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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旅行/우리나라 이곳저곳

부석사에서 강구항까지 [2003.8.10]

제이우드 || 2023. 6. 2. 15:01

a.m. 3:00

새벽 산사를 울리는 스님의 도량석 소리가 들려온다. 목탁을 치며 법당을 돌면서 염불을 외는 것을

도량석이라고 하는데 예불을 올리기 전에 도량을 깨끗이 하는 의식이자 곧 예불이 있으니 준비하라는

안내방송같은 역할이다.

 

달빛을 등에 지고 법당에 들어섰다. 벌써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은은한 촛불에 비친 불상의 모습이 저녁때와는 달리 한층 신비스럽고 부드럽게 보였다.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는다.

저멀리 작지만 강렬하게 법고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그 소리가 내게 다가와 이내 양 귓전을 거세게 두드리고 심장을 흔들어 놓는다.

숨이 점점 가파온다.

법고 소리에 온몸을 맡기다 보면 뒤이어 경쾌하고 깨끗한 목어소리도 들려온다.

지축을 흔들어 세상 만물이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도록 다그치는 듯한 그 소리.

맑은 나무의 울림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시 차분히 가라앉혀준다.

 

살며시 눈을 떴다.

가부좌를 하고 앉은 스님들의 석불같은 실루엣과 촛불을 받아 빛나는 불상의 신비스런 자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성스러운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이내 참선이 이어졌다.

 

다시 눈을 감고 생각한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메아리에 귀를 기울인다.

온갖 외침들이 들려오고 상념과 지난날의 파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모르겠다...괴롭다...어지럽다.

떨쳐 버리고 싶지만 도무지 떨쳐지지가 않는다.

 

'딱'

스님의 죽비소리에 놀란 듯 눈을 떴다. 결국 내 안에서 들려오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하나도

찾지 못했다. 늘 고민하고 생각해도 뾰족한 해답이 없는 풀리지 않는 실타래같은 의문들...

좀 더 성숙하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108배를 하는 동안 어느덧 법당 밖이 희미하게 밝아져 온다.

 

 

 


사람들은 절대적인 것을 동경한다. 절대적 진실이라든지, 절대적 힘이나 권력이라든지, 절대적 믿음이라든지

사람들은 나약해지면 이런 절대적인 것을 찾게된다. 그래서 종교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널리 전파된 것이다.

난 솔직히 종교라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종교도 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의 산물인데

그것에 목매다는 것도 우스워보였고, 그런 종교를 믿는 다는 것은 곧 자기가 나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자신의 의지와 자신감이 결여된 행동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이렇게 산사예불체험을 하고 나니 종교가 가질 수 있는, 훨씬 더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면을 보게 된 것

같다. 종교를 통해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을 돌이키고 반성하고, 삶과 자연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한다면

종교는 충분히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아침공양을 하고 절을 둘러보며 사진도 찍었다. 역시 일찍 일어나니까 하루가 참 길어진 것 같았다.

 

 

 

 


마루에 걸터앉아 음악을 들으며 아침 한때를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보낸뒤 아저씨와의 기념 사진을 끝으로

하산했다.

 
 

 

부석사를 찾아와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40년전 아내와 데이트했던 곳을 찾아온 할아버지, 저녁에 절에서

다시 만난 택시타고 간 아가씨들, 방학을 맞아 혼자 막무가내로 청량리서 기차타고 내려온 여대생, 그리고

많은 도움을 주신 아저씨까지..... 불가에서는 인연을 참 중요시한다. 현생에 옷깃만 스치는 인연을 맺기 위해선

전생에 수없이 많은 연을 쌓아야 한다는데....이 사람들과 나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됐을까....

정말 값진 하루를 보내고 산을 내려왔다.

혹시 모르겠다. 나도 40년 후에 다시 이곳을 찾게 될지도....평생 잊지 못할 하룻밤이었다.

 

 

a.m. 9:10

부석사에서 버스를 타고 20여분 다시 풍기쪽으로 가면 소수서원이 있다.

