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旅行/유럽배낭여행 | 2004

유럽배낭여행 [프라하]

제이우드 || 2023. 6. 15. 13:30

2004.10.18. 月  

 

"밥 먹어~~ 3층 밥 먹어~~"

 

아저씨의 독특한 소프라노톤의 고함소리에 부시시 잠을 깼다.

목소리 참 특이하시네.....

 

원래 계획은 오늘 오후에 빈으로 바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저씨의 말씀을 듣고... 또 어제 프라하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니까 생각이 바뀌었다.

하루만 머물다 가기는 너무나 아쉬운 것 같아서 내일까지 하루 더 연장....

내 옆 침대를 쓰는 분이랑 아래층 어떤 여자분은 지금 일주일째 프라하에서만 머물고 있다고 한다.

너무 좋아서 다른데로 가기가 싫다나....

 

뭐 하룻동안 지내보니까 프라하도 상당히 매력적인 도시다.

유럽 사람들은 파리보다도 프라하를 '유럽의 진주'라면서 더 극찬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저 프라하 성의 야경과 카를 교만으로 프라하를 논한다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나 다를바 없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예쁜 골목길 그리고 수준 높은 음악도 프라하의 가지고 있는 매력인데

특히나 프라하가 음악의 도시라는 건 어제 아저씨의 말씀을 듣고서야 알았다.

'드보르작과 스메타나.....'

오늘은 어디 클래식 연주회나 한 번 찾아봐야겠다.

....

 

프라하의 골목길

간만에 느긋한 오전 휴식을 취한 뒤에 11시쯤 트램을 타고 바츨라프 광장에 내려 구시가지 광장으로 향했다.

...

민박집 아저씨 말에 따르면 프라하는 전쟁으로 지켜낸 곳이 아니라 항복으로 지켜낸 곳이라고 한다.

적과 싸우기 보다는 전쟁 자체를 거부함으로써 오늘날 이렇게 아름다운 거리를 지켜낼 수 있었단다.

파리 못지 않게 고풍스러운 거리가 많은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래서 시선을 약간만 위로 줘도 프라하의 아름다운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

 

미로처럼 얽혀있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사방이 막힌 작은 마당에서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을 쳐다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

 

클래식카를 대여해주는 곳도 있다.

'오호....이런걸....'

 

보헤미아라는 곳이 정확히 어디쯤인지도 여기와서 알았다.

체코 서쪽이 그 유명한 보헤미아 지방인데 보헤미아가 또 옛날부터 유리 세공으로도 아주 유명하단다.

프라하의 골목길에 유리 세공품을 파는 가게가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고...

 

물방울처럼 투명한 유리에 코발트빛의 색상이 어우러져 있는 와인잔이며

화려하게 다듬어진 유리구슬, 물감을 그대로 뿌려놓은 듯한 접시....

뭐 종류도 다양하고 색깔 이쁜게 너무 많아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아주 즐거워진다.

 

......

 

프라하의 골목에서 유리 세공품 가게만큼 많은 가게가 바로 인형극 인형을 파는 가게다.

인형극 '돈 지오반니'로 대표되는 프라하의 인형극은 우리나라 배낭여행객들에게는 필수코스로 알려져있다.

인형극이 열리는 소극장 관객의 절반이 한국사람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말이다.

뭐 그만큼 재미가 있으니까 인기가 좋겠지만.....

어제 민박집 아저씨의 말을 들어보니 인형극보다는 음악회가 듣고 싶어졌다.

남들 다 보는걸 그냥 따라 보는 것도 재미없고....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은 건 아니지만 인형극보다는 음악회가 더 프라하다운 모습이 아닐까 싶어서말이다.

.....

 

.....

 

 

하루 사이에 어느 정도 지리에 익숙해졌는지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뭐랄까....

프라하 골목길은 느긋하게 걸어다니기에 딱 좋은 크기인 것 같다.

아늑한 골목길을 걷다보면 이쁜 가게도 둘러볼 수 있고....

골목 모퉁이를 돌아갈 때마다 보물찾기처럼 가슴이 설레인다.

...

 

레스토랑

골목 어귀에서 찾아 들어간 작은 레스토랑.

테이블이 10개 정도 되려나....

