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旅行/유럽배낭여행 | 2004

유럽배낭여행 [로마]

제이우드 || 2023. 6. 15. 23:03

2004.10.29 金  

 

"어어어......."

 

간만에 늦잠을 잤다. 부시시하게 일어나 눈만 꿈뻑꿈뻑.....

으음.....로마에 들어온 뒤부터 긴장이 풀렸는지 부쩍 잠이 많아진 것같다.

해가 벌써 많이 뜬건지 아니면 이탈리아의 환한 햇살 때문인지 방안이 벌써 환하다.

음....날짜로 따지면 로마에 입성한지 오늘이 3일째 되는 날이지만

첫날은 그냥 저녁 늦게 피렌체에서 로마로 넘어왔었고

어제는 폼페이까지 다녀왔으니 정작 로마 나들이는 오늘이 처음이네...흠...그렇게 됐군...

 

로마의 휴일은 이제부터...

...

...

 

드디어 콜로세움 앞에 서다...!!

아까부터 계속 가방 끈을 부여잡고 주변을 살피는 중이다.

지금은 콜로세움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

다름이 아니라 행여 소매치기가 있을까봐 슬쩍슬쩍 수상한 사람들을 주시하고 있는거다.

왜냐하면 여기가 그 악명높은 로마 지하철 안이기 때문이지....

여행정보를 수집하면서 '로마 지하철 안에서 소매치기 조심하세요'라는 문구를 수도 없이 봤거든....

눈 뜨고도 당하고 몰라서도 당하는게 로마의 소매치기란다. 그만큼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는 곳이 여기 지하철 안이고...

안 그래도 며칠전에 만난 사람이 지하철 안에서 지갑을 털렸다며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통에 지금 바짝 긴장하고 있는 중이다.

 

흐음....근데 의심부터하고보니까 이거 여기 사람들이 몽땅 다 소매치기범같이 보이네....큭큭

 

그러거나 말거나 지하철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어두컴컴한 배경 속을 달린다.

로마 지하철 객실이 유럽에서 타 본 지하철 중에 우리나라 지하철과 가장 닮은 것같다.

너비도 비슷하고 좌석이 딱 마주보게 배열된게 아주 익숙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로마 지하철 노선은 딱 두 개밖에 없는데

노선이 단순한 것도 유물이나 유적이 워낙에 많이 묻혀있기 때문이란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파리의 지하철 노선과는 참 다르지.....

뭐 어두침침하고 조금 어수선한 것도 로마 지하철의 특색이라면 특색이랄 수 있겠다.

 

괜히 혼자 바짝 긴장해 있는 사이 지하철은 금방 Colosseo 역에 당도했다.

그 유명한 콜로세움과 대면하게 될 순간이 이제 코앞에 다가온 것이다.

...

 

"우아....크다..."

내가 지하철 역에서 나오자마자 눈앞에 떡 하니 버티고 선 콜로세움을 보고 내뱉은 말이다.

글라디에이터의 피비린내나는 결투가 있었고 기독교인들의 처절한 순교가 있었던 이곳...

로마의 상징 콜로세움은 보는 이를 압도시키기 충분했다.

정말 이 괴물처럼 거대한 건축물 앞에 서는 한 없이 작아보이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큰 경기장을 가득 메운 로마시민들의 함성과

그 함성속에서 고독한 승부를 벌여야했던 검투사들의 결투를 상상해보니 저절로 숨이 가파온다.

얼마나 대단했을까.....

황제의 엄지 손가락 하나에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그 살벌함....그리고 거기에 열광하는 로마 시민들.... 

무너져내린 외벽 위로 바라다 보이는 푸른 하늘이 전혀 애처롭지 않은 이곳...

외벽을 따라 천천히 가장자리를 돌아보면서 아직도 그 위용을 뽐내고 있는 이 위대한 흔적에 대해 생각해 봤다.

무너진 외벽과 군데군데 갈라진 틈새가 세월의 무게를 여실히 보여주는 콜로세움이지만

거의 2000년을 버텨온 이 사연많은 건축물은 앞으로도 로마의 영원한 상징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로마제국의 명성이 그대로 살아있는 한 말이다....