소수서원은 1542년(중종 37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의 사묘를 세우고 다음

해에 학사를 이건(移建)하여 설립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 시초이다. 그 후 1544년 여기에 안축과 안보를,

1633년(인조 11)에는 주세붕까지 추배했다. 1550년(명종 5년) 이황(李滉)이 풍기군수로 부임해 와서 조정에

상주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은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학(私學)이었다.

조선말에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려 많은 서원이 사라졌지만 소수서원은 그때에도 살아남아

지금까지 비교적 원형이 많이 남아 있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몇백년은 됨직한 소나무 은행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어 한껏 운치를 더해줬다.

나리꽃이 만개한 뜰에 손 바닥만한 큰 나비들까지 펄펄 날고 있어 아주 고풍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서원으로 들어서기 전에 우측으로 죽계수가 흐르고 그 건너편으로 그림같이 취한대가 자리잡고 있는데,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이 한없이 고고한 모습이었다.

 

 

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경렴정이라고 멋드러진 정자가 또 하나 있다.

아담한 크기에 아마 서원을 드나 들던 사람들이 여기서 쉬어 가지 않았을까 싶다.

 

 

서원안으로 들어서면 아담한 크기의 학당들이 단정하게 배치되어 있다. 규모가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이런 곳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토론도 하고 심신 수양도 하고, 어찌보면 과거의 교육방법이 지금의 교육보다

결과론적으로 보나 그 과정으로 보나 훨씬 순수하고 인간적이었던 것 같다.

 

 

 

 

중요한 문화유산도 보관되어 있다. 서원이라는 곳이 말기에 와서는 약간 그 성격이 변질되긴 했지만,사원 뒤쪽에는 소수서원에 대한 사료와 설명을 볼 수 있는 사료관이 있다. 거기에 국보 111호인 안향의 영정 등

자연속에서 호연지기를 기르며 진리를 탐구하고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서원 나름대로 개성적인 하나의 큰

그룹을 형성했었던 점에서 오늘날의 대학과 한번 연관지어 생각해 봤다.

과연 우리가 다니는 대학들이 다들 제 기능을 다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도 제 본분을 다 하고 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a.m. 11:30

10시 10분 영주행 버스를 놓쳐 버렸다. 화장실 갔다가 나오니까 저 멀리 버스가 횡하니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 버스는 11시 30분에 있다. 아직 한시간이 더 남았다.

할 수 없이 서원앞 휴게소 벤치위에 가방을 베고 누워 망중한을 즐기자니 새벽예불을 보고 와서 그런지 졸음이

쏟아졌다. 시골이라 바람도 솔솔 불어오고 인적도 드물어 우리는 잠시 달콤한 낮잠을 청했다.

 

너무 좋다...

 

풍기랑 영주 부근에는 인삼밭이 참 많다. 서원 앞에도 인삼밭이 쫙 펼쳐져 있다.

신라시대때부터 소백산 부근 이곳 풍기에서 많은 산삼을 채취하였다고 하는데, 조선조에 들어서 중국에

보내지기 위해 산삼차출이 점점 증가해 농민들이 전답을 팔아 산삼을 바치는 폐농현상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풍기 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산삼에 대한 의존율을 낮추기 위해 산삼이 자라는 토양과 기후를

고려하여 인위로 풍기 지방에 인삼을 재배하기 시작한 이래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p.m. 12:30

안동행 버스에 올랐다. 이제 안동으로 가서 영덕군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한다.

여행을 하다가 어느 곳을 떠나는 순간은 어김없이 섭섭하다. 언제 다시 올 지 기약할 수 없어서 그럴지도..

만남과 이별..아니 만남과 헤어짐이라고 하는게 더 낫겠다.

만남과 헤어짐에 익숙해진다는게 여행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수확이라면 수확일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헤어짐 뒤에는 언제나 더 아름다운 만남이 있게 마련이니까..

