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16. 土
어제 새벽에는 캐나다 친구가 삐걱삐걱 침대소리를 내더니만
오늘 새벽에는 말 많던 그 중국 아저씨가 새벽 내도록 삐걱거리는 통에 자다가 몇 번을 깼는지 모른다.
'짜증나게 왜 하필 내 침대 위냐고.....'
밤새 어디서 놀다왔는지 '아저씨 무리들'은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들어와서는
다들 아직 술이 덜 깼는지 비몽사몽 뻗어있다.
음....아무튼
뮌헨에서의 마지막 날이자 독일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이제 내일이면 프라하.....어느덧 여행도 중반기에 다다랐다.
'에라~체크아웃하기 전에 샤워나 오래 해서 본전이나 뽑아야지....ㅎㅎ'
유스에 배낭을 맞겨두고 역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빵 하나에 소시지 하나....간단해서 그런지 독일 사람들이 꽤 많이 사 먹는다.
소시지가 좀 짭짤해도 통통하니 먹을만 하다. 원래 독일 소시지가 유명하니깐 뭐....
그래도 좀 양이 적긴 하다....빵까지 먹어도 좀 허전하네....
나중에 점심은 푸짐한걸로 먹어줘야겠다.
자...그럼 S-bahn을 타고 '독일 박물관'으로 가 볼까나....
'파리 지하철 문은 손잡이를 젖혀야 열린다....'
여행책자에 보면 하나같이 친절하게 이런 안내문구가 있다.
그런데.....왜 독일의 S-bahn에 관해서는 그런 안내문이 눈씻고 찾아봐도 없을까?
국철 개념인 독일 S-bahn도 버튼을 눌러야 출입문이 열린다.
파리 지하철을 타면서 '파리 사람들 참 독특하다'라고 생각했었는데
파리처럼 젖히는 손잡이는 아니지만 버튼을 누르는건 여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마치 파리 지하철만 그런 것처럼 책에 나와 있냐고.....
파리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나의 파리 예찬론에 흠집이 나는 사실이다.....후후
Deutsches Museum
파리에 '루브르'가 있다면 뮌헨에는 '독일 박물관'이 있다.
'이공계의 루브르 박물관'이라 불리는 독일 박물관은 과학 기술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유럽의 다른 미술관처럼 방대한 그 크기로도 유명하다.
크기로 보면 비교가 안 되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대전에 있는 '국립중앙과학관'이라고 할 수 있다.
S-bahn에서 내려 제법 걸어가면 약간 투박해보이는 건물들 사이로 박물관 입구가 드러나는데
그동안 봐 온 화사한 미술관 입구와는 아무래도 조금 대조적인 느낌이다.
우리나라도 그렇듯이 여기도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과 책가방을 멘 중고생들이 눈에 많이 띈다.
애들도 돌아다니는게 바닥에 종이 조각도 흩어져 있고 분위기는 좀 어수선한 것 같다.
총 8층 규모에 토목, 자동차, 통신, 우주, 약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 기술 분야를 다루고 있다.
....
토목과 건축기술을 다루고 있는 1층 전시실에는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정교한 미니어처를 만들어 전시해두고 있는데 특히 교량에 대한 자료가 많이 남아 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긴 현수교 다리가 어떻게 강풍에 견딜 수 있는지....
아치형의 구조물이 가져다 주는 안정성이라든지.....
미니어처 자체가 아주 정교해서 그것만으로도 볼거리가 아주 많다.
발전기나 모터, 증기기관 같은 경우는 솔직히 전시실을 가득 채우는 커다란 덩치에 비해 별로 흥미롭진 않다.
중고등학교다닐 때도 물리시간과 공업시간에 모터의 원리라든가 전자기장...
아니면 발전기와 모터의 차이점, 내연기관의 원리같은 건 영 재미가 없었는데....쩝
대신 해양전시실에 있는 커다란 선박 모형은 여전히 동심을 자극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어린시절에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이런 커다란 배나 비행기를 보면 막 타고 싶고 만지고 싶고....
저건 왜 물에 뜰까 저 큰게 어째서 하늘을 날 수 있을까...하고 무척 궁금했었다.
......