나도 이제.....콜로세움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생겼다.....후후

 

콜로세움 옆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콜로세움이 워낙 거대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지만 이것 역시나 꽤 큰 구조물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만들어진 이 개선문 밑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들이 승전보를 알려왔다고 한다.

....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지나면 언덕 위로 뻗어 있는 길을 만나게 되는데

이 언덕이 바로 로마의 역사가 시작 되었다는 '팔라티노 언덕'이다.

최초의 로마 역사가 시작된 곳이니만큼 가장 오래된 로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형체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건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여기저기 그 잔해만 널려있지만

기둥만 서 있고 담이 허물어진 곳에도 나무가 우거져 있어 마치 공원같은 곳이다.

아직 발굴작업이 계속 진행중이라는데

나즈막한 언덕이지만 이 위에서 바라보는 로마의 전경도 꽤 볼만한 것같다. 

 

대전차 경주장에서 Torre Argentina까지....

다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쪽으로 내려와 팔라티노 언덕을 빙 둘러 대전차 경주장으로 향했다.

커다란 가로수가 쭉 뻗어있는 한산한 대로를 따라 걷다보면 금방 도착할 수 있다.

'으잉....이게 다야?'

 

넓은 공터에 작은 탑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는 이곳이 바로 대전차 경주장....

그 옛날 전차들이 흙먼지를 날리며 내달렸을 이 넓은 경기장도 지금은 잔디가 무성한 넓은 공터로 변해버렸다.

경주장이 뭐 넓어서 좋기는 한데....어째 너무 허전하다. 축구해도 되겠네....

 

영화 '벤허'에서처럼 이곳에서도 한때는 거대한 전차들이 요란한 말발굽소리를 내며 달렸을 테지만

열광하던 관중이 앉아 있었을 그 자리에 지금은 관광객들이 조용히 기념사진을 찍으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팔라티노 언덕의 유적이 내려다 보이는 대전차 경주장의 긴 트랙을 따라올라가 '코스메딘 싼타 마리아 성당'으로 향했다.

대전차 경주장 왼편으로 난 언덕길을 넘어 가면 되는데 이 성당이 그 유명한 '진실의 입'이 있는 곳이다.

...

...

언덕을 넘어 성당쪽으로 향하는데 잘 생긴 미남 경찰이 길을 막아선다.

 

"죄송하지만 성당 근처로 가실 수 없습니다."

"왜요?"

"오늘 여기서 EU 회의가 있습니다."

"에? 그럼 오늘은 저기 못 들어가는 겁니까?"

"네...그렇게 됐습니다. 경계가 언제 풀릴지는 저희도 모르겠네요."

 

이런...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로마 구경에 나선 첫날인 오늘이 로마에서 EU 정상 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어쩐지 아까 콜로세움 위로 헬기가 날아다니고 경찰차가 막 달려갈 때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니....

하필이면 성당 옆에 회의장이 떡 하니 들어서 있다.

EU 휘장과 함께 유럽 국가들의 국기가 게양되어있고 경찰들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으니 뭐 어떡하나...

쩝....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진실의 입에 손을 넣은 그레고리 펙이 정말 손가락이 잘린 것처럼 장난을 치자

오드리 헵번이 정말 깜찍하게 놀라는 그 장면을 상상하며 잔뜩 기대했었는데 오늘 완전히 김 샜다. 후후...

...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 버스를 타러 가던중 하늘에서 뭔가 휙하니 떨어졌다.

 

"퍽...!!"

"히익~"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로 내 발 앞에 떨어진 그 물체는 놀랍게도 내 얼굴 반 만한 솔방울이었다.

살다살다 이렇게 커다란 솔방울은 처음 본다....한 발자국만 더 앞에 있었으면....우에에

'우씨...깜짝 놀랬잖아.....무슨 놈의 솔방울이 이리 커....밑에 있던 사람이 맞으면 어쩌라고...'

