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旅行/유럽배낭여행 | 2004

유럽배낭여행 [런던 - 파리]

제이우드 || 2023. 6. 14. 17:46

2004.10. 6. 水  

기차에 타자마자 바로 잠에 빠져들었던 모양이다.

곁눈을 살짝 떠보니 기차는 지평선이 그어져 있는 넓은 들판을 달리고 있다.

'어....해저터널 지났나? 벌써 프랑스야?...'

내가 잠든 사이 유로스타는 도버해협 해저터널을 지나 프랑스 북부의 넓은 평야를 달리고 있었다.

드넓은 프랑스의 평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직도 무거운 눈꺼풀을 껌뻑거렸다.

 

파리 입성

빠리에 오세요.

아! 꿈과 낭만의 도시, 빠리에 오세요.

내가 갈 수 없으니 당신이 오세요.

나를 찾지 않아도 돼요. 아니, 찾지 마세요.

                                          -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서장 첫머리 -

9시 23분 파리 북역. 런던과의 시차 한 시간.

싸늘한 공기를 가르며 홍세화의 망명지 파리에 발을 디뎠다.

프랑스 공중전화기와 거의 30분이 넘는 짜증나는 다툼끝에 우리 일행중 한명이 겨우 숙소와 연락이 닿았다.

여행 안내책에 적힌 그대로 온통 카드식 전화밖에 없는 프랑스의 공중전화 덕분에

전화카드 사려고 이곳저곳 들락거리고, 전화 번호 두 번 세 번 어렵사리 눌러가며 우왕좌왕해야 했다.

유럽의 공중전화기는 아직 낯설기만 하다.

 

남아있던 41파운드를 유로로 환전했다.

원래 조금 적게 가져가서 말끔히 쓰는게 제일 좋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파운드가 좀 많이 남아 버렸다.

41파운드를 환전하니 52.08유로....그중에서 6.50유로를 수수료로 가져가 버린다.

'이런 날 강도 같으니...'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배도 고파서 그런지 어깨에 둘러맨 배낭의 무게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진다.

 

크로와상과 초코레타

역안에 있는 작은 카페테리아.

원래 프랑스하면 또 맛있는게 많기로 유명한 동네여서 그런지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빵들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쓰윽 한 번 훑어보고 그래도 익숙한 크로와상을 골랐다.

"봉 쥬르~"

"봉 쥬르~"

"음...크로와상 하나랑....저기 핫 초코요..."

"핫 초코? 초코레타?"

"예예, 초코레타요..."

 

몇시간 만에 사람들 말이 영어에서 불어로 바뀐 재밌는 현실을 실감하며

파리에서의 소박한 첫 식사를 즐겼다.

'역시....프랑스 빵은 다르네...'

 

Metro

13 Line - Plaisance까지 가야하는데 지하철 타는게 생각보다 난해하다.

매표창구도 잘 안보이고 일단 모든게 불어로 바뀌니까 좀 당황스럽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 불어 좀 배운 덕택에 대충 읽고 감은 잡겠는데, 상대방이 길 게 뭐라고 말하니까 도저히 못알아듣겠다.

다소 수다스런 매표소 직원의 불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설명을 듣고 한참만에 '까르네' 10장과 파리 지하철 지도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메르씨~"

 

특이하게 생긴 개찰구를 지나 '그 유명한' 파리 지하철을 만나러 갔다.

지하철 문에는 진짜 손잡이가 달려있다. 내리는 사람이든 타는 사람이든 저걸 위로 올려야 문이 열린다.

언제나 저절로 열리는 지하철문만 봐온 터라 이 프랑스식 지하철문은 정말 특이한 것 같다.

필요한 사람이 있을 때만 열고 닫는게 프랑스식 합리성을 보여주는 건지도...

 

우리나라와 영국의 지하철과는 좌석이 2개씩 마주보게 놓여 있는 파리 지하철.

앞에서 "중국인?"이라고 묻는 한 아저씨의 물음에 "농~, 꼬레앙"으로 시작한 대화는

'서울'을 거쳐 '축구이야기'로 번져갔다.

익히 들어온 악명 높은 평판과는 달리 파리 지하철은 생각보다 깨끗한 것 같다.

다만 출처를 알 수 없는 화장실 냄새와, 끊임없이 코를 자극하는 탁한 공기만 빼면 말이다...

 

숙소는 단정한 주택가에 있었다.

