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살인지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 한 여름, 가족들과 가까운 계곡에 놀러 갔을 때였던 것 같다.
아버지는 감자인지 무인지를 납작하게 다듬고 나무젓가락을 여러 개 잘라 테두리를 따라 꽂았다.
그리고는 한가운데 구멍을 뚫고 기다란 나뭇가지에 걸쳐 계곡 물에 올리니 '물레방아'처럼 빙빙 돌았다.
아버지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던 나는 신나서 그 '물레방아'를 계곡물에 담가 빙글빙글 돌리며 놀았다.
정말 흐릿한 기억이지만 신기하게도 젊은 시절 아버지와 꼬맹이 나를 지켜보는 것처럼 그날이 떠오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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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의 단편작 '종이 동물원'은 결혼 이민으로 홍콩에서 미국인 아버지를 따라 건너온 어머니가
어린 주인공을 위해 만들어준 '종이접기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시아계 이민자 어머니를 둔 혼혈아로서 겪게 되는 성장기 정체성의 혼란,
영어가 서툰 어머니와의 소통 문제로 시작되는 갈등이 덤덤하게 서술되지만,
끝내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을 뒤늦게 알게 된 자식의 후회와 미안함이 가슴 먹먹하게 표현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손수 만들어준 장난감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었다.
우리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담은 선물이었고,
우리들 기억 속에 각인된 또 하나의 피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