 

솔방울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버스를 타려고 다시 정류장까지 걸어갔지만

로마의 버스 노선은 참 이해하기가 힘든 것같다. 왠만하면 감이 잡힐만도 한데 이거 영 어렵네...

 

그래서 뭐 어쩌겠어.....그냥 걸었다.

 

...

....

 

지금 시각 12시 23분...

오래된 문화유산이 가득한 로마지만 유럽의 전형적인 거리 풍경 또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유럽의 여느 거리만큼이나 운치있는 로마의 거리...

 

유럽의 도시들은 다들 비슷비슷하면서도 다 나름대로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지도도 무시하고 계속 걷다가 아주 희한한 광경과 마주쳤다.

기둥만 덜렁하니 남아 있는 유적지에 온통 고양이들이 가득하다.

검은 고양이...흰 고양이...얼룩 고양이...뭐 아무튼 여길봐도 고양이고 저길 봐도 고양이다.

뭐 이런 곳이 다 있나 싶은데....

그러고 보니까....로마의 어느 곳에 가면 고양이가 많이 몰려 있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것 같다.

'Torre Argentina'.... 버려진 고양이들의 천국....

언젠가 TV에서 유적지 안에 고양이들이 우글거리는 장면을 한 번 봤던 것 같다. 음....거기가 여기란 말이지...

 

이렇게 많은 고양이가 얌전히 한곳에 모여있는 모습이 꽤나 신기하다.

사람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고양이 특유의 그 사뿐사뿐한 걸음걸이로 유적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광경이란....

 

난간 위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나뭇가지랑 놀고 있는 한 고양이를 셔터에 담아 본다.

 

...

이건 내가 나중에 알 게 된 이야기인데 버려지고 병든 이 고양이들은

자원 봉사 단체가 성금을 받아 치료도 해주고 분양도 해주면서 돌보고 있다고 한다.

기둥만 남아 폐허가 된 이 유적들이 고양이들의 처지를 더 안타깝게 묘사하는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 사람들의 따스한 정을 느끼게 해주는 아름다운 장소인 것같다. 

 

Pantheon..

고양이들을 남겨두고 골목을 헤매다 다시 방향을 잡고 빤떼온으로 향했다.

신들의 집....'빤떼온'....

파리에도 '팡테온'이 있지만 로마에 있는 이 '빤떼온'이야말로 모든 신들을 위해 지어진 최초의 집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900여년 전에 지어진 석조건물이니까 현존하는 그 자체가 실로 경이로울 뿐이다.

 

신들의 가호가 있었기 때문일까?....

 

너무나 허름해보이는 뒷모습과 달리 빤떼온의 전면과 내부는 놀라울 정도로 웅장했다.

...

넓은 돔 천장 한 가운데로 스며드는 빛은 마치 신들이 발산하는 천국의 빛처럼

빤테온 내부를 감싸 흐르며 은은한 조명이 되어주고 있다.

 

하늘로 뚫린 저 창문이 신들과 인간을 이어주는 통로가 아닐런지...

....

위대한 예술가 라파엘로와 영웅 비또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한 이곳 빤떼온은

1900년이라는 긴 세월을 통해 신에대한 로마인들의 경외심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하지만...

글쎄...

고대 로마인들은 이렇게 거대한 구조물을 통해 신의 근엄함을 표현하고자 했을 테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이런 놀라운 구조물을 남겨둔 로마인들에 대한 감탄사가 먼저 터져 나오는 것 같다.

뭐 종교적으로 신을 믿지 않는 나로서는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대상은 언제나 우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

 

근엄한 신들을 영접하고 다시 빤떼온 앞의 작은 광장에 섰다.

분수대 계단에 앉으려해도 사람들이 워낙 많아 작은 틈새 찾기가 힘들다.

 

유난히 붐비는 것같다.

자....슬슬 배도 고프고....이제 어디로 간다....어디로.....

 

...

 

나보나 광장

빤떼온을 지나 찾아간 곳은 나보나 광장 근처의 피자집 'La Montecarlo'.

론리플래닛에도 표시된 유명한 피자집이다.

