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11. 月
'THALYS' Paris Nord -> Bruxelles-Midi 구간 9시 55분이랑 10시 25분에 차편이 있다.
그 다음 차편은 11시 55분.....아무래도 10시 25분걸 타야겠다.
애초부터 ATM에서 현금카드로 유로를 직접 뽑아 쓸 생각으로
한국에서 200유로 밖에 환전을 안 해왔었기 때문에 이제 수중에 유로가 거의 바닥이 났다.
유로 지폐는 크기가 작아서 200유로라 해 봤자 우리나라 돈 뭉치보다 훨씬 작고 가볍다.
잃어 버릴 까봐 200유로밖에 안 가져왔는데, 조금 더 가져올걸 그랬나보다.
나름대로 서둘러 움직였는데도 벌써 9시 20분이다...
은행 ATM에서 100유로를 인출해 지갑을 채우고 편의점에서 목도리 하나를 샀다.
가져온 옷 만으로는 아침 저녁으로 불어닥치는 차가운 바람을 막기가 역부족인 것 같아서 말이다.
독일에 다녀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독일이 추웠다고 아우성이다.
하긴 지금 파리도 그렇게 좋은 날씨는 아닌데.....
유럽은 이제 늦가을에서 초겨울에 들어서는 모양인데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부는 경우 꽤 춥다.
이제 독일쪽으로 가면 프라하까지는 아마 계속 쌀쌀할 것 같으니 준비를 해야지....
'추운건 질색이야.......'
Paris, Gare du Nord
아직 잠이 덜 깨서 그런가.....
괜히 엉뚱한 곳에서 한 참 동안 줄을 서있다가 출발시간을 놓쳐 버렸다.
한참만에야 역 한쪽 구석에 있는 THALYS 창구를 찾아내 좌석을 예약했는데 예약비가 10유로나 된다.
THALYS도 TGV처럼 예약이 필수라는건 알지만...
그저께 몽빠르나스에서 렌까지 가는 구간보다 거리도 짧은데 예약비가 배로 더 비싸다.
국경비 뭐 그런 세금이 붙는건지.....
"저기요....이거 뭐가 잘못된거 아닌가요? 브뤼셀까지 무슨 예약비가 10유로나 합니까?"
"브뤼셀까지 예약비는 10유로 맞습니다."
"책에는 그렇게 안 나와있는데요..."
"브뤼셀까지 예약비는 10유로에요..."
"혹시 학생 할인 해주나요?"
"브뤼셀까지 예약비 10유로 맞습니다..."
"..............."
11시 55분 열차가 출발할 때까지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남는다.
런던에서 유로스타 타고 왔을 때 들렀던 그 카페테리아에서 또 크로와상 하나를 사 먹으며
밀린 일기도 쓰고 천천히 파리와 이별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유난히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냄새나는 지하철...
반짝이던 에펠탑...
아름다운 세느강의 야경...
낭만적인 파리지엥들과 이 크로와상 하나까지 모든게 다 그리울거다......
다시 올 수 있다면....그때는 파리를 더 많이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Au revoir~ Paris...'
북역이 등 뒤로 서서히 멀어진다.
.......
열차는 청명한 하늘을 이고 넓은 들판을 달려가고 있다.
다행히 오늘은 하늘이 아주 맑아서 구름 한점 보이지 않는다.
원래는 벨기에를 거치지 않고 파리에서 바로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열차 루트가 마땅하지 않아 벨기에를 경유하게 됐다.
남들 다 가는 그런 루트는 되도록 피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평범한 루트를 가고 있다.
일단 브뤼셀에 유스를 잡아놓고 브뤼헤에 다녀올 생각이다.
런던, 파리를 거쳐서 그런지 이제 좀 조용하고 자그마한 도시를 보고 싶다.
..........
THALYS는 TGV를 생산한 회사에서 만든 고속열차인데 외관이나 내부가 TGV랑 아주 흡사하다.
내가보기엔 껍데기만 바꿔 씌운 것 같다.
차장 아저씨에게 우아하게 유레일패스와 예약티켓을 보여주고,
연두빛 들판 위에 점점이 모여있는 이쁜 집들을 구경했다.
유럽은 집들이 어쩜 저렇게 하나같이 장난감처럼 예쁘게 생겼는지 모르겠다.
스치는 풍경들이 다 엽서에 나오는 그런 사진처럼 이쁘다.
