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미국의 경제적 몰락을 설명한 부분보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제시하는 미국의 군사적 패권의 상실이다.
전세계 군비의 절반 이상을 쏟아 붓는 나라 미국.
냉전 시대가 종식되면서 사실상 미국의 운명은 미국 스스로의 손에 맡겨지게 되었다. 이념과 힘의 경쟁자였던 소련의 해체 직후 미국은 자국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지구상 그 어떤 국가보다 우월한 군사력, 엄청난 소비를 근간으로 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냉전 이후 초일류 국가로서 '세계 경찰'을 자임해 왔다.
아마도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최고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미국 국민들에게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우월감과 자신감이 팽배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세계 치안'을 담당한 이후 지구촌은 더 평화로웠던가?
이라크, 이스라엘, 이란, 아프가니스탄....냉전 이후 미국의 힘이 개입된 곳에 평화는 없었다. 왜?
그토록 압도적인 무기를 가진 미국이 왜 지구촌에 평화를 가져오지 못할까? 쏘아 올린 미사일은 다 어디로 날아간 것일까?
한국전쟁에서 시작된 군사적 전략의 실패와 베트남전의 패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으면서도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현시점까지 미국의 군사적 행동은 결코 성공적이지 못했다.
전쟁 양상의 변화, 게릴라전, 중동 정책의 딜레마, 현실적 적의 부재, 최고 의사결정 시스템의 불합리성, 모험주의, 군사력 균형의 붕괴 등등.
작가는 여러가지 날카로운 고찰로 미국의 군사적 패권의 소멸을 설명한다.
이유야 어찌됐든, 미국의 군사적 위엄이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냉정한 힘의 법칙이 적용되는 국제사회에서 군사적 패권의 소멸은 힘을 근간으로 한 미국의 입김 역시 점점 약해질 것을 의미한다.
조금은 생뚱맞은 비교이긴 한데, 얼핏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중국 명,청 교체기 조선조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나?
명나라의 힘을 빌어 나라를 유지시킨 조선은 힘을 일어가는 명나라와 새롭게 강성하고 있는 청나라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외면하자니 옛 정이 있고, 계속 친하게 지내자니 뒤통수가 따가운 상황.
줄타기만 잘 했어도 '삼전도의 굴욕'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다. 미국 하자는 데로 하자니 별로 소득도 없고, 그렇다고 딱 잘라 'No'라고 말도 못 하는 상황.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직시하고 있는 현실이라 더 왈가왈부 할 것은 없겠지만, 10년 20년 뒤 우리나라와 미국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갈지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다.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말도 있고.
'준치'가될지 '호랑이'가 될지 미국은 다시 한번 자신들의 운명을 가늠할 때가 온 것 같다.