여행오기 전에 꼭 찾아 오려고 지도도 오려두고 자세하게 표시도 해 뒀었는데,

지도를 따라 좁은 골목을 한참이다 왔다갔다 하다가 겨우 좁은 골목 귀퉁이에서 발견했다.

유명한 음식점은 왜 꼭 이렇게 찾기 힘든곳에 있는건지....

 

꽤 넓은 가게지만 작은 테이블마다 손님들이 가득하다.

벽에 그간 다녀간 유명한 손님들의 기념사진들도 쭉 붙어있고..

 

가게 이름과 똑같은 montecarlo pizza.....

얇은 반죽 위에 버섯, 피망, 치즈, 양파.....특이하게 계란이 얹혀져 있는 피자다.

'흐음~ 냄새 좋고~'

원래 이탈리아 피자는 다 이렇게 얇은건지 모르겠지만,

세 조각만 먹어도 배가 부른 우리나라의 '개량 피자'에 익숙한터라

이곳의 얇은 피자는 훨씬 덜 부담스러운 것같다. 맛도 훨씬 담백하고....

 

와인잔에 콜라를 따라 마시며 우아하게 피자를 썰어 먹는 것도 즐거운 경험아닐까.

 

피자 한 판에 5.5유로, 과일 디저트 3.0유로...

... 

피자 한 판으로 느긋해진 몸을 이끌고 찾아간 곳은 나보나 광장.

원래 전차 경주장이었던 곳이라 트랙처럼 기다란 광장이다.

성녀 아그네스 성당과 세 개의 분수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고....

 

판토마임에 여념없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한다. 

"헤이~ 나카타, 나카타~"

"야나기사와 굳~굳~"

 

나보나 광장을 걷다보면 어김없이 이런 소리를 듣게 될 거다.

그 유명한 '손가락에 색실감아주는 삐끼들'이 널려있으니까. 어깨를 툭툭치며 다가오는데 여간 성가신게 아니다.

특히 동양인을 보면 일본 축구선수 이름을 들먹이며 막무가내로 색실을 내미는데 많이 당황스럽다....후후

이들의 수법이 우리나라 배낭객들 사이에 워낙 많이 알려져 있긴하지만

어제도 우리 민박집에 있는 한 명이 손가락에 색실 한 번 감고 20유로나 뜯겼다고 한다.

정말 말도 안 되게....풋

 

이 사람들이 다가오면 그냥 조용히 바지에 손을 집어 넣고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주면 된다오....

...

광장 여기저기에 모여있는 화가들...

근사하게 초상화를 그려주는 멋진 손재주를 가진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그린 멋진 샘플을 걸어 놓고 점잖게 손님을 기다린다.

20유로라는 가격이 그렇게 만만한 가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나도 한 장 그렸다.

사실은 나도 꼭 한 번은 이런 초상화의 모델이 되보고 싶었거든....우헤헤

이런걸 볼 때마다 누가 내 얼굴을 그린다면 과연 어떻게 그려줄지 항상 궁금했었다.

...

떨리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의자에 앉아 빤히 화가의 눈을 바라 봤다.

스페인계 출신처럼 보이는 이 화가는 눈이 아주 정열적인 것 같다.

내 얼굴과 종이 위를 쉼 없이 오고가는 그 눈빛이 꽤나 인상적인 양반이다.....

 

의자에 앉아 멋쩍은 표정을 하고 있으니 화가 아저씨 뒤로 지나가던 행인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그 사람들도 내 얼굴 한 번, 캔버스 한 번 이렇게 번갈아 쳐다보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화가의 손을 지켜보고 있다.

'아따....이거 진짜 부끄럽네....'

....

한 5분 쯤 지났을까.....

내 손에는 '나보나 광장에서...'라는 화가 아저씨의 싸인이 들어간 한 장의 초상화가 들려졌다.

목탄으로 그렸으니 집에 가거든 헤어 스프레이를 뿌려서 보관하라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흐음....내가 이렇게 생겼단 말이지....피식...'

 

확실히 사진과 그림은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른 것같다.