......
브뤼셀
한 시간 삼십 분 남짓 달렸을까...열차가 속력을 늦추는가 싶더니 곧 시가지로 접어든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브뤼셀의 첫인상은 파리나 런던처럼 고풍스러운 느낌은 아니다.
눈에 띄는 건물이 몇 개 보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평범한 건물들이다.
브뤼셀 미디역....
사실상 중앙역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곳으로 진짜 중앙역까지는 국철로 갈아타고 다시 3분정도 더 가야한다.
일단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내일 프랑크푸르트까지 가는 ICE 시간표 좀 알아봐야겠다.
'ICE Brussel -> Frankfurt 구간 12시 16분 차.....'
마땅한 시간이 이거밖에 없네....바로 이전 차편은 너무 이르고....
일단 내일 아침에 일어나보고 결정해야겠다.
중앙역까지 가기위해 잡아 탄 벨기에의 2층 열차.....
마치 비행기 기내처럼 깔끔한 내장에 널찍널찍하고 깨끗한 실내공간이 너무 근사하다.
열차가 2층이라는 것도 아주 색다르고....
열차는 천천히 움직여 이내 중앙역에 닿았다.
약간 음침한 브뤼셀 중앙역.
벨기에로 넘어오자 일단 사람들과 주변 분위기가 파리와는 확실히 다르다.
일단 사람들이 조금 경직되고 어두워 보인다.
아까 미디역에서 만난 역무원들도 그렇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봐도 그런 것 같다.
뭐 좀 물어보면 확실히 파리 사람들보다 좀 딱딱하게 대답해주는걸 느낄 수 있다.
사람들 옷 입는 모양도 파리보다 훨씬 단순하고 무거운데, 여기는 또 피어싱이 유행인가 보다.
귀 뚫은 건 예사고, 코도 뚫고 눈썹도 뚫고 아무튼 여기저기 피어싱한 젊은애들이 상당히 많다.
마치 펑크족처럼 입고 짙은 눈화장에 여기저기 징을 밖은 아가씨들이 자주 눈에 띈다.
쳐다보면 눈 마주칠까봐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겠다.
벌써부터 화사한 프랑스 아가씨들이 그리워지는데....
책에 붙어 있는 브뤼셀 시내지도가 그리 썩 상세하지 못한 것 같다.
역 밖으로 나와서 한참이나 방향을 잡지 못해 애를 먹었다.
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유스호스텔.
유스카드로 할인해서 3인실 16.75유로에 침대 시트, 베개 커버, 아침 포함이면 꽤 괜찮은 가격이다.
유스를 난생 처음 이용하니까 체크인 폼을 작성하는데 이것저것 생소한게 참 많다.
......
자그만 창이 있는 깨끗하고 아담한 방이다.
조금 쉬다가 오줌싸개동상이나 보고 빨리 브뤼헤로 가야겠다.
브뤼셀에 대해서는 평소에 아는 바도 별로 없고 솔직히 알아보고 준비한것도 없다.
생각지도 못한 기착지라 발걸음을 어디로 떼야할지 조금 난감하다.
브뤼셀 시가지는 대체로 착 가라앉은 느낌이다.
저 멀리 몇 개 눈에 띄는 큰 청사와 성당을 제외하면 화려하게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별로 없다.
거리의 풍경도 평범하고....
그렇다고 그렇게 영 매력이 없는건 아닌데......아무튼 그렇다.
.....
'에게게.....저거야.....'
그냥 발길따라 걷다가 오줌싸개동상을 만나긴 했는데 크기가 너무 작다.
꼬마애 동상이라서 작은게 당연한건지 모르겠지만 이거 좀 허무하다.
걷다가 딴짓이라도 했으면 모르고 그냥 지나칠뻔했다.
건물 한 귀퉁이에 서서 익살스럽게 오줌을 누는 이 꼬마를 보고
다른 여행객들도 어이가 없는지 동상앞에 서서 다들 허탈하게 웃고 있는데,
어찌보면 참 별 것도 아닌걸 너무 유명세에 띄워 놓은게 아닌가 싶지만
뭐 깜찍한 애교로 받아줄 수 밖에......
오줌싸개동상 옆에있는 와플가게에서 2.50유로짜리 초콜렛 와플 하나를 사들고 중앙역쪽으로 걸어갔다.
