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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2003.6.14]

제이우드 || 2023. 6. 2. 12:25

 [03. 6. 14]

선유도라는 곳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어디서 들었지만 내가 그냥 가볍게

흘렸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섬이라는 곳은 숙명적으로 사람들에게 쉽게 제 존재를 들어내지 않는 것 같다.

섬....

그래서 섬은 더 매력적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섬을 찾는다.

일상의 괴로움으로부터 저 멀리 달아나고 싶을 때, 복잡한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지고 싶을 때...

사람들은 섬의 손짓에 홀려 버리는 듯 하다.

 

p.m. 12:30

비린 바다냄새가 가득한 군산에 도착했다. 대전에서 전주를 거쳐 제법 먼 거리를 달려와서인지

항구도시 특유의 비린내와 스산함이 더 야릇하게 느껴졌다. 날씨도 약간 흐렸고.......

군산은 일제시대 때 번성한 항구도시지만 지금은 거의 정체된 도시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 분위기도 좀 가라앉은 듯 보였고 항구도 그렇게 활기차 보이진 않았다.

근래 화두가 되는 새만금 간척사업이 여기서 이뤄진다는데 그 여파가 어떻게 될진 두고봐야 알 일이다.

 

 

낡은 선착장에 녹슨 화물선 암색의 바다.....
죽은 듯 보이는 항구의 모습속에서 그래도 활기차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은 서로 어색해 보이는 이유는 비단 나 뿐인지 모르겠다.
글쎄...항구라는 특수한 공간의 분위기는 나에겐 늘 어색하기만 하다.....

 

p.m. 1:30

 

군산항은 내항과 외항이 있단다.
외항은 국외선이랑 큰 배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규모가 크다는데

국내선 터미널은 항구 외곽 구석진 곳에 이렇게 조그맣게 서있다. 
여객터미널이라는 곳을 처음 와봐서 그런지 솔직히 첨에 크기가 너무 작아 적잖이 놀랬다.
다른 곳도 이렇게 작은지?...

 

 

만약에 일어날지 모를 해상사고와 해상범죄를 예방하기위해 승선권에 이름, 주민번호, 연락처를 적는 란이 있다.
그냥 차표처럼 사서 내는게 아니고 경찰과 관계자들이 한명 한명 기재여부를 확인하고 탑승시킨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그런지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다.
물론 다른사람들은 전혀 걱정할 게 없다는 표정이고......후후

 

p.m. 2:00

 

선유도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여객선은 많이 타면 대략 200명 정도 탈 수 있을만큼 제법 큰 배였다. 화장실도 있고 TV도 있고
갑판 뒤에서는 커피랑 라면도 팔고....
창문이 의자보다 높아 실내에서는 바깥을 못보는게 조금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배는 근사했다.

 

갑판에 나가 뱃머리에 부서지는 하얀 물거품을 뺨에 맞으며 점점이 박힌 섬들과 넓은 바다를 보고 있으면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지루하진 않다. 서해라 파도도 약해 바다 구경하기엔 그만이고

생각보다 배가 무척빨라 얼굴을 때리는 바다바람이 너무 시원했다.

 

p.m. 3:30

 

그렇게 바다를 가로질러 한참 가면 작은 섬들이 마술처럼 나타난다.
이 근처가 고군산군도라 했던가....그만큼 작은 섬들이 많은 곳이다.
선유도도 그렇게 큰 섬은 아니고 주위에 무녀도, 장자도 등이 사진처럼 다리로 다 이어져 있는
이채로운 풍경으로 가진 섬이다.

 

 

섬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아 제법 북적거렸다. 작은 배들은 여객선 옆에 붙어 따로 짐을 내리고

예약받은 민박집 주인들은 일행을 맞이하느라 분주했다. 한산하고 조용한 섬 풍경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조금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작은 선착장에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있으니 오랜만에 사람들의 분주한

정을 느낄 수 있어 나쁘지만은 않았다.

 

 

선착장에서 마을로 가는 길에는 이렇게 횟집들이 늘어서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지금은 비수기라 사람이 좀 뜸하지만 본격적인 여름 성수기가 되면 여행객들로 섬이 꽉찰정도라고 하니
선유도라는 곳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곳인듯 싶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가?....훗

 

 

여기서는 갑오징어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오징어는 오징어인데 그 왜 몸은 좀 퉁퉁 하고 다리는 짧은 놈들이다.
전에 동해에 갔을 때 봤던 놈들하고는 또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 무척 특이했다.
다들 완전 외계인 같이 생겼다......-.ㅡ

 

육지에 나가면 꽤 비싸다는데 여기선 이렇게 바닷가에 노상으로 그냥 막 널어서 말리고 있다.

물론 횟집에서는 물을 찍찍 뿜어내는 녀석들을 그대로 팔기도 하고...

섬 전체에 하도 많이 널려있어 지나가다 하나 가져 가서 구워먹어도 모를 것 같았다.