영국보다는 확실히 하늘이 맑아 모든게 산뜻하고 온화해 보인다.

일단 짐을 풀고 잠시 휴식.

 

샹젤리제

원래는 한 숨 잤다가 오후 늦게나 나갈까 했는데, 점심도 먹어야 하고

영국에서 같이 넘어온 형이 파리에 아는 누나가 있다길래 다 같이 엉겁결에 샹젤리제로 향했다.

또 다시 그리 쾌적하지 못한 지하철을 타고 Champs-Elysees Clemenceau로..

박찬욱감독의 '올드보이'가 자랑스럽게 상영되고 있는 샹젤리제 거리는

온갖 종류의 매장과 카페에, 관광객과 쇼핑객들이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큰 거리와 중앙 도로의 폭이 런던과는 달리 넓고 시원시원하게 뚫려있어서

그 거리를 다 메우고 있는 사람과 차들이 더 혼잡해 보인다.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정말 많다.

 

잠시 샹젤리제 거리를 거닐며 음반 매장이랑 옷 가게를 둘러보다가

일단 점심 먹으러 오늘 우리의 일일 가이드 역할을 맡은 이쁜 누나를 따라 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외국에서 레스토랑에 와보기는 처음인데....사람들이 꽉 찬걸로 봐서 꽤 유명한 레스토랑인 것 같다.

일단은 긴장을 풀고 잠시 기다렸다가 웨이터의 안내를 따라 우아하게 테이블에 가 앉았다.

앉기는 앉았는데....

메뉴판을 펼쳐보는 순간, 이름도 처음들어보고 뭔지도 모르는 수많은 음식들이 내 눈앞을 하얗게 만든다.

'헐....뭔지 알아야 주문을 하지....이런...'

누나의 추천과 도움으로 우리는 선택의 여지 없이 12.80유로짜리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통감자와 잘 구운 고기를 소스에다 찍어 먹는데 맛은 뭐 괜찮은 것 같은데 12.80유로라....

여행 5일 하면서 밥값으로 이렇게 큰 돈은 내 본적이 없는데....타격이 클 것 같다.

아무튼 졸지에 스테이크를 주문한 덕분으로, 영어 회화시간에 단골로 등장하는 'well-done, please'는 써먹을 수 있었다.

 

개선문

파리의 상징 개선문이 바라다 보이는 샹젤리제 거리의 횡단보도 한 가운데...

곧게 쭉 뻗어있는 도로 위로 차들이 한 가득....런던보다 차량이 훨씬 더 많아 보인다.

오늘 날씨가 너무 맑아서 그런지 도로 끝이 점 하나로 모이는 저 멀리까지 또렷이 눈에 들어온다.

 

햇살이 눈부시다. 

'파리는 늘 공사 중'이란 말을 증명이나 하듯 개선문 상단 한쪽이 철망에 가려져 있다.

보수공사를 하는 모양인데 덕분에 사진이 별로 이쁘게 나올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사람들은 개선문을 뒤로 두고 열심히 사진찍기에 바쁘다.

 

지하도를 통해서 개선문 바로 아래로 가면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반듯이 뻗은 도로들을 볼 수 있다.

이 개선문을 줌심으로 파리의 도로망이 사방으로 뻗어 있는데, 시원스럽게 뚫린 그 모습이 인상적이다.

원래 나폴레옹 군대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개선문은

그 모양이 아름답다기 보다는 거대한 규모로 사람들을 압도하는 것 같다.

기둥 하나의 크기가 그저 '거대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만큼 크고 웅장했다.

2차대전때 히틀러가 파리를 점령했을 당시 독일군이 이 밑으로 행진했었다고 한다.

역시나 프랑스가 다시 파리를 수복했을 때도 이 개선문 밑으로 행진했었다.

그만큼 개선문은 단순한 기념비이기 이전에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을 나타내는 거대한 상징인 것 같이다.

 

개선문 한가운데에는 1차대전때 전사한 무명용사들을 기리는 무덤이 조용히 자리잡고 있다.

 

개선문에서 다시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콩코드광장으로 걸었다.

거리는 꽤 있어 보이지만 이렇게 맑은 햇살아래에서 파리를 누빈다는 것은 멋진일이지..

다만 새벽잠을 설쳐서 그런지 좀 피곤하다.

 

화려한 매장을 지나 계속 걷다보면 분수가 있는 이쁜 공원과 낙엽이 떨어진 멋진 가로수 길을 볼 수 있다.