사진처럼 똑같지는 않지만 역시 그림에서는 사진보다 더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

만약 감성의 온도를 잴 수 있다면 그림에는 섭씨 37도의 따스함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사람의 체온이 그대로 전해지는 따스함말이다.

손 터치 하나하나로 이루어진 선들이 모여 명암을 만들고 형태를 만들고 감정을 만들고....

아무래도 내게는 이 초상화가 로마 최고의 기념품이 될것같다.

...

...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다...

초상화를 손에 쥐고 트레비 분수로 향하다가 방향을 잘못잡아 그냥 베네치아 광장까지 가 버렸다.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걸어왔지만 뭐 생각보다 그렇게 멀지는 않다.

...

광장 저편 아주 멋드러진 건물이 '비또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다.

비또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이탈리아의 오랜 분열을 종식시키고 오늘날의 통일 이탈리아를 있게한 장본인이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이탈리아 반도의 주인은 이탈리아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계단 위로 올라가면 횃불이 켜져 있는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지만

역시나 이곳도 EU회의 때문에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풋.

아쉽지만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 뒤돌아 설 수밖에....

....

...

.. 

베네치아 광장에서 다시 10분쯤 걸어 드디어 트레비 분수 앞에 섰다.

넓은 광장 한편에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건물들에 둘러싸인 아담한 공간 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Fontana di Trevi'....세 개의 길이 모이는 곳에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분수앞에 새까맣게 앉아있는 형형색색의 사람들...

시원한 물줄기처럼 사람들의 밝은 모습이 더 청명해 보인다. 

"동전 하나를 던지세요.....그러면 로마에 다시 오게 될겁니다...

 

하나를 더 던져보세요.....사랑이 이뤄질겁니다...

 

하지만 사랑이 힘들다면.....마지막으로 동전 하나를 더 던지세요..."

 

.....

..... 

사람들은 어김없이 분수대 앞에 뒤돌아 서서 등 뒤로 힘껏 동전을 던지고 있다.

로마에 다시 오고싶은 마음을 담아....

아니면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분수대 안에 가라 앉은 저 수많은 동전의 주인들은 과연 자기들의 소원을 이뤘을까...

 

동전을 분수대 안으로 던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마법에 걸리는거다.

'언젠가는 로마에 또 올 수 있겠지....언젠가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

사람에게 있어서 '희망'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비록 그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질지는 정작 장담할 수 없지만

가슴 속에 그 '희망' 하나를 품는 순간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 소망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것이다.

... 

분수대 앞에 서서 천천히 뒤를 돌아다 본다.

내 시선은 이제 분수대가 아니라 여기 모인 수많은 사람들을 향하고

여기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도 나를 격려하듯 지켜보고 있는 것같다.

 

손 바닥 위에 있는 동전 하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등 뒤로 가볍게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동전....

 

'하나.....이제 나는 언젠가 다시 로마에 올 수 있다....'

 

그렇지만 호주머니 안에는 아직 동전 하나가 더 넘아있다.

이걸 던지면.....그래....사랑을 이루게 되겠지...

 

슬며시 동전 하나를 더 꺼내 애꿎게 만지작거렸다. 던져?....관둬....?

부끄럽게 서둘러 던진 두 번째 동전도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물속으로 사라졌다.

 

'둘....나 동전 두 개 던졌다....피식'

 

실은...처음부터 두 개를 던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모르겠다'가 아니라 처음부터 두 개를 던지고 싶었다.

괜히 혼자 쑥스러워가지고는....쿡쿡

 

저기 어디엔가 가라 앉았을 내 동전들이 정말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지만...

오늘부터 나는 트레비 분수의 마법을 굳게 믿을 작정이다.

 

마법이란.....스스로 걸려드는 거니까....

.....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를 뒤로하고 스페인 광장에 들어서자 이제 오후의 햇살이 기다란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그러고보니 시간이 꽤 지났다....

광장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 망중한을 즐기고 있고

난파선 모양의 분수대가 작은 물줄기를 뿜어내는 광장 위쪽으로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는 스페인 계단과 성삼위일체 성당이 올려다 보인다.

....

계단 중간쯤까지 올라가서는 사람들 틈에 껴서 털썩 주저 앉았다.