와플이라는 단어가 벨기에에서 만들어졌다지 아마....
여기저기 와플 파는 가게는 눈에 많이 띈다.
....
이상하게도 브뤼셀 시가지는 머리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큰 도시도 아니고 유명한 볼거리도 다 거기서 거기에 모여 있는데 방향이나 거리 잡기가 영 아리송하다.
길찾으면서 이렇게 감이 안 잡히기는 처음이다.
지도가 부실해서 그런가.....
사실 난 내가 무관심한 부분에는 정말 끝까지 무관심해 버리는 경향이 좀 있다.
나랑 상관 없다거나 흥미가 없는 것들에게는 설사 다른 사람들이 다 관심을 가져도 혼자서 끝까지 무관심이다.
브뤼셀도 나름대로 멋있는 도시인건 분명하지만,
처음부터 별 관심을 가지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가끔은 뭐 이렇게 아무 계획없이 무작정 훑어보는 것도 부담없고 좋긴 하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벨기에 수도 브뤼셀까지 왔는데 별다른 준비를 못해온 것이 조금 아쉽다.
브뤼헤까지는 중앙역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삭막한 지하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린다.
브뤼헤
IC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꾸벅꾸벅 졸면서 도착한 브뤼헤는
언제부턴가 벨기에를 거치는 배낭여행객들의 필수 코스가 된 곳이다.
'브뤼셀은 지나치더라도 브뤼헤는 꼭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브뤼헤는
아름답고 그림같은 풍경 때문에 이쁜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4시....
역광장에서 바라보이는 브뤼헤의 풍경은 참 깨끗하고 평화로워보인다.
브뤼셀과는 사뭇 다른....아니 브뤼셀이나 런던, 파리같이 큰 도시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작은 소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한가롭고 조용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약간 싸늘하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날씨는 참 맑고 좋다....
지도도....책도 접어둔채 사진기만 꺼내들고 천천히 길을따라 걷는다.
이런 소도시에 오면 꼭 이렇게 발길닿는데로 거닐면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마치 공원을 걷는 듯 편안하고 너무 좋다.
눈길 닿는 곳이 모두 다 엽서 속 사진처럼 아름다운 풍경들 뿐이다.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연인들마져도 아름다운 풍경화 속의 인물들같고.....
..........
워낙 풍경이 아름다워서 그런지 구도만 조금 잘 잡으면 사진이 꽤나 그럴듯하다.
....호수 위를 떠다니는 오리들....춥겠다.
........
운하 양쪽으로 늘어선 아름드리 나무들....
오히려 옅게 물든 단풍이 잔잔한 운하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나무 밑에서 노니는 평화로운 거위떼들....
이런걸 보고 바로 한가로움 그 자체라고 하는게 아닐까.
또각 또각 말발굽소리를 내며 마차도 지나가고....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장식을 파는 가게도 있다.
골목 사이를 요리조리 한 참 거닐다보면....
큰 나무를 중심으로 카페나 레스토랑이 둥그렇게 모여있는 작은 광장도 만난다.
골목길...
골목길......
골목 안쪽 빨간 대문앞에 세워진 자전거....
엽서 같은 걸 보면 유럽의 좁은 골목길을 배경으로한 것들이 참 많은데 브뤼헤 골목길도 참 이쁘다.
오래된 집들 사이로 좁게 이어져 있는 골목길에서는
큰길에서 볼 수 없는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사람들의 일상을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벨기에는 초콜렛도 유명하다.
조개모양의 초콜렛은 몇 g에 얼마씩 나눠 팔기도 하는데 꽤나 유명한 초콜렛이라고 한다.
어떤 일본 사람들은 막 한 상자씩 사가지고 가기도 하데....
....
운하 바로 옆에 있는 자그마한 집.....어우...좀 춥겠다.
빨간 담쟁이가 아주 인상적인 건물...
풍경이 아름다워서 그런지 거리마다 사진찍는 사람들이 참 많다.
여기저기서 삼각대를 세우고 커다란 렌즈를 돌리고 있다.
좁은 돌다리도 건너고....
도시가 운하를 끼고 있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특이하면서도 아주 멋지다.
담쟁이가 얽혀있는 고풍스런 건물들에 기다란 배들이 떠다니는 운하가 서로 어우러지면
정말 그림엽서 속의 한 장면이 연출된다.
