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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읽은 얘기/책 BOOK

1만 1천 권의 조선, 2022

제이우드 || 2023. 3. 18. 15:17
 
1만 1천 권의 조선
소설가 김인숙이 한국에 관한 서양 고서 마흔여섯 권에 대해 쓴 산문이다. ‘Korea’, ‘Corea’, ‘조선’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나라와 관련된 한 글자만 들어 있어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 명지-LG한국학자료관.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1만 1천여 권의 한국학 자료들이 소장된 이 도서관에 초대되어 수많은 서양 고서들을 만났고 약 3년간 이곳의 다양한 고서들을 연구하며 이 책을 준비했다. 키르허의 《중국도설》, 하멜의 《하멜 표류기》, 샬의 《중국포교사》, 키스의 《오래된 조선》, 카를레티의 《항해록》, 프로이스의 《일본사》, 쿠랑의 《한국서지》 등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스웨덴어와 같이 다양한 서구의 언어들로 기록된 이 고서들은 17~19세기 한국학 연구에 있어 중요한 사료들로 손꼽히지만 정작 대중들에게는 낯설다. 그런데 이 고서들 속 조선에 대한 기록은 정작 허점투성이에 오류가 난무한다. 우리나라가 등장하는 부분이 단 한 줄 혹은 몇 문장에 그치는 경우도 많고, 그마저도 자신들의 고정관념과 이해관계가 덧씌워진 채 왜곡되기 일쑤다. 막연한 동경이나 미화 혹은 무의식적인 혐오와 폄하의 틀을 벗어던지지 못해 마주하기 불편한 기록들도 적지 않다. 저자는 이 모든 구부러지고 빗겨나간 정보들을 있는 그대로 소개한다. 당시 서구인들의 시선에 비친 우리의 모습, 그 책을 만들어낸 인물들과 그들이 살았던 시대 그리고 그 주변부의 이야기까지 역사 속 사실들을 섬세하고 명민한 시선과 작가적 상상력으로 포착해낸다. 또 한 가지 저자가 공을 들여 소개하는 부분은 이 서양 고서들이 가진 물성 그 자체다. 실제로 이 책에는 120여 장에 가까운 고서 사진들을 직접 촬영하여 수록함으로써 쉽게 접하기 힘든 고서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수백 년의 세월을 품은 채 낡아가는 표지, 펼치기만 해도 바스러져 가루가 되어 떨어지는 책장들, 종이 위 번진 세월의 얼룩과 멋스럽게 기울여 쓴 활자체와 정성껏 박을 입히고 공들여 엮은 장정,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기 위해 면지에 적어둔 손글씨와 책장 사이에 끼워진 명함과 사진…. 저자는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운 몸이라고 찬탄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에서 담고자 했던 바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기에 있으나 거기에 없는 책들, 희귀한데도 희귀본이지 않고, 고서가 아닌데도 몇백 년씩이나 오래되었고, 외국어 책인데 우리나라 얘기를 담고 있는, 그런 책들 중 어떤 책이 아니라 그런 책들 모두에 대해서. 그 책들이 담고 있는 공간과 공간 사이, 시간과 시간 사이의 ‘이야기’에 대해서.”
저자
김인숙
출판
은행나무
출판일
2022.06.24
 
과거 우리의 모습을 누군가 제 3자의 시선으로 말해준다면 
왠지 우리가 우리를 바라 보던 것 보다 더 신선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다.
 
여기서 소위 '누군가'란 우리와 인접한 동북아시아 나라가 아니라 저 멀리 떨어진 서구권 나라들이다.
 
하지만 중세 이전 서구에 알려진 우리나라는 대부분 환상이 투영된 미지의 대상으로 기술되었고,
근대 제국주의 이후 우리를 향한 시선은 강자가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수탈, 혹은 이용의 대상. 인간적인 선의가 있더라도 그것은 대부분 '우월함'을 동반한 것이었다. 
그래서 근대 이후 우리나라를 찾아온 낯선 이들의 기록을 보면 다소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지나가는 시선에 잠깐 담긴 우리 모습이나
가까이 머물면서 들여다본 우리 과거를 접하는 것은 아주 흥미롭다.
그것은 누군가 우리를 알아 봐 주기를 바라는 'Do you know OO ?' 심리를 떠나서
과거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때문이다. 
 
역사 기록은 사실의 왜곡이나 기록의 오류, 작가의 편견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렇게 때문에 방대한 자료를 소개하면서 그러한 왜곡과 편견을 드러내고
그 속에서 보다 객관적인 이야기를 찾아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소중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