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旅行/유럽배낭여행 | 2004

유럽배낭여행 [로마 - 도쿄]

제이우드 || 2023. 6. 16. 12:21

2004.11.1 月  
 

지금 벌써 몇 번째 깨는건지 모르겠다.

몸은 피곤하고 분명히 자야될 것 같은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안그래도 넓지 않은 좌석이 오늘따라 더 좁아 보인다.

 

잠깐 복도로 나가서 뻣뻣해진 다리 좀 주무르고 주스도 마셔보지만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도착시간까지 5시간 30분 남았다.

고도 10100m, 시속 931km/h.....시베리아 상공이다.

 

아까보던 영화나 마저봐야겠다.

...

...

 

아침?.....저녁?

기어코 잠깐 잠이 들었었다.

한시간쯤 잤나보다......아이고 삭신이야...

 

부시시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니 하늘이 어스름하게 물들어있다. 여기가 어디야...

그러니까 저게 지금 해가 뜨는 건지.....해가 지는 건지....헷갈리네.

보자....우리가 지금 동쪽으로 날아왔으니까....지구가 자전하는 방향으로 돌았으니까....

날짜도 하루 지났고.....지금 여기는 저녁무렵일테고....음음

.....

저녁 노을을 보고 비몽사몽간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으니 또 기내식이 나온다.

음....시간상 우리한테는 아침이 맞긴 맞는데....

창밖으로는 지금 노을이 지니까...

아침이야....저녁이야...

...

 

노을을 배경으로 '아침'을 먹는 동안 비행기는 시베리아를 빠져나와 동해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한시간쯤 남았다.

...

...

 

도쿄, 나리타

드디어 창 밖으로 노을에 물든 일본땅이 흐릿하게 내려다 보인다.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진짜 너무 반갑다...

착륙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15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진짜......너무 멀다....

지구가 이만하길 천만 다행이지....

 

....

 

비행기는 천천히 포물선을 그리며 공항으로 다가선다.

산이며 들이 낮아지더니 건물들도 하나 둘 선명해지고...

빠르게 스치듯이 활주로에 다가선 비행기는 부드럽게 도쿄의 품에 안착했다.

 

11월 1일....어느덧 하루가 지나고 그마저도 얼마남지 않은 도쿄의 저녁이다.

....

....

 

"에...비행기표"

"여기..."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여권을 보더니 세관 아저씨가 우리말로 맞아준다.

까만 머리에 까만 눈동자의 사람들.....

나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을 보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공항 곳곳에 달려있는 한국어 표지판도 너무 반갑고...

역시나 이웃동네라 그런지 너무도 친숙하다....

 

이런 기분 참 오랜 만이네...

....

세관심사를 마치고 호텔 확인증을 받은 다음 배낭을 찾아 호텔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오늘 신세질 곳은 공항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니꼬 나리타 호텔'이다.

뭐...도착시간이 좀 빨랐다면 도쿄까지 한 번 나가볼 수도 있었는데,

여기서 도쿄 도심까지 가는 것도 꽤나 멀다고 하니 도쿄는 그냥 남겨둬야할 듯하다.

아쉽지만 도쿄 관광은 다음 기회에...

...

 

니꼬 나리타 호텔...

어두운 도로를 달려 도착한 니꼬 호텔...

간사이 호텔보다 조금 구식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주 비싸보이는 호텔이다.

'허긴....민박집들에 비하면 진짜 호텔이지....'

 

체크인을 하고 내일 아침 쿠폰이랑 객실 열쇠를 건내 받았다.

할인 항공권때문에 호텔 숙박이 무료로 제공 되는 것이긴 하지만

왠지 처음부터 공짜로 자게 되는 것같아 기분은 좋다.

 

이런데서 하룻밤 자면 비용이 얼마나 들까나....?

우리나라 돈으로 한 20만원 할라나......풋

....

객실로 들어서자마자 뜨거운 물 잔뜩 틀어 놓고 샤워를 했다.

뽀송뽀송한 수건하며....깔끔하게 포장된 비누...샴푸...

역시 호텔이 좋긴 좋다야.....

 

흥얼흥얼 노래도 불러가며 욕실 안이 뿌옇게 흐려질만큼 씻고나니까 피로가 좀 풀리는 것같다.

아~ 상쾌한 이 기분...

....

여기 물이 좋은가보다.....피부가 장난이 아니다....후후

 

...

...

 

씻고 앉아 있으니 마땅히 할 일도 없고해서 군것질이나 할 겸 호텔 매점에 내려갔다.

컵라면, 과자, 음료수, 맥주, 김밥, 양주....

뭐....어차피 엔화는 여기서 다 쓰고 가는게 좋으니까 맛있는거나 사 먹어야지....

 

240엔짜리 튀김 우동, 140엔짜리 삼각김밥, 130엔짜리 아사이 맥주 작은 캔.....이건 캔이 너무 귀여워서 샀다.

 

그래도 엔화가 조금 남는다....헐

짠~ 이 얼마만에 먹어보는 컵라면인가....

컵라면에 삼각김밥....크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컵라면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사람 입맛은 바꾸기 어려운 거라고, 유럽에서 음식고생 별로 안하고 맛있는거 많이 먹었지만

지금 이 컵라면 하나에 전부 잊혀져 버렸다.

 

크....이런....너무 맛있잖아....우헤헤

 

....

....

 

저녁 9시...

 

비행기에서 잠을 설쳐서 그런지 잠이 온다...

밖은 아까부터 캄캄하니 밤은 밤인 것같은데  이거 좀 어색하다.

음...시차가.....어떻게 되는 거지?

원래 이 시간이면 슬슬 일어날 시간인데....

오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마치 6시간이 된 것같다.

비행기에 내리자마자 또 해가 졌으니....

 

밤낮이 뒤죽박죽이 되 버렸다....또 한 며칠은 고생좀 하겠네..

지금 자면 아무래도 새벽에 깰거 같은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