대전에 있는 국립중앙과학관에 갔을 때가 아마 초등학교 4학년때였을 것 같다.
거기서 본 공룡모형과 큰 선박 모형, 비행기, 우주선.....모든게 어찌나 신기하던지.
어린 마음에 참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비행기를 보면 파일럿이 되고 싶고....큰 배를 보면 선장도 되고 싶고....
엄청난 무언가를 발견해서 인류를 구원하는 과학자도 되고 싶었다.
.........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자연과학이란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호기심과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도전정신의 힘으로 발전되는 가장 가치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이런 과학기술의 산물을 대하고 연구에 매진하는 사람을 볼 때면 뭔가 전율이 느껴진다.
'정말 멋있구나' 하고 말이다.
나 역시 자연과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그 전율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지만
과학이란 역시나 어렵다..........후후
아직은 잘 모르겠다........
...........
...........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날던 감격적인 순간을 지나 계속 위층으로 올라간다.
여기도 역시나 너무 방대하다.....힘드네....
역학, 광학, 핵물리 전시실을 지나서
계속 인쇄술, 직물, 환경 전시실을 구경했다.
.......
그래도 역시나 전공이랍시고 생물이나 의약학 쪽 전시가 제일 관심이 가지만
아무래도 일반인을 상대로 해뒀기 때문에 신선한 느낌은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박물관내에서 드물게 현재의 가치와 미래의 전망을 밝히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AIDS 증상과 예방, 치료에 관한 다양한 부연설명과
생명공학, 미래의학의 전망을 잘 드러내고 있어 그나마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
그런데 전체적으로 기대했던거와 달리 썩 그렇게 재밌는 곳 같지는 않다.
워낙 쟁쟁한 미술관을 많이 보고 와서 그런가......
그래도 이공계학생인데 여기오면 미술관보다는 아는 것도 많을 거고
관심있는 내용도 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생각과는 달리 다분히 지루한 면이 있다.
........
그건 다리가 아프다든가 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라
전시 수준이 대학생보다는 대부분 중학생 이하의 학생들에게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내용을 봤지만 초등학교 4학년때 내가 받았던 그 충격파를 다시 느끼기에는
지금의 내 머릿속에 이런저런 잡동사니가 너무 많아져 버린 것 같다.
..........
아는게 많아진건지 호기심이 줄어든건지.....
배도 고프고 해서 생각보다 재미가 없는 박물관을 뒤로하고 천천히 S-bahn을 타러 걸어갔다.
한 2시간 정도 봤나?....이제 무슨 'ㅁㅁ관'은 당분간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것 같다.
.......
고인 듯 유유히 흐르는 강위에 서서 잠시 생각에 잠김.
.......
.....
마리엔 광장
"@#$^&~~~~$%^^~~~"
갑자기 마리엔 광장 지하 역사를 울리는 우렁찬 노랫소리.
뭔가 싶어 돌아보니까 FC 바이에른 뮌헨 팬들이 구름떼처럼 몰려 다니며 응원가를 부르고 있다.
오늘 바이에른 뮌헨 홈경기가 있는 날인가보다.
삼삼오오 어깨동무하고 막 뛰어 다니기도 하고....유니폼을 흔드는가 하면
연신 큰 소리로 고함치듯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다.
목소리도 크고 또 다같이 중저음이라 노랫소리에 독일어의 그 딱딱한 발음이 뭍어나니까 조금 무섭기까지 하다.
국가대표 평가전도 아닌 클럽 축구에 이처럼 열광적인 호응을 보내는걸 보면
유럽 사람들 축구에 대한 열기 하나는 알아줘야 겠다.
그나저나 점심은 뭘로 먹을까?
이상하게 오늘따라 광장 주변에 마땅한 먹을거리가 눈에 안 띄네...
.........
마리엔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중국식당.
런던 '왕케이'의 아픔이 있었지만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입구는 조그만해도 지하로 내려가니까 홀이 꽤나 크다....사람들도 많고....
'duke with curry...'
메뉴가 너무 많아서 괜히 엉뚱한거 주문했다가 이상한 음식나올까봐 아는 단어가 들어 있는 걸로 주문했다.
'카레 소스를 곁들인 오리고기....'
