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 감독의 2000년 작품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꽃같은 시절'이라는 이 영화 제목의 뜻을 오늘에야 처음 알았다.
워낙 유명세를 탔던 영화라 너무 기대해서 그런지 생각만큼 짠한 느낌은 없지만, 좋은 영화인건 분명한 것 같다.
벌써 20년이나 된 영화이고 남들 다 보고나서 뒤늦게 '뒷북 감상'을 늘어놓으면 식상하기만 할 뿐,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 홍콩영화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향수에 대해 몇자 끄적거려 봐야겠다.
홍콩 느와르가 전성이던 80년대 시절은 아직 철없던 꼬맹이였던 때라
주윤발 아저씨가 썬그라스 끼고 쌍권총을 난사하던 장면에 별로 감흥이 없었다.
주윤발 아저씨가 '사랑해요 밀키스~'를 외치던 때가 그때였는지 모르겠다.
사실 홍콩 액션에 열광하던 팬의 입장은 아니고
드라마나 로맨스 장르의 홍콩영화를 좀 더 좋아했었다.
국내 영화는 이렇다할 흥행 작품도 없고, 일본 영화는 영화관에서 접하기가 힘들었던 90년대에
홍콩영화는 도회적이고 세련되고 이국적이면서도 정서적으로 헐리우드보다 훨씬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영화였다.
특히나 홍콩 멜로나 드라마는 당시 국내 어떤 영화보다도 심리 표현이 섬세하고 영상미도 탁월했던 것 같다.
왕가위나 이안 감독의 홍콩을 배경으로한 홍콩 사람들의 이야기는 뭐랄까
우리나라 영화나 헐리우드 영화와 다른 색깔의 필름으로 찍은 것마냥 홍콩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화면 한가득 홍콩의 좁은 골목, 사람들의 수다, 음식이 쏟아지고
우리의 주인공은 언제나 다소 쓸쓸하고 고독한듯 살아간다.
맞다. 홍콩 영화의 주인공들은 아주 평범해 보이면서도 다들 어딘가 나약하고,
행복해 하면서도 가슴한켠에 외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더 연민이 갔던 극중의 인물들.
요즘도 영화를 보면 드라마 장르를 즐겨 보는 편인데, 이제는 우리나라 영화도 좋은 작품이 많고 일본 영화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선택의 폭이 넓어져 행복하긴 한데, 영화마다 주는 느낌은 조금씩 다 다른것 같다.
뭐랄까 우리나라 영화는 땀에 젖은 런닝셔츠처럼 진득한 느낌이고,
일본 영화는 예쁘게 접어놓은 손수건마냥 이쁘장하다.
너무나 적나라해서 가슴이 먹먹한게 우리나라 드라마이고,
예쁜 초콜렛 포장지처럼 얇고 바스락 거리는 느낌이 일본 드라마 같다.
철지난 영화지만 요즘 부쩍 홍콩영화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