프라하가 많은 배낭여행객들의 인기를 모으는 이유는 물론 아름답기 때문이지만,

고맙게도 물가가 아주 저렴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 저녁에도 127코른....우리나라 돈으로 만 원 정도에 정말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었었다.

'프라하에 가면 몸 보신 한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늘 지갑 두께를 걱정해야하는 여행객에게 프라하의 물가는 가히 축복 그 자체다.

 

점심으로 119코른짜리 특선 요리와 35코른 카푸치노 한 잔으로 소박한 사치를 누려본다.

버섯이랑 콩, 쇠고기, 당근이 들어간 호박죽 같이 생긴 수프...

수프라고는 크림 수프처럼 뽀얗고 걸죽한 것만 봐왔는데 일단 색깔부터 완전히 딴판이다.

국처럼 생긴게 좀 짭짤하다.

 

다음 메인 디쉬...

 

'어라? 이거 빵이네..'

 

어제 저녁처럼 열심히 고기 썰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접시 한 가득 찐빵처럼 생긴 커다란 밀가루 덩어리를 보니까 당황스럽다.

아니 그 보다 조금 실망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빵이나 먹으려고 레스토랑 찾아 온건 아니었는데...후후

스테이크처럼 썰어서 먹으라는 걸까...?

갈비찜 같은 작은 고기 덩어리가 빵 옆에 두 조각 정도 있긴하다.

빵을 스테이크처럼 몇 번 썰어서 먹다가 영 모양새가 안 좋아 손으로 집어 먹었는데

찐빵이랑 카스테라를 반반씩 섞어 놓은 듯한 맛이 난다.

말랑말랑하니 부드럽고... 생각보다 나쁘진 않다.

세 덩어리를 먹으니까 이것도 생각보다 배는 든든하네...

 

후식으로는 애플파이.....크 정말 달다.

단건 별로 안 좋아해서 반쯤 먹다가 남겼다.

 

대신에 카푸치노를 홀짝거리면서 프라하 정오의 한가함을 마음껏 누렸다.

아.....이 여유로움이란......

 

.....

계산하는데 서비스 요금에다가 테이블에 있던 빵값까지 지불해야했다.

빵은 아까 살짝 손만 대고 안 먹었는데......쩝.

 

틴 성당

"모자는 벗어 주세요..."

"엇....미안합니다."

구시가지 광장을 가로질러 틴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까 관리인 영감님이 내 모자를 가리키며 조용히 속삭인다.

 

성당 안에 마련된 성수에 손을 담그고 조용히 성호를 긋는 사람들....

다른 성당과 달리 내부가 유난히도 밝다.

 

화려하지만 결코 사치스럽지 않은 장식들이 아주 고급스러운 느낌을 전해준다.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가며

잠시나마 성직자의 고요한 마음을 가져본다....

 

성당을 나서다가 클래식 연주회 포스터에 눈길을 빼앗겼다.

'THE GREATEST HITS....The Best of World and Czech Music'

...

티켓센터 안으로 들어서자 벽면 가득히 연주회 포스터가 붙어있다.

스페인에서 온 클래식 기타 듀엣 공연도 있고 성당에서 열리는 자그마한 가스펠 공연도 있고...

역시 체코의 국민 음악가 스메타나와 드보르작의 작품을 연주하는 곳이 많다.

...

마음에 드는 공연이 두 세 개 있긴한데....

아까 밖에 붙어 있던 포스터의 공연이 가격은 좀 비싸지만 그 중에 제일 마음에 든다.

아는 곡도 몇 개 있고 선곡이 대중적으로 아주 잘 된 것 같다.

그런데 가격이 790코른.....하루 숙박비 보다도 더 비싸다.

'아....고민되네....이걸 봐 말어...'

클래식 매니아도 아닌데....남들 다 보는 인형극보다 이 공연이 더 나을지 장담할 수도 없고...

...

크...그런데 정말 한 번 보고 싶다..

 

 

...

"오늘 저녁 이 공연으로 티켓 하나 주세요....B석으로요..."

"790코른입니다.."

"여기 카드...."

 

결국 나름대로 큰 마음 먹고 카드 한 번 긁었다.

