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항의 늦은 저녁
늦은 저녁, 슬슬 어스름이 내려 앉을 무렵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야외 무대에서 라이브 공연이 펼쳐진다.
이미 사람들이 무대 주변에 빙 둘러 앉아 있고 멋드러진 보컬은 여유로운 공기를 타고
어느 가족, 친구, 연인, 아이, 어른 그리고 그 사이 앉아 있는 내 귓속에도 파고든다.
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매력적인 보컬과
노련하게 연주를 이끄는 나이 지긋한 키보드
경쾌한 기타와 따뜻한 베이스
노래 가사처럼
정말 아름답고 고마운 일들로 가득한 세상이다.
어느 재즈 보컬리스트의 목소리로 듣는
'What a wonderful world'
고마워요....
모지항의 밤
하나 둘 경관등이 켜지니 낮과 달리 분위기 있고 차분한 레트로 모습이 펼쳐진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시끌거리지 않아 저녁 먹고 조용히 동네 산책하는 기분.
맥주잔을 놓고 테이블에 앉아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한 없이 부러운 밤이다.
.....
레트로 전망대에 올라가서 내려다본 모지항의 아름다운 야경.
기타큐슈 관광 가이드북에 꼭 소개되는 야경인데 유명세치고는 아주 화려하진 않다.
그래도 까만 바다와 반짝반짝 빛나는 오렌지 색깔의 등불들이 예쁘장한 모습이다.
잠깐 창가에 앉아 물끄러미 까만 바다와 저 건너 시모노세키의 불빛도 바라본다.
어느 도시든 야경은 참 아름다운 것 같다.
지극히 인공적인 경관이라 그런지 까만 어둠을 뜷고 빛나는 것들은 강하며서 아름답고 따뜻하다.
한 낮의 회색과 더러움을 감추고 반짝이는 것이 눈속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나 또한 그럴때가 있어 밉지 않다.... :)
전망대에서 내려와 다시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반짝이는 칸몬대교를 살짝 담아 간다.
....
어느덧 저녁 8시가 가까워졌다. 이제는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
'여기서 출발하는 열차는 모두 고쿠라 역을 경유합니다'
라고 일본어로 대충 안내가 되어 있는 듯 하지만 플랫폼에서 역무원에게 다시 확인하고
정말 '레트로'풍으로 생긴 전차를 타고 고쿠라로 향한다.
종점 역에서 저녁 무렵 전차를 타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학부시절 '강변'에서 놀다가 '성수'에서 '신설동'으로 타고가던 2호선 지선을 타는 느낌이다. ㅎㅎ
'안녕, 모지꼬~'
기타큐슈 밤
어둠이 내려앉은 기타큐슈 시가지를 지나 고쿠라 역에 도착.
전차도 유유히 지나가고 마치 늦게까지 놀다가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사람들을 따라 개찰구를 빠져나와 역 아래 버스 환승 센터에 앉아 공항행 버스를 기다린다.
책가방을 들고 집에 가는 학생들도 보이고
우르르 어느 술집으로 몰려가는 아저씨들도 보이고
쇼핑백을 한 가득 메고 있는 아가씨도 보인다.
다들 집에 가는 모양인데...
이제 9시인데 왠지 지금 바로 숙소로 돌아가기는 좀 아쉽다.
일찍 가봐야 마땅히 할 것도 없는데.....
버스 시간표를 보니 아직 막차까지 4대가 남아 있다.
어디 좀 앉아서 시간이나 때우고 갈까? :)
다시 고쿠라 역쪽으로 올라가 대합실 입구에 있는 카페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나나 머핀 앤드 진저 레모네이드 플리즈"
"고? 히어?"
"히어"
"바나나 마핀 앤드 진쟈 레모네이드데스. 진쟈 레모네이드 매니 매니 쉐이크"
"아~ 오케이~"
빨대로 많이 많이 휘저은 진저 레모네이드는 시원하고 맛있다 :)
레모네이드를 쪽쪽 빨아먹으며 오고 가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때아닌 망중한을 보내는 여유가 너무 마음에 든다.
가끔 이렇게 창가 카페에 앉아 아무 생각없이 사람구경하는게 그리울때도 있는데
이런 한가함을 잠깐이나마 누려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
.....
.....
여행의 마지막 밤.
아....언제나 여행 마지막날 밤은 아쉽기만 하다.
이런저런 생각과 도시의 밤이 뒤섞여
네온사인과 헤드라이트의 불빛처럼 아른아른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201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