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고 때론 진지한 얘기

소리로 기억하는 여행

제이우드 || 2023. 5. 18. 22:28

예전에 어느 여행작가가 자기는 여행을 가면 가끔 그 곳의 소리를 녹음해 온다고 했다.

거창한 장비가 필요한 건 아니고, 스마트폰에 있지만 사람들이 거의 쓰지 않는 녹음 어플을 이용한다고 한다.
고층 호텔 창밖으로 스며드는 도시의 온갖 소음에 섞여 아련히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시장통에서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웅성웅성 떠드는 사람들 소리, 
시차를 이기지 못해 이른 아침에 깨어 조용한 공원을 걸을 때 무심히 지저귀는 새소리.
때로는 사진이나 영상보다 그 순간을 가장 잘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 '소리'라고 한다. 
 
나도 예전 여행을 회상할 때 유독 어떤 '소리'가 떠오를 때가 있다.
야간 열차 침대에서 들려오던 주기적으로 덜컹 거리는 철로 소리,
긴 비행을 마치고 활주로에 내렸을 때 들려오던 기내방송,
바닷가 언덕 위에서 매섭게 귓가를 때리던 차가운 바람소리,
노천 카페에 앉아서 망중한을 보낼때 들릴듯 말듯한 사람들의 수다 소리.
별다를 것 없는 찰나의 평범한 소리가 이상하리만큼 여행의 진한 잔상으로 남게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을 살다가도 문득 예전의 그 소리를 다시 듣게 되면 
시공간을 뛰어넘어 그때 그곳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묘한 느낌을 받는다.
캠으로 영상과 소리를 모두 담아내는 시대에 굳이 소리만 녹음하는 행위가 구식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도 여행을 하다가 가끔 여행지의 소소한 소리를 녹음해오곤 했다. 
그리고 어느 여행작가의 말처럼 여행지에서 담아온 이러한 소리들은 여행을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 꽤 괜찮은 방법인 듯 하다.
 
이어폰을 끼고 눈만 감으면 나는 다시 '여행'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