 

'오늘 저녁 8시....화약탑 옆....Czech Collegium....좋았어'

 

다시 프라하 성의 황금길로...

성 비타 성당이 굽어보는 블타바 강을 건너...

 

어제 걸어 내려온 노란 회벽길을 따라....

 

백개 첨탑의 도시 프라하의 아름다운 전경을 바라보며....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한 악사의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연주를 들으며 그렇게 또 프라하 성으로 향했다.

....

어제 프라하 성의 황금길을 못 가봐서 지금 다시 올라가는 길이다.

왠만하면 한 번 갔던 곳은 다시 잘 안가는 성미지만......여기는 프라하 아닌가...씨익.

 

성 조지 바실리카가 바라보이는 성 안의 깊숙한 갈림길을 지나면 황금길로 들어가는 작은 출입구가 있다.

'황금길은 통행료를 받는다'....여행책자에 이렇게 나와있다.

프라하 성 입장료도 안 냈는데 기껏 길 하나 지나는데 돈을 받을까?

모른척 하고 입구로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접근하니까 검표원 아저씨가 씨익 웃으면서 매표소를 가리킨다...헤헤

 

'프란츠 카프카'가 살았다는 장난감같이 작은 집...지금은 평범한 기념품 가게로 변해있다.

황금길에는 성벽을 마주보고 알록달록 귀여운 집들이 옹기종기 대략 80m정도 쭈욱 늘어서 있는데

생각보다 너무 좁고 짧은 길이다. 안내책에 나와있던 말이 틀린건 아닌데....

이렇게 짧다고는 안 나와있었잖아!....이런....조금 허탈한 감이 없지 않다.

 

그래도 가게에 진열된 예쁜 물건들을 요리조리 찬찬히 살펴보는 재미는 아주 쏠쏠하다.

작은 집 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서면...

향긋한 향기에 저절로 눈이 스르르 감기는 예쁜 양초랑...

 

다소곳이 눈을 깔고 비질을 하는 앙증맞은 종이 시녀들도 볼 수 있다.

.....

 

기왕 돈 내고 들어온 길이니 사진이나 더 찍고 가자는 신념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뭐 독특한 길이긴 한데....일부러 찾아와 볼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피식.

......

 

하늘은 맑고 프라하의 지붕들은 눈부시게 빛나는 오후의 한 때....

햇살이 어제보다 온기를 조금 더 머금은 것 같다.

 

성을 빠져나와 흐라드찬스케 광장에서 잠시 망중한....

전망이 참 좋은 곳이다.

 

멋진 프라하 전경을 배경으로 정면 한 컷...

 

그리고 어설픈 설정으로 뒤통수도 한 컷....

뒤통수가 좀 간지럽네....후훗

 

늦은 오후 카를 교 일대....

흐라드찬스케 광장에서 카를 교로 내려오는 비탈길은

구시가지 광장 주변처럼 고풍스러운 느낌이 아주 물씬 풍기는 거리다.

대사관도 보이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도 많이 있어 고급스런 느낌도 난다.

 

선로를 따라 부드럽게 커브를 돌아가는 트램.....

 

도로를 따라 쭉 내려오다가 자그마한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다.

'Cream & Dream'이라고 뮌헨에서 만난 어떤 분이 프라하 가거든 꼭 들러보라면서 알려준 곳이다.

종업원이 아주 이쁘다....훗

아이스크림 종류는 10개가 조금 넘는데 70코른 이면 제일 작은 컵에 아이스크림을 두 번 담아준다.

난 바닐라와 딸기.....초콜렛은 별로 안 좋아하고 나머지는 뭔지 잘 모르겠다.

 

'음.....쫍....'

 

오랜만에 먹는 아이스크림이라 꽤 맛있다.

우리나라에서 사먹는 아이스크림과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 다르다.

좀 더 신선하다고 해야할까....아무튼 아이스크림이 아주 촉촉하다.

.....

 

왼손에는 아이스크림 컵을...

오른손에는 작은 숟가락을 들고 카를 교로 느릿느릿 걸어간다.

아이스크림은 맛있는데 이거 영 폼이 엉성하네....

....

..

 

해가 많이 기울었는지 햇살이 황금빛으로 변했다.