달착지근한 카레 소스에 바삭하게 튀긴 오리고기가 느끼하지도 않고 맛이 괜찮았다.
전통 중국요리는 아닌 것 같고.....퓨전음식 정도 되는가보다.
.........
여기도 주인 아저씨는 중국사람인데 아주머니나 서빙하는 사람들은 동남아계인 듯 하다.
테이블이 거의 꽉 들어찰 정도로 장사가 아주 잘 되는 집이다.
그리고....아까부터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서빙하는 아가씨....후후
동양계임은 분명한데 도무지 국적을 모르겠다.
중국계는 아닌 것 같고....태국이나 베트남계 사람인 것 같다.
동양인이지만 눈도 크고 아주 이국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다.
목소리도 예쁘고.....헤헤
.........
중국집이 좋은 이유는 밥이 나온다는 점도 있지만 따뜻한 차를 준다는 점이다.
빵이나 버터가 아무리 입에 맞는다고 할지라도
따뜻한 녹차 한 잔이 가져다 주는 깔끔하고 개운한 맛은 따라올 수 없다.
따뜻한 차로 몸도 느긋해지고.....잠시 분수대 옆에 앉아 해바라기를 했다.
유럽의 거리는 뭐랄까.....고풍스런 분위기가 참 좋은 것 같다.
아스팔트나 시멘트 대신에 돌이 깔려 있는 광장과 지은지 두 세기는 지난 듯한 고풍스런 건물들이
서로 어우러져 멋드러진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냥 이렇게 계단에 걸터 앉아 있기만 해도 참 좋다.
...
'후우......좋다'
슈바빙
다시 U-bahn을 타고 내린 곳은 뮌헨에서 또 유명한 '슈바빙' 일대.
그런데 도무지 책에 나와있는 안내대로 따라갈 수가 없다.
'출입구를 잘 못 나왔나?'
........
그러나 무슨 걱정이 있으리.....
그냥 발길 닿는대로 걷다보면 그게 나만의 추억이 되는 거지뭐....
꼭 책에 나와 있는 그곳을 찾아가 볼 필요는 없다.
여행 중반....
이제는 서서히 책에서 벗어나고 있다.
.....
길거리에서 체스하는 동네 어르신들....
바닥에 그려진 넓은 체스판 위로 커다란 말들을 옮겨가며 아주 열심이다.
재밌겠어....
.....
독일은 신호등이 참 낮은곳에 있다.
음....내 어깨 높이쯤 되려나....그리고 대부분 세로형 신호등이다.
런던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신호등은 눈높이가 좀 높은게 아닌지 모르겠다.
여기처럼 보행자 눈높이에 딱 맞게 만들어 놓으면 그게 더 효과적일 것 같은데.....
그리고 유럽의 주택가에는 가로등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처럼 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전등을 설치해 놓는 형식도 물론 있지만 주택가에서는 길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는 집들을 긴 와이어로 연결해서 그 중앙에 전등부분만 매달아 놓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는 신호등도 그런식으로 매달아 놓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기둥이 없어 시야가 시원스럽게 확보가 되니까 거리 풍경이 한결 단정해지는 것 같다.
전선도 모두 지중화를 시켰는지 전봇대도 보이지 않고......
......
슈퍼에 들러 과자도 사먹고 이리저리 둘러보니까 시간이 제법 흘렀다.
독일 거리는 깔끔하긴 한데.....런던이나 파리에 비해 좀 심심한 면이 없지 않다....후후
체코 코른 환전
5시....
중앙역으로 돌아와 역 구내에 있는 환전소에서 코른 환전을 했다.
내일 아침 프라하에 떨어지면 당장 코른이 필요할테니까 여기서 조금 바꿔가는게 훨씬 수월하다.
환율이 1유로에 29.XX코른...이만하면 썩 나쁜 환율은 아닌 것 같은데 커미션이 너무 크다.
'쩝....그래도 할 수 없지'
.....
체코는 물가가 싸서 배낭여행객들에게는 천국인 곳이다.
서유럽 여느 나라는 레스토랑 한 번 가려면 하루 숙박비가 그대로 날아가지만
체코에서는 10유로도 채 안되는 비용으로 레스토랑 풀 코스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체코가면 몸보신 좀 해야겠다. 기대하시라....
