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읽은 얘기/책 BOOK

종이 동물원, 켄 리우 2018

제이우드 || 2024. 3. 20. 23:03
 
종이 동물원
SF에서부터 환상문학, 하드보일드, 대체 역사, 전기 소설에 이르기까지 켄 리우의 작품 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품집 『종이 동물원』. 총 14편의 중단편 소설로 구성된 이 책은 2017년 로커스 상 최우수 선집상을 수상하였다.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일반 대중이 누구나 실생활에서 생각해 볼 만한 소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인 아버지가 결혼 정보 카탈로그를 보고 선택한 여성이었던 잭의 어머니. 영어를 할 줄 아는 홍콩 출신이라고 했지만, 사실 모두 거짓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특별한 한 가지가 있었다. 종이를 접어 동물을 만들고, 숨을 불어넣으면 살아움직였다. 어린시절의 잭은 어머니가 만들어준 종이 동물들, 특히 종이 호랑이를 무척 아꼈다. 성장하며 동양인의 눈을 가진 자신이 백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알면서부터 어머니와 닮은 모든 것이 싫었던 잭은 어머니가 만들어준 동물은 모두 상자에 넣어 치웠고, 영어로 말하지 않는 어머니에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성년이 될 때까지 어머니를 외면하며 자랐고, 그녀가 암으로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종이 호랑이가 잭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접힌 종이 호랑이에 적혀 있는 어머니의 편지엔, 그녀가 들려주고 싶어하던 오랜 이야기가 또박또박 적혀 있는데……. 어린시절, 선물 포장지를 사용해 종이 동물을 만들고 생명을 불어넣어주던 중국인 어머니와 그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짧지만 가슴 찡한 감동을 전하며 저자를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린 표제작 《종이 동물원》, 일본군의 731부대의 잔학성을 다큐 형식으로 그려낸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사람들》 등 중국계 미국인인 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느 동북아시아의 역사적 굵직한 사건들을 SF 환상문학 장르에 녹여낸 작품들과, 장르적 재미와 완성도를 모두 갖춘 수작들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저자
켄 리우
출판
황금가지
출판일
2018.11.29

 

몇 살인지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 한 여름, 가족들과 가까운 계곡에 놀러 갔을 때였던 것 같다.

아버지는 감자인지 무인지를 납작하게 다듬고 나무젓가락을 여러 개 잘라 테두리를 따라 꽂았다.

그리고는 한가운데 구멍을 뚫고 기다란 나뭇가지에 걸쳐 계곡 물에 올리니 '물레방아'처럼 빙빙 돌았다.

아버지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던 나는 신나서 그 '물레방아'를 계곡물에 담가 빙글빙글 돌리며 놀았다.

정말 흐릿한 기억이지만 신기하게도 젊은 시절 아버지와 꼬맹이 나를 지켜보는 것처럼 그날이 떠오를 때가 있다.

...

'켄 리우'의 단편작 '종이 동물원'은 결혼 이민으로 홍콩에서 미국인 아버지를 따라 건너온 어머니가

어린 주인공을 위해 만들어준 '종이접기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시아계 이민자 어머니를 둔 혼혈아로서 겪게 되는 성장기 정체성의 혼란,

영어가 서툰 어머니와의 소통 문제로 시작되는 갈등이 덤덤하게 서술되지만,

끝내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을 뒤늦게 알게 된 자식의 후회와 미안함이 가슴 먹먹하게 표현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손수 만들어준 장난감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었다.

우리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담은 선물이었고,

우리들 기억 속에 각인된 또 하나의 피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