카를 교는 어제처럼 사람들로 한 가득이고....

....

 

햇살을 받아 온기를 띄는 난간 한쪽에 기대어 서서, 남은 아이스크림을 마저 떠 먹으면서

거리 화가의 눈길과 손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화가의 눈은 대상을 갈구하고... 화가의 손끝은 하얀 종이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낭만적이다'함은 행동의 주체가 갖는 느낌이 아니라, 그걸 바라보는 객체의 느낌이라고 했다.

카를 교 한쪽에서 그림을 그려주는 저 화가의 모습이 내 눈에는 더없이 낭만적인 모습으로 비쳐진다.

.....

 

존 레논을 찾아서..

잠시 카를 교 밑으로 내려가 한적한 골목길을 걷는다.

이 길로 쭉 가면 존 레논 벽화로 유명한 대수도원 광장의 벽면을 볼 수 있단다.

...

좁은 골목을 지나....

커다란 물레방아가 걸려있는 작은 다리를 건너자, 정말 사방이 막혀있는 작은 광장이 나온다.

그리고 시선을 사로잡는 수많은 벽화들.....

기괴한 그림에서부터 스프레이로 휘갈겨 놓은 커다란 글귀들하며,

많은 사람들의 저마다의 목소리가 수도원 광장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Love & be Loved'

.....

'누군가를 사랑해주고 또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 되세요...'

 

........

 

'Don't let fear get in the way of your dreams...'

....

'두려움이 당신의 꿈을 가로막게 하지 마세요...'

 

....

 

열마디 말보다 몇자의 글귀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때가 많다.

어둡고 힘겨운 현실속에서도 사람들은 늘 희망과 사랑을 노래하는 존재가 아닐까...

글쎄....

벽화 앞에 서서 벽이 들려주는 속삼임에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나도 어느새 존 레논이 되 버린 것 같다. 훗

....

 

해머 아코디언에서 흘러나오는 아리랑....

블타바 강과 카를 교는 오늘따라 내 발목을 붙잡고 놔주질 않는다.

다리 위를 서성이며 흘러가는 블타바 강을 내려다 보기도 하고..

잉크를 뿌려놓은 듯이 파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을 쫓아가면서

....그저 천천히 걸었다.

....

 

시간이 좀 지났을까....

노랗게 물든 단풍을 무대삼아 연주하던 악사들도 천천히 자리를 걷고.. 

 

작은 기념품을 팔던 좌판에도 손님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

 

슬슬 저녁이나 먹으러 가야지 하고 카를 교를 거의 다 건널쯤..

 

할아버지의 해머 아코디언 소리가 애잔하게 울려퍼진다.

어제도 저렇게 앉아서 연주를 하셨는데....

그런데 아마 일년전에도 이년전에도 할아버지는 이렇게 연주를 하셨을 거다.

예전에 TV프로그램에서 저 할아버지를 소개해준 일이 있었는데 내가 알기로는 그게 꽤 오래전 일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텐데.....카를 교 위에서 아리랑을 연주해주는 할아버지라고...

아리랑을 연주해주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꽤나 알려진 할아버지다.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는데 혹시 지금 아리랑을 연주해 주실 수 있을까 하고 쭈뼛쭈뼛 다가서니

한글로 된 악기 설명서까지 보여주면서 아리랑을 연주해 주신다.

 

'아리랑...아리랑....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해지는 카를 교 위에서 듣는 아름다운 아리랑을 어찌 말해야할지...

연주가 끝나는 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저리게 하는 선율이 또 있을까....

괜시리 코끝이 저려온다.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TGI에서 저녁을..

7시 공연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 남았고...저녁은 뭘 먹을까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프라하에 오면 꼭 들린다는 TGI에 들렀다.

TGI가 가격이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지만 역시나 체코의 낮은 물가는 그런 걱정도 잊게 해준다.

아....유럽 다른 나라도 물가가 다 체코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느긋하게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며 여행할 수 있을텐데....후후

그런데 막상 메뉴판을 보니까 체코 돈으로 계산해도 그렇게 만만한 가격이 아니다.

지갑에 있는 코른 액수를 다시 확인할만큼 조금 움찔한 가격이었다. 큰일날뻔했네....