 

p.m. 4:00

안동에서 2시 15분 차를 타고 영덕으로 출발한뒤 우리는 버스에서 내내 잤다. 점심을 바로 먹고 타서 그런지

시원한 에어컨 바람 밑에서 아주 쿨쿨 자 버렸다. 2시간 쯤 정신없이 자다가 눈을 뜨니 영덕군에 도착해 있었다.

사람들이 영덕하면 바로 바닷가에 있는 곳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영덕읍은 내륙에 있고 바다나 항구를 보려면

다시 20여분 정도 동해쪽으로 나가야 된다.

 

다시 버스를 타고 강구리에 도착했다.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영덕대게의 집산지이자, 몇 년전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촬영지로 유명한 강구항이 있는 곳이다. 마을 입구에 이곳이 드라마 촬영지였다는 것을

알리는 커다란 안내판이 서있고 온통 대게간판이 붙어 있는 제법 크고 분주한 마을이었다.

 


오십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강구항으로 들어갔다. 마침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부산, 대구 번호판을 단

승용차들이 쉴새없이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고 가족끼리 놀러온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상가를 따라 계속 걸어 들어가면 어판장과 어시장이 나온다. 역시 비릿한 냄새가 바닷바람에 뭍어

코끝을 찔렀다. 이런게 항구만의 매력이라면 매력이 아닐까. 활기찬 항구의 표정은 언제봐도 힘이 넘친다.

강구항은 우리나라에서 갈매기가 가장 많은 항구라고 한다. 새벽에 어선들이 돌아오면 하얀 갈매기들이

수없이 따라 들어온다고 한다. 저녁인데도 갈매기들이 심심찮게 여기 저기 시원스레 날고 있었다.

 

 

어판장에 늘어선 어선을 구경하며 걷고 있자니 저 편에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어서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보니까 고래가 잡혀 올라오고 있었다. 전에 어디선가 상어 잡은 건 본적이 있는데 이렇게 큰 고래를

잡아 올리는 건 생전 처음 봤다. 다른 사람들도 연신 감탄사를 터트리며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크기가 한 13m정도 되보이던데 무슨 종류의 고래인지는 모르겠다. 배쪽으로 긴 주름이 져 있고

입에는 수염같은 것이 막 나 있었다. 포유류라 그런지 잡아올리니까 생선냄새가 아니라 마치 소나 돼지를

잡을 때 나는 그런 냄새가 났다. 조금 징그럽기도 하고 불쌍하기 했는데 우리로서는 정말 보기 드문 구경을

한 샘이다. 고래는 지금 현재로서는 포획이 금지된걸로 되어 있지만 이렇게 고래가 실수로 다른 그물에 걸려

부득이하게 잡혀온 경우에는 즉석에서 경매가 열리고 상당히 고가에 처분되는 걸로 알고 있다.

마침 경찰이 나와서 사진도 찍어 가고 곧 경매가 열릴 것 같아 고래뱃속에 얼음을 채워넣는 작업이 이어졌다.

 

뜻밖의 구경을 한 뒤, 어판장 옆에 있는 어시장으로 갔다. 온통 대게가 판을 치고 있었다. 5마리에 4~5만원

이렇게 가격을 부르는 것 같았다. 대부분이 러시아나 북한 근해에서 잡힌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그리

높지는 않았다. 지금이 대게 제철은 아닌걸로 아는데 냉동대게를 내놔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가격이 그리 센거 같진 않았다. 간간히 오징어도 물을 내뿜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생선들도 펄떡펄떡 뛰고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강구항에는 길게 뻗은 방파제 끝에 있는 빨간 등대로 유명하다. 거기서 송승헌이랑 최불암 아저씨가 촬영을

한뒤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아침까지 맑던 하늘이 영덕에 도착한 뒤로 뿌옇게 흐려져

푸른 하늘과 시원한 하늘은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바다로 뻗은 방파제위를 걸으며 바라보는 수평선은

너무나 시원했다. 이렇게 멋진 수평선을 품고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해 봤다.

방파제 양옆으로 차를 대고 가족끼리 대게도 먹고, 낚시도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 넓은 방파제가

마치 좁은 골목처럼 북적거렸다.

