티

숙소에 있는 사람들이랑 조촐한 와인파티를 가졌다.

근처 슈퍼마켓에서 사온 와인이랑 맥주랑 과일을 앞에 놓고 이런저런 잡다한 여행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사온 프랑스 맥주는 알콜 5.5%에 탄산이 좀 많이 들어있고,

와인은 레드와인이랑 로즈와인 두 병인데 달착지근한 맛을 기대했던 내 생각과는 달리 썩 맛있는 것 같진 않았다.

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프랑스제 와인이다!!.......그게 중요한거지....!!

비록 머그컵에 따라 마시는 와인이지만 '파리에서 마신 와인 한 잔'으로 기억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오늘은 잠자리가 늦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