...

닭 가슴살 스테이크, 버터에 볶은 쌀, 콩깍지 볶음, 토마토.....

프라하로 온 뒤 부터는 정말 밥먹을 때마다 매번 고기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좋을 수가....매일 프라하에서 먹는 것 처럼 먹으면 진짜 살쪄서 귀국할지도 모르겠다.

 

친절하고 이쁜 금발의 종업원 아가씨도 쳐다보고 TV로 유럽축구도 보면서

느긋하게 프라하의 만찬을 즐겼다.

 

6시 30분이다.

 

Czech Collegium

화약탑 옆 The Municipal House은 연두색 지붕이 아름다운 프라하의 대표적인 공연장이다.

공연이 시작하려면 아직 40분 정도 남았다.

 

"저기 공연장은 어디로 가야되죠?"

"여기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가세요.."

"공연이 몇 시쯤 끝납니까?"

"한 시간짜리에요...."

"네..."

 

Municipal House의 아르누보홀....팜플렛에 보였던 커다란 홀은 아니고

지하에 있는 자그마한 강당같은 곳이다.

대규모 오케스트라단이 연주하는 줄 알았는데.....

뭐 그래도 이렇게 아담한 곳에서 듣는 연주도 나름대로 운치는 있으니까...

....

공연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그런지 아직까지는 한산하다.

연주회장을 스윽 둘러보고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나오려는데

어라....

방금까지 열려있던 문이 꽉 잠겨있다.

손잡이를 돌렸다가 당겼다가 안간힘을 써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헉....이게 우찌된 일이라...'

 

잠시 당황스러움에 숨을 고르고 찬찬히 사건의 전말을 유추해 보니...

내가 화장실 간 사이에 공연장에 나 혼자 달랑 남겨두고 밖에서 직원이 문을 걸어 잠궈 버린 것 같다.

별 수 있나....앉아서 기다리는 수 밖에....

....

 

그렇게 한 10분을 갇혀 있었나...

밖에서 웅성웅성 사람들 소리가 커지는걸 보니 이제 제법 사람들이 모였는가보다.

 

직원들은 공연 시작 15분 전에야 다시 문을 열어 줬다.

내심 직원들이 나를 보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고민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온 직원이 나를 보고 잠시 당황해 하는 순간

나는 "sorry~" 이 한 마디를 던지며 유유히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흐흐

...

 

관객들은 주로 평범한 중장년층들이고 젊은 사람들이 눈에 띄긴 한데 그렇게 많지는 않다.

음....동양인은 5명 정도 되는 것 같고....

사람들은 보관소에 가방이랑 코트를 맡기거나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면서 공연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린다.

 

이내 입장이 시작되고 가격별로 좌석이 나눠진다.

나는 B석....중간쯤이다.

"헬로...영어 할 줄 아니?"

"아..예...안녕하세요..."

"어디서 왔니?"

"한국에서 왔어요..."

의자에 앉아 팜플렛을 뒤적이는데 다정해 보이는 한 노부부가 옆에 앉더니 할아버지가 먼저 말을 붙인다.

 

"응 그래? 우리는 스위스에서 왔단다.."

"아 그러세요? 멋진 나라에서 오셨군요..."

"그럼 좋지...좋은 곳이야..."

"저도 한 번 가고 싶은 곳이에요..."

"그래? 어디로 가고 싶으냐?"

"루체른이나...인터라켄...뭐 그쪽이요..."

"음...거기도 아주 좋지...너무 멋진 곳이야....우리는 바젤에서 왔지. 니가 갈 때는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우리가 여기 올때는 스위스에 비가 왔었단다. 벌써 겨울이 시작된거 같더라..."

"춥죠? 여기보다 더 추울까요?"

"뭐 여기랑 비슷하지..."

"예....유럽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추운 것 같아요..."

"그래?...휴가 중이니?"

"네...유럽 여행중이에요...런던, 파리, 브뤼셀, 뮌헨을 지나서 프라하까지 왔죠.

빈으로 갔다가 스위스로 가거나 아니면 바로 이탈리아로 내려갈겁니다."

"와...재밌겠네....학생이니?"

"예.."

"전공이 뭔데?"

