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은 불행히도 마흔 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사람이다.
어려운 시절에 가난과 자괴감으로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아마도 그 짧은 생애 동안 그가 남긴 작품이 요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작품의 회화적인 측면을 차치하고 인간 이중섭의 삶에 이끌렸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이중섭 미술관'에 간 적이 있는데, 전시작품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림이 아니라 단연 이중섭이 부인과 주고받은 편지였다.
빼곡히 눌러 쓴 손편지의 내용이며, 편지지 귀퉁이에 작게 그려 넣은 낙서 그림이 너무나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서로를 '아고리', '아스파라거스군'이라고 부르는 애틋함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이 편지에 너무나 가득히 드러나 있었다.
모든게 우울할 것만 같았던 일제 말기와 비극적인 한국전쟁을 살았던 사람들이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이처럼 아낌없이 드러냈다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영화 '이중섭의 아내'는 이중섭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 (한국 이름, 이남덕)' 여사가 다시 한국을 찾아 이중섭의 그림을 보고,
예전 이중섭과 피난생활을 했던 제주도 작은 방을 둘러보면서 이중섭과의 만남과 결혼, 이별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는 일상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그저 옆에서 지켜보는 시선으로 만들어진 짧은 영화이지만 젊은 시절 두 아들과 환하게 웃고있는 '야마모토 마사코'의 흑백 사진과 이제는 백발을 이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물끄러미 남편의 그림을 바라보는 한 여인의 모습이 영화의 잔상으로 진하게 남는다.
이중섭을 좋아하고 그의 삶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볼만한 영화이다.
영화 속 '아스파라거스군'이 고단하게 살아온 삶의 이야기 또한 많은 울림을 전해준다.
아울러 '마사코' 여사의 주름진 얼굴이 슬퍼 보이지만은 않아 그 또한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이중섭은 그저 가족을 너무나 사랑했고, 할 수 있는 게 그림 그리는 것 밖에 없어 온통 사랑하는 가족을 그려 놓았고,
이중섭의 아내는 남편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채 평생을 혼자 씩씩하게 두 아들을 키워낸 강인한 여인이다.
지금 사람들이 이중섭과 그의 작품, 그의 짧은 삶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마 그가 보여준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