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명리학은 사람마다 자기 안에 존재하는 장점을 찾아내기 위한, 자기 노력을 요구하는 학문이다.
운명(運命)은 숙명(宿命)과 다르다. 숙명은 '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 또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말한다....(중략)....운명학은 우리네 삶이 일정 부분 결정되어 있더라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학문이다.
사주명리는 역학(易學)의 원리를 바탕으로 인간의 운명을 예지하고, 긍정적인 기운을 살려 주고 부정적인 것들을 막아 주는 것이다.
누구의 삶에서든 위와 아래를 반복하는 기복이 있을 수밖에 없다....(중략).....세상이라는 틀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나라는 틀에 맞춰 주체적으로 풍요롭게 자신의 삶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이 시나리오처럼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보통 그런 경우는 살면서 내가 어찌하지 못할 곤경에 부딪혔거나, 중차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다. 도저히 내 능력과 판단으로 현재의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하기 어려울 때, 운명이나 숙명을 떠올리며 차라리 이 모든 것에 이미 정해진 결말이 있다고 믿고 싶어 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작은 '용기'가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절망도 견딜만한 '슬픔'으로 순화된다.
우리 삶의 틀이 과연 정해져 있을까?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신묘한 예시들을 보면 마치 그럴 것도 같지만, 아마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인간 군상의 삶을 관찰하면서 '의미 있어 보이는 우연의 경우들'이 축적되어 그렇게 보인 것이 아닐까 싶다. 감히 명리학의 깊이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마치 다양한 경우의 수를 얘기하는 확률론 같기도 하고, 현상을 관찰해 법칙이 성립된 열역학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명리학을 통해 '확률'과 '열역학 법칙'만큼 정교하게 우리 삶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확률과 열역학에서 다루는 몇 가지 변수만 가지고도 예측 오차가 생기는데, 우리 삶을 예측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있지 않은가.
삶의 방향이 정해져 있다고 믿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저자가 서문에 말한 것처럼 우리 삶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주체적으로 살았으면 하는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사주명리학'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