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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3

부석사에서 강구항까지 [2003.8.10]

a.m. 3:00 새벽 산사를 울리는 스님의 도량석 소리가 들려온다. 목탁을 치며 법당을 돌면서 염불을 외는 것을 도량석이라고 하는데 예불을 올리기 전에 도량을 깨끗이 하는 의식이자 곧 예불이 있으니 준비하라는 안내방송같은 역할이다. 달빛을 등에 지고 법당에 들어섰다. 벌써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은은한 촛불에 비친 불상의 모습이 저녁때와는 달리 한층 신비스럽고 부드럽게 보였다.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는다. 저멀리 작지만 강렬하게 법고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그 소리가 내게 다가와 이내 양 귓전을 거세게 두드리고 심장을 흔들어 놓는다. 숨이 점점 가파온다. 법고 소리에 온몸을 맡기다 보면 뒤이어 경쾌하고 깨끗한 목어소리도 들려온다. 지축을 흔들어 세상 만물이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도록 다그치..

아이슬란드 ICELAND, 고래의 커다란 지느러미

1. 바람조차 잠잠한 후사빅의 아침. 파도의 일렁임도 잔잔한 날, 고래를 만나러 간다. 설산이 둘러싼 후사빅의 고요한 앞바다가 고래들이 노니는 넓은 놀이터다. 2. 오래전 고래를 쫓던 나무 포경선을 타고 유유히 고래가 사는 바다로 간다. 조금 작아보이지만 무척이나 견고한 목선에 올라타면 모두들 설레는 마음으로 저마다의 가슴 속 고래를 품고 바다를 응시하게 된다. 3. 이따금 퍼핀이 날아와 떠다니는 바다는 호수처럼 고요하고 머리에 눈을 이고 있는 그림같은 산들이 고래를 기다리는 시간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사실 고래를 찾는 방법이 따로 없다. 그냥 보일 때까지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며 그녀석을 기다리는 수 밖에 :) 4. 이따금 보이는 돌고래가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다가 드디어 고래가 나타나 커다란 ..

고래, 천명관 2014

비참한 삶을 산 한 노파와, 육체적 아름다움과 사업적 강단을 가진 금복, 그리고 그녀의 백치 딸 춘희. 세 여인의 기구한 팔자가 얽히고 섥힌 이야기는 상당히 기묘하지만 흡입력있다. 현실과 비현실을 왔다갔다하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게 무슨 전개인가 싶기도 하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시선을 잡아당기는 이야기의 힘이 상당하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 쉼없이 빠르게 달려온 이야기의 끝에 다다라 힘이 쭉 빠져 멍해진다. 거칠지만 기묘하고 궁금한 이야기. 하지만 딱 거기까지. 고래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자인 천명관의 '특별한' 장편소설. 신화적, 설화적 세계에 가까운 시·공간을 배경으로, 1부와 2부는 산골 소녀에서 소도시의 기업가로 성공하는 금복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그녀를 둘러싼 갖가지 인물 사이에서 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