오늘은 꽤나 걸었나보다....다리가 묵직한게 이제 별로 움직이고 싶지가 않다...후후

콜로세움에서부터 여기까지 버스 한 번 안타고 줄곧 걸었으니 다리가 아플만도 하지...

 

여기 이러고 앉아있으니까 관광객 같지 않고 여기 로마 시민이 된 것같다...

되게 편하네....

 

...

이곳도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귀엽게 아이스크림 먹는 장면으로 유명해진 곳이지만

실제로 여기서 한껏 분위기 잡으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낭만을 즐길 수는 없다.

그 영화 이후로 워낙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따라하느라 계단이 너무 지저분해져서

지금은 스페인 계단에 앉아서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게 됐단다.

멋도 모르고 여기 앉아 뭘 먹으면 어느새 경찰이 조용히 다가와 씨익 웃어보일테니 주의.....

계단에 그렇게 걸터앉아 한참을 사람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다른 사람들 사진찍는데 배경이 되어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아....이렇게 앉아 있으니까 정말 좋네....'

 

왠지모르게 여기 스페인 계단은 참 마음에 든다.

저 아래로 광장 사람들도 내려다보이고 저 멀리 뻗은 골목도 보이고....

 

참 이상하지....

여태까지 여행하면서 그 어떤 곳에서도 이렇게 편하다는 느낌을 받은적이 없는데 이곳은 왠지 너무 친근하다.

지금 이순간 나는 비행기로 12시간을 날아와 이국땅을 여행하는게 아니고 그냥 잠시 우리집 앞 공원에 놀러나온 것만같다.

내 옆에 앉아 있는 많은 사람들은 낯선 외국인이 아니고 다 나의 이웃같고,

눈 앞에 펼쳐진 이 거리의 풍경은 내가 늘 보던 우리 동네의 모습같다....

 

그래....한달간 여행하면서 많이 변했다.

여행지의 일상은 나의 일상이 되고 나 또한 그곳의 작은 부분이 되고....

....

 

이제 이틀 후면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처음에는 시작만으로도 꿈만 같았던 여행인데.....모레면 끝이라니 그것도 꿈만같다.

아쉽네....

....

 

'돌아가면 더 그립겠지.....돌아가면....이 모든 것이 다 그립겠지.....'

...

 

Castel Sant' Angelo

저녁무렵...

여행 막바지의 처진 기분을 달래볼 겸 민박집 사람들이랑 다시 길을 나섰다.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다시 로마의 지하철을 타고 Lepanto역에 내린 우리들은

익숙하지 않은 로마의 밤길을 걸어 '천사의 성'으로 향한다.

 

유난히 가로등 불빛이 희미한 거리에는 인적도 없고 고요한 정적만 흐르고 있다.

로마의 밤은 원래 이렇게 조용한건가....

....

 

얼마 남지 않은 여행자의 특권을 누리기 위해 우리들은 의식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동안 겪은 여행이야기도 하고 어쭙잖은 감상을 늘어놓기도 하면서.....

나도 그렇게 말이 많은 편이 아니지만 오늘 밤은 왠지 그냥 계속 이렇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어디서 오셨어요...."

"거기 가 봤어요...."

"언제 돌아가시나요...."

"돌아가면 뭐 할건가요...."

.... 

천사의 다리 위에서 환하게 밝혀진 성 베드로 대성당의 높은 돔을 바라본다.

내일은 바티칸을 둘러볼 차례다.

이제 저 바티칸만 둘러보면 로마도 안녕이겠군....

 

여행의 막바지라 그런지 이젠 뭘 바도 새삼스러울 게 없어진 것같다.

이렇게 볼거리 많은 로마에 와서 이런 소리를 한다는게 아쉽기도 하지만....사실이 그렇다.

마지막 도시라서 긴장이 풀린건지....떠나려니 아쉬운건지....

 

떼베레 강에 어른거리는 불빛들을 바라보니 기분이 다시 가라 앉는다.

...

 

'천사의 성에는.....정말 천사가 살았을까.....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