불어오는 바닷바람, 짠 바다내음, 날아다니는 갈매기, 수면을 미끄러지는 어선....

바다를 느끼기에는 어느 하나 하찮은 것이 없었다.

 

상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민박을 잡았다. 후덥지근한 날씨 땜에 시원하게 씻고 짐도 내려놓고 쉴려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 3만원에 깨끗한 민박집을 찾았다. 여기는 대규모로 식당도 하고 민박도 하는 곳이

많은데 그런 곳은 방을 잡으려면 꼭 그곳에서 식사를 해야 하는 곳이 많다. 그런 곳은 비용도 비쌀뿐더러

약간의 바가지성이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p.m. 7:00

샤워를 하고 잠시 TV를 보며 여독을 푼 다음 저녁을 먹으러 다시 어시장 쪽으로 나왔다.

영덕까지 왔는데 영덕대게를 안 먹어 볼 수가 없어서 우리는 조금 무리하기로 했다.

강구항에는 다리가 두 개 있는데 다리 사이로 '풍물거리'라 해서 대게를 조금 싸게 취급하는 곳이 있다.

거기는 세금이 조금 면세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동선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그런지 내부는 조금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우리가 지나가니까 상인들이 온통 매달리는 통에 얼마나

뻘쭘했는지 모른다. 뭐 저렴하게 먹고 싶다면 여기서 먹어도 될 듯하지만 우리는 사람 많은 곳으로

가기로 하고 다시 상가쪽으로 향했다.

 

상가는 저녁에 더욱 붐볐다. 여기저기 사람들 부르는 소리가 이어졌는데, 조금 우스운건 우리가 지나가니까

상인들이 조금 망설이는 것 같았다. 다들 쟤들이 대게 사먹을 돈이 있을까? 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대게 요리는 주로 탕보다 찜을 해서 먹는데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4~5만원에서부터 10만원 이상까지,

솔직히 배낭여행하는 학생들이 사먹기는 조금 고가인 것이 사실인지라 그럴 만도 하다.

길가에는 대게를 쪄내는 찜통에서 피어나는 하얀 김들이 푹푹 솟아 오르고 대게 향기가 솔솔 넘치고 있었다.

상가중에는 영덕대게 상인연합회 회원이라는 하얀 스티커가 붙어 있는 곳이 있는데 그런 곳들 중을 골라서

찾으면 그렇게 손해 보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러시아산 큰 대게는 일인분 4만원이상, 북한산 조금 작은 건 3만원 이상이라 역시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다.

우리는 조금 흥정을 해서 북한산 대게를 4만원에 먹기로 했다. 학생이라 조금 싸게 해준덴다....

큰 러시아산을 보다가 북한산을 보니 조금 작아보였는데 막상 쪄서 눈앞에 놓고 보니까

이거 완전히 거대 외계 생물체 같았다. 어찌나 큰지 참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하게 있으려니

아주머니가 와서 다리 하나를 끊어 어떻게 먹는 건지 시범을 보여주셨다.

하얀 맛살 같이 굵은 게살이 정말 먹음직스럽게 툭툭 불거져 나오는게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대게가 크다고 대게인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실은 다리가 대나무처럼 생겼다고 해서 대게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정말 다리가 대나무 마디 하나 붙어있는 것 처럼 보인다.

어찌나 큰지 다리 몇 개만 잘라 먹어도 곧 배가 부르다. 시중에 파는 랍스타보다 훨씬 맛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밥에다 게몸통에 있는 장까지 비벼서 먹었다. 원래 그렇게 먹는 거란다.

정말 비싼 만큼 먹을게 너무 많아 주체할 수 없는 대게찜이었다. 원산지라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하고...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어시장을 조금 걷다가 민박집으로 돌아와 정말 편안한 휴식을 즐겼다.

요즘은 민박집이 시설이 좋아서 어딜 가든 깨끗하고 편안한 것 같다.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들어오는 방바닥에 누워 TV도 보고 수다도 떨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바다가 지척이라 그런지 간간히 파도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날씨가 흐린게 내일은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