분수앞 벤치에 앉아 잠시 피곤한 다리를 쉬게했다.

공원이라기 보다는 작은 정원같은 곳인데 정말 지나가다가 한번쯤 앉아 쉬고 싶은 곳이다.

'야...오늘 날씨 너무 좋다....하늘 좀 봐....'

동네 애들은 길거리서 공차며 뛰어다니고...

사람들은 유유히 가로수길을 걸어다닌다...

여기도 낙엽이 많이 떨어져 있는걸 보니 가을이 꽤 깊었나 보다.

............

'프티팔레'를 지나 저 멀리 뾰족한 오벨리스크가 서있는 콩코드 광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콩코드 광장

우뚝솟은 오벨리스크가 한눈에 들어오는 콩코드광장은

루이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장소로 유명하다. 프랑스 혁명의 성지라고 해도 되려나...

이집트에서 기증받았다는....뺏어온건지도 모르는....오벨리스크도 광장 한쪽에 혁명의 장소를 빛내고 있다.

그때의 그 폭발력과 자유의식 그리고 자긍심이 지금의 강대국 프랑스를 있게하는 원동력이 아닌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던 프랑스 왕이 민중들에 의해 처형되다...'

혁명. 참 대단한 사건 아닌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인데, 당시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이었을까.

 

나폴레옹 군대가 전유럽을 휩쓸며 혁명의 정신을 휘날리던게 고작 19세기 초의 일이다.

그 뒤 불과 200년만에 역사는 엄청난 가속도를 만들어 내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역사는....그 사람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멋진 가이드를 해준 누나와 작별하고 우리 일행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숙소를 향했다.

다들 아무래도 좀 피곤해 보인다. 나만 피곤한가?

일단 들어가서 정말 눈 잠깐 붙이고 쉬다가 저녁에 야경이나 보러 다시 나와야겠다.

여행은 '노동'인 것 같다.

 

에펠탑의 야경

숙소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어슬렁 기어나와 지하철을 탔다.

적당히 사람들이 탄 지하철은 센강 다리 위를 지나 어둠이 깔린 파리를 보여줬다. 

까만 하늘 밑으로 오렌지빛으로 빛나는 파리의 거리들이 내려다 보인다.

지하철안에 들려오는 한 할아버지의 귀에 익은 트럼펫 연주를 들으며 턱을 괴고 조용히 파리의 저녁을 감상했다.

마치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하철에서 내려 '사이요 궁' 광장에 들어서자 환상적인 에펠탑의 야경이 드러난다.

노란 조명을 켜고 우뚝 솟아있는 거대하면서도 부드러운 그 모습에

'와아~'하는 주변 사람들의 감탄사와 함께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나온다.

에펠탑의 야경....

정말 이쁘다....이쁘다는 말 밖에 못하겠다.

 

매시 정각에 하는 번쩍이는 '사이키 조명쇼'를 보고 광장에 쭈그리고 앉아 에펠탑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카메라가 좋으면 이 멋진 광경을 그대로 담아가겠는데, 내 고물 카메라로는 한계가 있으니

열심히 기억속에 각인시킬 요량으로 한참을 바라봤다.

..............

 

두 개의 줄 양끝에 작은 횃불을 달아 돌리면서 불춤을 추는 한 아가씨가 있다.

노랗게 그어지는 횃불의 궤적과 더불어 그 불빛에 반사되는 아가씨의 아름다운 얼굴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윽한 표정으로 노란 궤적을 그리는 동작 하나하나가 부드럽고 은은하다.

 

다정한 프랑스의 연인들과 그리고 불춤을 추는 아가씨와 함께 멋진 에펠탑의 야경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파리의 밤을 느꼈다.

 

'빠리에 오세요.

아! 꿈과 낭만의 도시, 빠리에 오세요....'

............

 

밤의 파리

개선문을 바라보며 저녁 샹젤리제 거리를 걷는다.

그 유명한 샹젤리제의 야경 속을 거닐며 파리를 거닐고 있다.

무수히 지나가는 차들의 불빛...

요란하게 번쩍이는 네온싸인은 없지만, 그래도 환하게 불을 밝힌 거리....

익숙하다....그 어딘가와....

그렇지만 너무나 다르다....여기는 다른 곳이다.....여기는 파리.....

밤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이방인에게는 참 센티멘탈한 일이다. 여러모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은 한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