.....
은행 창구에 앉아서 지갑을 꺼내들고 잠시 돈 계산 좀 했다.
16일 동안 쓴 돈이 벌써 꽤 된다.
객지에 나와서 돈을 안 쓸 수야 없겠지만 역시나 지갑이 얇아지면 좀 아깝다.
하늘에서 꼬박꼬박 내 통장계좌로 돈이 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아껴쓸 자신 있는데....
짠돌이.....후후
유스에서 시간 보내기
이렇게 할 일 없기는 처음이다.
열차 시간은 밤 11시 8분.....그때까지 뭐하지?
............
유스로 돌아와 다시 프런트 의자에 죽치고 앉아 있는데 참 심심하다.
일기도 쓰고 책도 보고 해도 시간이 참 더디게 흐른다.
오늘 저녁 프라하로 넘어가는 다른 한국사람들이 꽤 많다.
음.....한 10명....
다들 테이블에 비스듬히 기대어 이런저런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다.
실상 유럽에 가면 거리마다 한국사람이 널렸다고 들었는데
비수기라 그런지 거리에서 한국 배낭여행객을 만난적은 별로 없었다.
뭐 런던이나 파리에서는 숙소에 가면 다들 한국사람이긴 했지만
파리를 떠난 이후로는 계속 유스를 전전해서 그런지 우리나라사람을 거의 못만났었다.
아무래도 뮌헨이 프라하로 넘어가는 길목이다보니 다들 여기서 한 번 모였다가 넘어가는 듯 하다.
.......
왠 독일 아가씨 두 명이 우리가 있는 테이블에 와 앉더니 담배를 뻐끔뻐끔 피운다.
얘기하는 내내 계속 줄담배를 물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담배 많이 핀다고 걱정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유럽 사람들이 훨씬 많이 피는 것 같다.
특히 여성 흡연자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많아 보인다.
레스토랑이나 거리에서나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는 아가씨나 아주머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문화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여자들이 길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며 걸어갈 정도는 아니다.
이를 두고 '남자는 아무 망설임 없이 피고 다니는데 여자들은 왜 눈치봐가며 담배를 피워야 하냐'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여자분들도 있지만 설사 이 문제가 남녀차별이라고 비판을 받을 지언정
여자들의 흡연은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개인 기호의 문제를 떠나서 생물학적으로 본인이나 후세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남녀차별의 문제는 그 다음 문제고....
.......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보수주의자인가? 후후
옆에 앉은 독일 아가씨들이 하도 줄담배를 피길래 걱정스런 마음에 그냥 한 번 생각해 봤다.
......
혼자 생각하고 놀기 두 번째 주제....
'빨간 머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테이블에 기대서 창밖을 바라보니까 왠 빨간머리 아가씨가 지나간다.
'.....저거 염색일까?....염색머리는 아닌 것 같은데......자연산인가?....어쩜 저렇게 빨갛지....?'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든다.
저번에 벨기에에서도 저렇게 빨간머리를 한 사람을 봤다. 그사람도 염색머리는 아니었다.
'그럼 원래 빨간 머리 종족이 있단 말인가?'
만화도 있지 않은가.......'빨간 머리 앤'이고...
유럽 사람들 중에서 진짜 빨간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어딘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원래 머리색깔이 빨간색인 사람이 있는건 확실하다.
그 사람들은 자기의 머리 색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만족 할까? 후후
요즘 다들 돈 주고 염색하는 판에 원래 빨간색이면 개성있고 참 좋겠다. 흔한 머리색도 아니고...
아까 줄담배 피던 독일 아가씨들은 긴 금발이었는데 마치 염색한 듯이 머리카락 색이 이뻤다.
옆에 앉아 있던 우리나라 여자분들이 모두 감탄을 하며 쳐다 봤으니까....
저사람들은 우리의 까만 머리색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우리가 금발을 따라하고 싶은 것 처럼 저사람들도 까만 머리를 하고 싶을까?
......
어느덧 저녁...
