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을 넘어섰는데도 영하의 날씨를 넘나드는 통에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왔다.
휴스턴 Houston.
어쩌다 보니 휴스턴에도 다 와본다.
기름 냄새가 날 것 같은 텍사스의 공기를 예상했지만
공항의 향기는 생각보다 산뜻하다. 향긋한 오일 머니의 향기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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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타운에 있는 친구 집에 여정을 풀고 거리를 걸어 본다.
미국 도심지 거리는 어딜가나 특색없이 심심한 경우가 많은데 여기도 하염없이 심심한 풍광이다.
6차선 일방통행 도로가 쭉쭉 뻗어 있지만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지나는 차량도 별로 없어 한산하다.
간간이 조깅하는 사람만 보일뿐.
건물들은 좀 허름하지만 벽에 휘갈긴 그래피티와
어딘가 남부의 스웩이 넘치는 휴스턴 사람들의 느릿느릿한 움직임이 사뭇 색다르다.
그래도 역시 좀 심심한 미국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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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을 타고 나가 어슬렁 어슬렁 공원을 거닐어 본다.
3월 중순인데 이미 기온이 섭씨 22도다. 벌써 후텁지근한 게 한 여름이면 굉장할 듯하다.
허먼 파크 Hermann Park 입구에 우뚝 서 있는 샘 휴스턴 Sam Houston 장군 동상.
텍사스 주가 과거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 텍사스 공화국으로 독립했을때 텍사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다.
도시 이름도 이 분에게서 따온 것이다.
19세기 까지만 해도 미국이 아니었던 이곳은 여전히 지역색이 강해
사람들도 스스로를 Texan이라 부르고 Texan English라고 특유의 사투리도 있을 만큼
미국 내에서도 좀 유별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텍사스 사람들이 들으면 발끈해 할 수 있겠지만
왠지 텍사스하면 카우보이 농장만 있고, 황무지에 석유 시추공만 박혀있는,
사람도 별로 살지 않은 촌구석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으나
사실 텍사스 휴스턴 일대는 미국에서도 가장 큰 메트로폴리탄 지역 중 하나다.
석유 산업이 사양 산업이라 활기가 덜하긴 하지만 결코 촌구석(?)은 아니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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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한바퀴 거닐고 휴스턴 장군 동상 바로 옆에 있는 휴스턴 자연사 박물관이 있어 잠시 들렀다.
광활한 영토를 개척하면서 이루어진 이 나라인지라, 자연사 박물관은 미국 어딜가나 찾아볼 수 있고 전시 수준도 높다.
사냥을 많이 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박제 만드는 기술 하나는 탁월한듯 하다.
아무튼 휴스턴 자연사 박물관은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닌데, 다른 곳에 비해 공룡화석이 잘 전시되어있는 듯 하다.
내가 알기로 남부쪽에서 공룡화석이 많이 발견됐다고 하는데,
흔한 삼엽충부터 희귀한 공룡 피부 화석까지 전시 구성이 다양해 구경해 볼 만 하다.
트리케라톱스.
눈에 익은 이녀석도 있고...
이렇게 큰 익룡화석은 처음 보는데..
이정도 익룡이면 정말 사람 한 명 정도는 너끈히 태우고 다니겠다.
흡사 영화 '아바타'에서 주인공이 타고다니던 하늘을 나는 거대한 생물체 '이크란'을 닮았다.
왠지 티라노 사우루스보다 이녀석을 만나는게 실제로는 더 무서울것 같다.
하늘에 저 거대한 덩치가 날아다닌다니...
'크 헝 ~'
이빨은 날카롭지만 앞발이 짧아 슬픈 티라노 사우루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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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 박물관을 나와 우버를 잡아 타고 이제 NRG 스타디움으로.
사실 이번 휴스턴 방문의 최대 목적은 바로...
'2018 Houston Rodeo'를 보는 것. 후후.
뭔가 굉장히 미국스럽고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색있는 볼 거리가 뭐 없을까 찾아보다가
예전 여행 다큐멘터리에서 휴스턴 로데오 경기를 재밌게 봤던 기억이나 부랴부랴 티켓을 구해왔다.
매년 휴스턴에서 열리는 로데오 경기인데
대략 3주간 경기가 있을만큼 미국 내에서도 규모가 상당히 큰 대회이다.
미식축구 경기장으로도 쓰이는 거대한 돔 경기장 안에 늘씬한 말떼들이 무리지어 넘실거리는 것이 보기에도 제법 근사하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여유있게 말을 타는 모습이 꽤나 멋있어 보인다.
미국 특유의 여유와 자신감, 투박함 뭐 이런게 배어난다고 할까.
미국인들이 여전히 동경하는 서부개척 시대를 상징하는 가장 미국스런 모습이 이런게 아닐까 싶다.
관중석에도 청바지에 가죽 부츠를 신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 미국의 민속의상이 있다면 단연 카우보이 모자에 청바지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본다.
거대한 3층 실내 경기장이 관중들로 서서히 메워지면
지극히 미국스러운 국가 연주 행사가 이어지면서 경기가 시작된다. 유후.
총 3시간 정도 경기가 진행 되는데
우리가 잘 아는 황소 타기 Bull riding, 안장 없는 말 타기 Bareback riding뿐만 아니라
말을 타고 가면서 달리는 양을 로프로 걸어 넘어뜨리기 Steer wrestling
말타고 드럼통 사이를 빨리 돌아 나오기 Barrel racing
안장 얹고 말 타기 Saddle bronc riding 경기가 있다.
보통 한 경기가 4초~13초 밖에 걸리지 않아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데,
마침 오늘이 결선이라 선수들 수준도 다들 막상막하다.
개인적으로는 안장 없는 말타기 경기가 가장 박진감 넘치고 동작도 커서 재미있었다.
저러다 골병들겠다 싶을 정도로
말은 죽어라 펄떡거리고 위에 앉은 선수는 정신없이 흔들거리며 매달려있다.
이건 뭐 말도 괴롭고 선수는 죽을 맛일테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이다.
각 경기 올해 챔피언이 가려지면
챔피언은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미국인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짓고 승리를 만끽한다.
고생에 비해 시상식이 단초로운듯 하지만
전광판에 비치는 챔피언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감격스러운 표정을 보면서 사람들은 끝없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준다.
가만보면 미국인들은 참 잘 웃는다.
사진 찍을때도 웃는 표정이 어색하지 않고 정말 환한 표정으로 시원시원하게 참 잘 웃는다.
이런 로데오처럼 육체적으로 거칠고 위험한 도전도 좋아하고.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거친 아메리카 대륙에서 이민자들이 모여 만든 이 나라의 역사가
미국인들이 거친 도전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 있게 웃게 만들지 않았을까.
사실 이 나라도 문제가 참 많은 나라이기도 한데...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가장 미국인다울 때는
서부로 말을 몰던 개척시대의 패기와 자신감, 열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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