 

 

에......섬은 섬인지라 마을로 향한 길을 따라 걷고 있으면
저렇게 동네 아저씨가 시원하게 배를 달리는 모습도 눈에 띈다.
원래 인터넷에 있는 관광정보에는 선유도에 차가 없다고 나와 있는데

 

왠걸.........차가 있다!! 내가 본게 모두 2대다. 민박집 주인들이 선착장에서 마을까지 손님들 태울려고 마련한

승합차였는데 아마 내 생각에는 이게 이 섬에 있는 차 전부인 듯 했다. 오토바이도 3대나 봤다.....후후

그래도 차랑 마주칠 일이 별로 없으니 그것만 해도 육지 사람들에겐 큰 선물이 아닐까..

 

 

선착장에서 십여분 걸어가면 선유2구 마을이 나타난다. 섬의 가장 번화가라고나할까.

민박집이며 식당이 가장 많은 곳이다.
그리고 저기 높은 탑이 섬의 최고 건축물인 통신탑인데 그러고 보니 배타고 섬에 들어
오기까지 쭉 핸드폰이 터진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오오.....ㄴ(-.ㅡ)ㄱ

 

 p.m. 4:30

 

마을 앞으로 바로 망주봉이 보이는데 조금만 걸어가면 망주봉을 배경으로한

유명한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정말 한 폭의 그림처럼 너무나 아담하고 이쁜 해변이라서,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게 잘 그려진 풍경화 위에 잡티가 묻은 것 처럼 느껴졌다.

그나마 비수기라 사람들이 많이 없는 해변을 볼 수 있다는게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멋진 해변을 뒤로하고

 

해안을 따라난 길을 걷다 보면 선유도와 장자도를 이은 장자교가 나온다.
바다를 가로질러 높다랗게 솟은 것이 건널려면 제법 아찔한데 시멘트 강판 사이로
저 아래 바닷물이 보이니까 약간 현기증도 나는 듯 하고.....^^
그래도 다리위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멋있다.

 

 

다리 위에는 바다 바람을 맞아가며 낚시하시는 분들도 참 많은데
잡히는 폼이 제법 입질이 잘 되는 곳인 듯 했다.
음...옆에 있던 아저씨가 하나 잡았길래 머냐고 여쭤봤었는데
고기 이름이 도무지 기억이 안난다....-.-a
여하튼 다들 간간히 당기는 고기 입질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리를 건너가면 이렇게 한적한 마을이 있다. 20여 가구도 안되는 작은 마을이다.

인기척도 별로 없고 동네 개들도 길바닥에 누워서 낮잠이나 자고...

진짜 세상과 격리된 듯한 마을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가끔은 이런 곳을 동경했었으니까..

섬의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 소리만 윙윙거리며 들릴뿐....

 

 

조금만 더 가면 작은 시멘트 다리를 건너는데 거기가 바로 대장도다. 할매바위가 있는 곳....
사진에서 저기 산위에 갑자기 뾰족 솟아있는 바위가 바로 할매바위다.
밑에서 자세히 보면 천으로 바위를 칭칭 감아놨는데 일종의 서낭당같은 의미를 지닌 듯 보였다.....맞나?....^^;

 

 

여기도 한 없이 조용하다...
여기저기 어구들이 흩어져있고 몇몇 어르신들이 모여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유로움과 정적...이 모든 것이 너무나 신선하게 받아들여 졌다.
정말 한번쯤은 이렇게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래도 정작 이런곳에 산다면 많이 외로울 것 같다. 사람들도 그립고.....복잡한 일상이 그립고..

자칫 권태감에 빠져 허우적거릴지도 모른다....

이런 걸 보면 아직은 내가 어리다는 증거일까.....세상을 다 알지 못한 어린애....

먼 훗날 정말 편히 쉬고 싶을 때 이곳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p.m. 7:00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또 해변을 찾았다.

근데 아무래도 이번엔 그 유명학 선유도 낙조를 보기 힘들 것 같다.....하늘이 온통 찌뿌렸으니..

아직 한 번도 서해 낙조를 본 적이 없어서 무척 기대했었는데

아쉬움을 남겨두고 물빠진 해변을 그냥 걸었다....

 

 

날씨가 흐려서 사람들도 일찌감치 낙조구경은 포기하고 다들 갯벌에 쪼그리고 앉아
조개구멍을 뒤지고 있었다...구멍에다가 소금을 뿌리니까 조개가 살며시 
구멍에서 빠져나오는게 무척 특이했다.
조개잡을 때 소금을 뿌린다더니 정말....후후
송송 나있는 조개 숨구멍과 사람보고 놀라서 도망가는 조그만 게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자칫 지나치기 쉬운 작은 생명들이 갯벌 가득 움직이고 있었다.

누가 그랬던 것 같은데....갯벌은 살아있다고....^^

맞다....갯벌은 마치 소인국 세상처럼 작은 생명체들이 제 나름대로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다.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것이고...

.............

허리숙여 보지 않으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사실들...

우리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면 보이는 여러 것들을 너무 쉽게 지나치고 살아가는건 아닌지....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