"생명과학이요...유전학 뭐 그런거에요..."

"오....대단한데...."

"헤헤...아니에요..."

"음악을 좋아하나보구나....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니?"

"아니요....통기타 조금 치다가....뭐 그렇죠..."

"우리 딸이 지금 학교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거든. 그런데 아직 얼마나 더 배워야 할지는 모르겠다...허허"

"오...바이올린...그거 참 배우기 어려울텐데..."

"잘 하면 한국에서 연주할 수도 있을거야...허허"

"하하...네....한국에서는 드보르작과 스메타나가 유명하죠.."

"그러냐? '신세계로 부터' 그거 좋지?"

"음...네..."

"프라하는 언제 왔니?"

"이틀 전에요.."

"우리는 프라하 성에만 5번 갔었다. 멋진 도시야..."

"예....참 아름다운 도시에요..."

....

 

할아버지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드디어 막이 오른다.

바이올린 두 대, 비올라 하나, 첼로 하나, 더블베이스 하나....

사람들의 박수소리와 함께 조용히 연주가 시작된다.

 

첫 연주는 트럼펫 솔로.....Bach의 Air

맑고 힘찬 트럼펫 소리가 정말 공기처럼 고요히 하늘 위로 날아 오르는 듯 하다.

 

'아....이게 바흐의 작품이었구나...'

.....

 

고요한 트럼펫의 공기가 다시 바닥에 내려 앉고 드보르작의 Humoresque가 연주된다.

이것도 귀에 꽤나 익은 음악이다. 교과서에서 봤던가....

...

 

뜻밖에 소프라노 독창도 있다. Gounod의 Ave Maria...

아리따운 소프라노 아가씨의 얼굴만큼이나 고운 목소리가 작은 공연장 안을 부드럽게 채워준다.

 

사람의 목소리란 역시 악기가 가지지 못한 따뜻한 체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곧이어 Tchaikovsky의 Walz와 Vivaldi의 사계중 The Winter가 이어지고

드보르작의 Largo from Symphony No.9 "From the New World"와

스메타나의 My Country - "Vltava"가 연주된다.

...

체코에서 듣는 체코 국민음악가들의 작품이라 그럴까...

스메타나 'Vltava'의 애수가 더 없이 가슴속을 파고든다.

'다라라라 라라 라~ 라라라~'

 

...

이렇게 작은 공연장에서도 이런 수준 높은 음악을 접할 수 있다는건 참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마치 산책하듯 이런 연주회를 즐기는 프라하 사람들을 보니까..

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클래식 음악이란 어려운 격식이 아니라 부담없는 생활의 일부분인 것 같다.

원래 '클래식 음악'이 여기 음악이다보니 아무래도 이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들의 문화를 쉽게 즐기고 접하는 모습은 참 보기좋고 부러운 광경이다.

 

한 시간의 정규 연주가 끝나고 사람들의 박수 소리에 앵콜 연주로 공연을 마무리 지었다.

무대는 작았지만 그만큼 오붓하고 운치있는 분위기 속에서 좋은 음악을 들어볼 수 있었다.

 

오늘 연주회는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카를 교와 작별....

공연장을 빠져나오자마자 다시 카를 교로 걸어갔다.

갑자기....너무나도 갑자기....울컥 프라하 성의 야경과 카를 교가 너무도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이제 내일이면 떠난다는 생각 때문일까...

...

 

프라하 성은 오늘도 백만불짜리 야경을 선보이며 그렇게 블타바 강을 내려다 보고 있고

카를 교도 늘 그렇듯이 거기 그 자리에 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카를 교 위의 사람들은 다 행복하다.

그리고 또 아름답다.

....

 

'난 왜 여행을 왔을까? 뭣땜에 여기까지 왔을까.....뭘 얻으려고...'

 

여행 18일째....어느덧 절반이 지났다.

집 떠난 것도 이제 아련한 일 같고....런던, 파리에서 즐거웠던 일도 꿈만 같고

지금 이렇게 카를 교 위에서 프라하 성의 야경을 보고 있는 사실도 모두 꿈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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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꿈...

프라하는 천천히...그리고 조금씩 내 마음을 뺏어 버렸다.

 

다시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