브뤼셀과는 정말 너무도 다른 분위기의 벨기에를 만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지방이고 경치도 좋아서 그런지 여기 사람들은 다들 웃는 얼굴이고 한결 여유있어 보인다.
.....
유럽을 좋아하는 이유가 사람들마다 다 다르겠지만
브뤼헤처럼 이렇게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소도시적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주 많을 것 같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고...
그냥 여기서 한 며칠 느긋하게 머물다 갔으면 좋겠다.
벌써 노을이 옅게 깔리기 시작했는데....이럴줄 알았으면 숙소를 여기에다 잡을걸.
브뤼헤의 중심 마르크트광장에 석양이 물들기 시작했다.
넓은 광장을 빙 둘러 고풍스런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광장 주변 레스토랑이 하나 둘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벌써 6시네...
바람도 슬슬 불어오고 배도 고프고....
어디 괜찮은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저녁이나 먹어야겠다.
'Moules Frites'....
중학교 때 세계여행에 관한 책에서 벨기에 사람들이 홍합요리를 먹는걸 본 적이 있었는데,
유럽사람들도 홍합을 먹는다는 사실이 그때는 참 생소하게 느껴졌었다.
레스토랑마다 입구에 홍합그림을 그려놓고서 손님을 부르고 있다.
'moules frites...? 물? 뮬? 물레? 프라이트는 또 머야...?'
홍합이라는 것만 알았지 이름은 몰라서 웨이터에게 손가락으로 홍합그림 한 번 가리켜주고 들어섰다.
유럽사람들은 날씨가 추워도 실외 테이블에 앉는걸 좋아하나보다.....자리마다 히터가 있긴 하지만....
웨이터는 바깥 테이블을 권하는데 한 번 씨익 웃어주고 실내 테이블에 앉았다.
레스토랑 안의 따뜻한 온기가 몸을 녹여준다.
moules....홍합을 까만 냄비에 넣고 야채랑 함께 삶은 건데 맛은 우리나라 홍합이랑 별반 다르지 않다.
유럽에 와서 이렇게 따뜻한 국물이 있는 요리를 사먹긴 처음인 것 같다.
따뜻한 레스토랑에 따끈한 국물이라.....환상적이지....
냄비에 빈 홍합 껍데기가 쌓여가는 동안 해는 저물어 마르크트 광장에 어둠이 깔렸다.
.........
브뤼헤 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다.
조금 일찍 왔었더라면 더 많이 볼 수 있었을텐데 무척 아쉽다.
아침 일찍와서 자전거타고 천천히 돌아보면 좋을 그런 곳인 것 같다.
돌아가는 열차는 8시 30분에 있네......
유스호스텔에서의 첫날밤
역에서 유스 오는 길에 어렵사리 아랍인 슈퍼에서 물이랑 군것질거리를 사왔다.
유럽사람들은 가게문도 일찍 닫는데다가 골목마다 구멍가게가 있는 우리와 달리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찾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나마 아랍계 사람들이 운영하는 가게는 밤 늦게까지 문을 열어 놓는 편이란다. 가격도 싸고....
유스에서 첫날밤인데 또 그냥 잘 수가 없지....
자기전에 사람들이랑 잠시 유스 지하 펍에 들러 맥주 한 잔씩 했다.
'스텔라'....맥주이름인지 무슨 다른 상표인지 모르겠지만 꽤 부드러운 맛이다.
시끄러운 음악과 낯선 외국인들에 파뭍혀 이런저런 이야기로 감상에 젖는다.
외국에 나가면 다들 애국자 된다더니....
아무래도 제3국에 오니까 우리나라를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경제가 이래서야 되겠냐....국력이 더 커야한다....중국 일본에게 뒤쳐지면 안 된다는 둥...
다들 나름대로의 개똥철학으로 이방인으로서의 감상에 흠뻑 빠져들었다.
.......
방에는 히터도 들어오고 욕실도 정말 깨끗하다.
펑펑 쏟아지는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깨끗하고 뽀송뽀송한 침대 위에 누워 있으니 세상 부러울게 없다.
'이렇게 좋을 수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시설들이 다 너무 좋은 것 같다. 객지에서 이정도면 호텔이지뭐.....
침대 머리맡에 있는 램프를 키고 잠깐 일기를 끄적거린 다음 눈을 감았다.
오늘은 왠지 잠이 잘 올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