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고 때론 진지한 얘기

7년 동안 정들었던 펍과 맥주

제이우드 || 2023. 5. 18. 22:33
 

금요일 저녁이면 동네 Rock Bottom에 가서 맥주 한 잔 하는 것이 참 좋았다.

북적이지 않고 적당히 소란스런 창가 테이블에 앉아서,

자주 보는 웨이트리스의 반가운 인사를 받으며,

늘 보는 이웃사람들과 같은 배경이 되어 맥주 잔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한 주를 마무리 하는 그 시간이

일주일 중 가장 여유롭고, 느긋하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사람들의 소소한 웅성거림, 바텐더의 익숙한 움직임, 웨이트리스들의 유쾌한 말투, 무심히 흘러나오는 TV화면,

이 공간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오래된 아지트에 앉아 있는 것 마냥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이었다.

 

Lumpy Dog, 깔끔하고 가벼운 Kolsch-Style Ale. 가장 밋밋하지만 부담없는 친구.

Hop Bomb, 친구 중에 가장 센 녀석. 씁쓸하고 묵직한 IPA.

Raccoon Red, 톡 튀는 개성이 강한 친구.

Liquid Sun, 내가 가장 좋아했던 친구. 향긋한 과일향과 적당한 탄산에 부드러운 밀맥주 Hefe Weizen. 

가끔 맥주가 질릴 때면 마시던 Mojito, American Mule... 

 

원래 술을 썩 좋아하진 않지만 이곳에서 마시던 맥주만큼 맛있는 맥주를 다른 곳에서 찾지 못했고

지금도 문득문득 차가운 유리잔에서 찰랑거리던 Liquid Sun의 화사한 빛깔, 은은한 과일 향기가 떠오른다.

7년 동안 정들었던 펍과 내가 좋아했던 맥주...

 

귀국한지 이제 반년이 지났지만 금요일이면 여전히 어슬렁 어슬렁 찾아갔던 그 곳이 생각난다.

아마 지금은 그때 마셨던 맥주보다도 그 시절이 그리워서인 듯 하다.

 

오래된 단골이 되어 웨이트리스가 내가 늘 마시는 맥주를 알아서 가져다 주고,

좋아하는 사람과 앉아 실없는 소리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그런 곳.

조용히 앉아서 가볍게 맥주 한 두 잔 할 수 있는 공간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