'기무치 라멘'이 먹고 싶어서 브로이 하우스 앞 그 일식집에 다시 찾아갔는데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발딛을 틈이 없다. 문 밖으로 길 게 줄까지 서있다.
'허....참....'
다시 발길을 돌려 오다가 노이하우저 거리 안쪽에 자리잡은 퓨전 일식집에 들렀다.
여기도 테이블에 사람이 꽉 들어차 있다.
친구와 겨우 비집고 들어가 '소바' 하나를 시켰는데
이거 완전히 고사리 삶은 간장 국물에 두부 조각이랑 국수 담궈놓은 거다.
실망.....이럴 수가.....
그냥 역 안에서 소시지랑 빵이나 사 먹을걸 그랬다.
가끔 어쩔 수 없이 일식집에 들르긴 하지만 그때마다 북적거리는 일식집을 보면
음식을 먹으면서도 괜히 놀부 심술에 배가 아프다.
한식도 일식보다 못한게 없는데 어째서 이런 변변치 않은 일식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끙....'
벨기에에서 독일로 넘어온 이후 일정이 약간 허공에 뜬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이델베르크도 반나절만에 훌쩍 보고 뮌헨으로 넘어와 버렸고
뮌헨에서도 퓌센 다녀온 것 말고는 별로 특별한 일이 없었던 것 같다.
하루 정도는 일정을 단축시킬 수도 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조금 아쉽다.
원래 가보고 싶었던 튀빙엔에 무리를 해서라도 갔어야 하는건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
여행을 하다보면 일정이 꼭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는건 아니다.
가고싶은 곳을 못가는 경우도 생기고...숙소 때문에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괜한 곳에서 시간을 버리는 것도 일쑤인게 여행인 것 같다.
여행이란 다 그런거다.....
프라하 야간열차
뮌헨 중앙역의 싸늘한 밤공기를 가르며 드디어 프라하행 야간열차가 플랫폼에 모습을 드러냈다.
출발 20분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플랫폼에 서 있던 역무원에게 몇 번이고 확인을 한다.
"이거 프라하 가는 야간 열차 맞죠?"
"예, 저기 맨 앞이 쿠셋입니다..."
하얀 입김을 내 뿜으며 긴 열차를 따라 쿠셋칸으로 걸어갔다.
왠 열차가 이리 긴지.....
'Munchen Hbf - Nurnberg - Cheb - Praha hl.n.'
약간 어두침침한 좁은 통로 한 쪽으로 쿠셋들이 연이어 붙어있다.
차장 아저씨가 직접 티켓을 걷어가고 쿠셋 칸을 안내해 준다.
쿠셋은 차량 한 대마다 차장이 한 명씩 있기 때문에 비교적 야간이동이 안전한 편이다.
일반 컴파트먼트로 야간이동을 할 경우 소매치기같은 좀도둑을 늘 걱정해야 하지만
쿠셋은 그나마 차장이 있어 안심할 수 있다. 게다가 침대에 누워서 자기 때문에 훨씬 덜 피곤하고....
6인실 쿠셋이라 침대가 3단으로 붙어 있다. 3층은 꽤 높네....
침대랑 베개 시트까지 있고 생각보다 아늑하고 깨끗하다.
파리에 있을 때 어떤 분은 쿠셋타고 오는데 흑인들 몸냄새 때문에 잠 한 숨 못잤다고 하는데
다행히 우리 칸에는 우리 동행들 밖에 없고 다른 칸도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많기도 하지......
.....
침대를 눕히고 시트깔고 누우니까 조금 좁긴 한데 그런대로 아늑하니 분위기 좋다.
참....살다보니 별 걸 다 타본다....
......
곧 열차가 출발하고 뮌헨의 불빛이 멀어져간다.
이렇게 또 독일을 떠나게 됐다....벌써 국경을 세 번이나 넘었네...
'내일이면 프라하다.'
조명이 꺼지고 침대에 누워있자니 차창을 번쩍이며 지나가는 불빛이 영 거슬린다.
다시 몸을 돌려 반대로 누워서 커튼으로 창문을 가리니까 한결 낫다.
흔들거리는 야간 쿠셋에 누워 어둠 속을 달리는 이 기분도 꽤나 괜찮은 것 같다.
낭만적이야......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