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의 '무진기행'과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이 떠오른다.
예전 어느 문학 해설가의 말을 빌리자면, 김승옥이 '무진기행'을 쓰면서 '설국'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했다.
두 이야기 모두 현실을 피해 깊이 숨어버린 도피처가 있고, 무기력한 주인공의 유약함이 감각적인 문장에 녹아나는 것이 비슷하다.
'인간 실격' 역시 꿈도 없고, 무기력하고,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지 못하는 주인공 '유타'가 있다.
부자집 막내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와 가족의 기대에 맞춰 연극하듯 인생을 살아왔고,
하고 싶은 것도 없이 흔히 말하는 폐인처럼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내가 읽었던 다른 소설에 이보다 더 지질한 캐릭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못난 인물'이다.
전후 일본 사회 전반에 퍼져있던 패배주의와 작가의 불행한 자전적 삶이 뒤섞인 우울한 이야기.
스스로 파괴되어가는 인생을 보면서 각자의 삶을 가다듬어주는 소설이다.
본문 중에서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괴상한 표정의 소년을 본 적이 한번도 없다.(p.10)
부끄럼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p.13)
"부러 그랬지?" (p.30)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p.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